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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추방당한 신은미씨에게 이 말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에겐 오라버니가, 인화물질 던진 고교생에겐 스승이 되겠습니다

이재봉 원광대 교수( jbchamsori@gmail.com) 2015.01.12 20:55

'종북' 아줌마 신은미씨가 지난 10일 저녁 고국을 떠났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 가까이 극우 언론과 여론 그리고 경찰과 검찰에 '종북'으로 매도당하며 시달리다 강제 출국을 당한 것이죠. 제겐 "오라버님, 미국서 봬요"라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제가 오는 1월 말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강연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겨냥해 한 달 전 익산에서 폭발물을 던졌던 고교생 A군은 지난 7일 전주지방법원 소년부로 넘겨졌답니다. 검찰은 그가 "만 19세 미만의 소년이고 초범인데다 피해자 중 일부가 처벌을 원하지 않지만, 사안이 중대해 구속 상태에서 소년부로 송치했다"고 합니다. 이에 앞서 A군의 아버지는 '피해자 중 일부'를 가리키는 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들이 대학 진학을 원하는데 원광대에 입학하게 되면 제가 훈계해주길 바란다고요.


'종북' 아줌마와 테러 소년 모두 지난해 11월부터 종편 방송과 극우 신문의 왜곡 보도에 의해 시작된 종북몰이 광풍의 피해자들입니다. 먼저 정치색이 전혀 없던 순박한 아줌마는 졸지에 '종북'으로 매도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극좌'로 비난 받기도 했습니다. 조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고국을 방문했다가 결혼식에 참석하기는커녕 그 조카의 어머니로부터 만남을 거부당하고,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로부터도 "당분간 얼굴 보지 말고 살자"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군요. 결국 사랑하는 고국에서 '죄인'으로 낙인 찍혀 추방 당했습니다.


고교생 A군은 신은미씨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묘사한 줄 오해하고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어린 소년이 테러까지 저지르게 된 것은 극우 언론의 악의적 왜곡 보도 탓이 컸지요. "북한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라며 침이 마르도록 찬양을 이어갔습니다"는 <TV조선>의 지난해 11월 21일자 왜곡 보도를 믿고, 신은미씨에게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했느냐"며 폭발물을 던졌으니까요. 그 때문에 졸업을 앞두고 실습하던 직장과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은미씨를 익산에 초청했다가 A군의 테러에 화상을 당한 사람으로서 두 사람의 가운데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추방된 아줌마와 구속된 소년의 중간자로서 두 사람을 연결하고, 그들을 화해시키고 싶습니다. 이에 앞서,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고국에서 추방당한 아줌마에겐 고국의 가족 노릇을 해주고 싶고,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폭력의 길로 잘못 빠져 구치소에 갇힌 소년에겐 비폭력을 가르쳐주는 선생 노릇을 해주고 싶습니다. 신은미씨가 저에게 '오라버님'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고, A군의 아버지가 저에게 '훈계'를 부탁한 배경입니다.


신은미씨와의 인연


신은미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제목의 방북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2012년 가을이었습니다. <평양에 두고 온 수술 가방>의 저자 오인동 선생으로부터 그녀의 방북기가 연재될 때마다 수십만의 조회 수를 기록한다는 귀띔을 받고 그녀의 글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녀보다 13년이나 앞선 1998년부터 몇 차례 평양을 방문해 방북기를 연재해봤고,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관해 20년 가까이 공부해온 터라 그녀의 글을 통해 특기할만한 내용은 거의 찾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성악 교수 출신으로 평생 음악만 공부했다는 사람의 글재주에 이끌렸다고 할까요? 제가 가보지 못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제가 겪어보지 못한 많은 경험을 저보다 뛰어난 글솜씨로 풀어내는 데 부러움이나 시샘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이런 그녀를 지난해 4월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 무렵 오인동 선생과 신은미씨가 통일 운동 단체들의 초청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할 때 그녀를 원광대로 초청한 것이었지요. 이를 계기로 저는 그 '아줌마'와 교분을 나누게 됐는데, 지난해 10월 중순쯤 제게 남·북한 방문 계획을 알려왔습니다. 그 해 12월 초 조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에 나오는 길에 한 통일운동 단체의 초청으로 다시 순회 강연을 펼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녀의 일정 중 전주에서 강연이 잡힌 것을 알고 그곳에서 만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강연이 취소됐다는 소식에 제가 익산에서의 강연을 주선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테러를 당한 것이지요. 이에 위로를 받기는커녕 경찰과 검찰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네 차례나 조사를 받았습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29일 "토크콘서트 내용을 모두 확인한 결과 '지상낙원'이라는 표현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TV조선>에 의한 종북몰이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훨씬 지난 뒤였습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뒤였죠.


