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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90일 지난 나의 권리. 보호해 주시면 안되나요?

김정환( icomn@icomn.net) 2019.05.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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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이 지나면 들어주지 않아요.

 

“그거 언제 있었던 일이에요?” 행정 관련 사안의 상담을 많이 받는 변호사로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다. “3월에 있었어요.”“아. 다행이네요. 아직 5월이니까 다행입니다. 계속 이야기 해 보세요.” 당사자는 지금 억울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변호사가 다행이라는 단어부터 꺼내니 잠시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 하다가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안 날부터 90일 이내” 행정소송 중 취소소송의 제소기간도, 헌법소원의 청구기간도 90일이라는 제한은 무척 엄중하다. 우리나라는 안 날부터 90일이 지나면 그 어떤 억울한 사연도 그 내용을 들어주지 않고 ‘당신의 억울함은 이미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지나버렸네요. 우리는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겠습니다.’라며 형식적으로 ‘각하’시키는 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A씨와 B씨의 사례 - 90일 적용의 경직성

 

A씨는 스스로 몸을 돌려 눕지도 못하는 중증장애인이다. 혼자서 일어나거나 이동할 수 없음은 물론 휠체어에 앉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중증 장애가 있기에 모든 생활을 타인의 보조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이다. 다행히 우리도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이 있어 A씨와 같은 중증장애인이 활동 보조 지원을 통하여 건강을 유지하고 생활을 할 수 있다. 활동보조인을 두기 위한 활동지원급여의 월 한도액은 기본급여에 추가급여를 합산하여 결정하는 구조인데, 보건복지부는 “가구구성원이 1~3급 장애인이거나 18세 이하 또는 65세 이상인 가족만으로 구성된 경우”에만 더 많은 추가급여를 인정한다는 원칙을 만들었다(보건복지부고시 제2017-247호). A씨는 4급 장애인인 딸이 있었고 딸이 18세가 됨으로서 위의 추가급여를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활동 보조는 중증장애인에게는 생명권과도 관련되는 중요한 제도이다. 가족이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활동 보조를 축소한다는 것은 결국 장애인에 대한 보조를 가족구성원이 일부 부담하여야 한다는 부양의 원리가 적용된 것으로서 그 자체가 위헌의 소지가 있다. 게다가 A씨의 딸은 허리가 아픈 장애가 있어 어머니를 돌려 눕히는 등 A씨의 생명과 건강 유지에 가장 중요한 힘을 쓰는 보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A씨의 딸은 작년 여름에 만 18세 생일이 지났고 내가 A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것은 늦은 가을이었다. 18세 생일이 지난지 90일이 지난 후였다. ‘딸이 18세가 되었다는 이유로’ A씨에 대한 활동보조가 줄어드는 것은 억울하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은 예상대로 각하되었다. 딸이 만 18세가 된 생일이 이 제도가 A씨에게 적용되는 것을 A씨가 안 날로 보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변호사시험은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에 합격하지 못하면 평생 다시 응시할 수 없다. 법에 의해 강제로 그만두게 된다. B씨는 임신 출산 육아의 사유가 있어 시험 공부를 계속 할 수 없었고 속절없이 5년이 흘렀다. 이러한 “졸업 5년 후 평생응시금지” 제한이 과도한 것이라 주장하고 싶었던 B씨는 5년째 변호사시험 불합격 발표 후 헌법재판소에 이를 물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B씨가 시험장에 들어간 첫날을 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다시 못본다는 것을 알았던 날로 봐야하는 것이고 이미 시험장 들어간 첫 날 이후 90일이 지났으므로 과도한지 여부는 심사하지 않겠다.” 라는 내용으로 B씨의 청구를 각하시켰다. 변호사시험은 시험 후 발표를 100일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시험이다.

 

‘정당한 사유’는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A씨 사건을 직접 헌법소원 청구했고 B씨와 유사한 사건을 헌법소원 청구한 변호사이다. B씨와 같은 경우를 피하기 위하여 아직 합격자 발표가 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떨어질지도 모르니’ 청구를 미리 해 두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A씨 사건의 경우는 A씨가 이 제도의 적용을 몰랐던데 전혀 과실이 없는 사유가 있는데도 기계적으로 90일을 적용 받은 것은 억울하기에, 90일 제한 조항 자체를 다시 헌법소원심판 청구하였다. 위헌심판 청구를 하며 예비적으로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부분을 “정당한 이유가 있어 그 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경우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한정위헌청구도 하여둔 상황이다. 지금까지 청구기간에 대한 헌법소원은 사실 여러 번 있었고 계속하여 합헌결정이 있어왔기에 이번 청구 결과를 그리 낙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계속하여 “구체적 사안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체 배제한 일률적이고 일의적인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최소침해성 원칙에 반하여 위헌”이라는 내용의 결정례를 만들어 왔다. 이 사건도 “구체적 사안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체 배제한 일률적이고 일의적인 기준으로서 90일이라는 시간적 제한”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90일은 정말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친 짧은 기간이다. 게다가 억울한 일이 생겼다는 사실조차 자신의 잘못 없이 모르고 지나온 사람에게 “당신은 이 법이 적용된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어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봄에 생긴 억울한 일을 가을에 억울하다 주장하는 것 정도는 국가가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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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환 (金 廷 桓)

법학박사 / 변호사 법무법인 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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