이렇게 그녀는 '종북'으로 매도 당하며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5년 동안 들어오지 못하게 됐답니다. 남한은 그녀를 추방하고 못 들어오게 하는 한편 북한은 그녀를 환영하고 지지한다면, 그녀는 진짜 '종북'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한 당국이 그녀를 '종북'으로 내모는 셈이죠. 저는 이것을 막고 싶습니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그녀가 혹시 북한에 이용 당하거나 북한을 추종하는 낌새라도 엿보인다면 극구 말릴 자신이 있거든요. 남한 당국과 가족을 포함한 온 국민이 그녀를 '마녀'로 낙인찍어도, 저는 그녀를 감싸며 고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길을 뚜벅뚜벅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오라버니'가 되렵니다.


A군과의 미래


제가 테러범 A군을 용서하고 싶다는 글을 지난 3일 <오마이뉴스>에 올린 뒤,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거나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관련기사 : 내게 폭발물 던진 고3, 그래도 용서하고자).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하라는 겁니다. 무슨 조건을 내걸면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는 것이죠.


둘째, A군이 반성하고, 테러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며, 폭력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가 사라진다면 용서해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셋째,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진보는 보수에게 말로 상대하는데 보수는 진보에게 폭력으로 상대한다면서, 폭력을 용인하면 폭력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테러는 개인을 상대로 한 게 아니라 사회를 향해 저지른 것이기에 제 맘대로 용서할 성질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세 번째 의견을 주신 분들이 가장 많았지만, 저는 두 번째에서 오히려 첫 번째 의견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조건 없이 용서하고 껴안고 싶다는 것이죠. 그 학생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반성하는 채 해도 좋습니다. 그 부모가 제 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라도 괜찮고요. 처벌 받으며 반성하기를 기다렸다가 용서하는 것보다, 용서하면서 반성하도록 이끄는 게 더 쉽고 보람 있는 일 아닐까요? 이런 생각으로 A군이 '테러 왕초'로 빠지지 않고 '비폭력 운동가'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는 선생 노릇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용서 하고 싶습니다


마침 A군과 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그는 공고생이 되었고, 저는 상고생이 됐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 교수는커녕 대학생이 되겠다는 생각조차 품지 못했던 제가 비슷한 처지의 A군을 제자로 맞이하게 된다면 더 따뜻하게 지도해줄 수 있겠지요.


거듭 밝히건대 신은미씨가 진짜 '종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오라버니 노릇을 하고, A군이 앞으로 '테러 왕초'로 성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의 선생 노릇을 하면서, '종북' 아줌마와 테러 소년이 화해할 수 있도록 이끌고 싶습니다. 나아가 북한의 관광 안내원을 수양딸로 삼았다는 신은미씨가 앞으로는 남한의 A군을 수양 아들로 삼도록 권해보렵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지 않고, 비폭력으로 대하며 나아가 사랑으로 감싸는 것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가르침이요,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의 실천이었으며, 한국의 사상가 함석헌의 외침이었습니다. 그에 앞서 신은미씨와 A군 둘 다 믿고 있는 예수의 명령입니다. 제가 공부해 온 비폭력 정치학과 평화 연구의 정신이고요. 나아가 남한의 진보와 보수가 그리고 남·북한 당국이 상대에게 흉내라도 내보도록 제안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정부는 옹색한 이유로 신은미씨를 억지로 처벌했어도, 그녀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는 하루빨리 풀어주기 바랍니다. 제가 테러의 유일한 피해자도 아니고 가장 큰 피해자도 아니기에, 조심스럽게나마 A군에 대한 선처도 거듭 호소합니다. 1~2년 뒤 평양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신은미씨를 오라버니와 수양아들이 공항에서 마중하는 꿈은 너무 낭만적인 것일까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재봉 드림.


[편집자 주] 이 글은 이재봉 원광대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보낸 글입니다. 이재봉 교수와 오마이뉴스 동의 아래 참소리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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