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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거청산·재심·인권

인권 중심의 과거청산에 대한 단상

이창수( icomn@icomn.net) 2019.05.28 16:35

군법회의 판결 선고 70년 뒤의 재심 재판

제주지방법원은 지난 1월 17일 김경인 외 17인이 청구한 재심 소송에서, 이른바 제주4․3시기에 내려진 구 형법상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또 대법원은 지난 3월 21일 여수․순천 10․19 사건의 피해자들인 장환봉 등 3인의 유족들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그 개시 결정을 확정했으며, 4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첫 재심 재판이 열렸다. 또 5월 24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도 1950년 한국전쟁 기의 이른바 보도연맹원인 노상도 등 6명의 국방경비법 위반에 대한 재심 재판이 처음 열렸다. 이 사건들은 모두 70년 전 당시 군법회의가 유죄를 확정한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4․3과 관련한 사건은 수형 피해자로 재심을 제기한 이들이 피해당사자이지만, 여순10․19 당시의 사건과 한국전쟁기에 경남지역의 사건은 당시 이른바 군법회의의 사형 판결이 집행되어 피해 당사자의 유족들이 제기했다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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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마이뉴스)

 

재심을 통한 과거청산은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가

대한민국 형성기에 자행된 국가 잘못(wrongs)을 바로 잡는 일이 늦게 그리고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과거청산 또는 역사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무수한 문제들이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법원이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과거청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민주주의 이행기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와 평등한 국가 건설의 과제를 다시 제기하는 일은 여러 갈래의 주장이 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을 어떤 시각에서, 어떤 틀로 보느냐에 따라 과거청산의 방향과 그 효과는 굉장히 다를 수 있다. 과거청산 사안들을 재심으로 통해서 해결하려는 노력은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가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제주 4․3 수형 생존자들의 재심과정을 모두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적어 본다.

 

국가기관은 인권 보호를 위한 경쟁해야

첫째 국가의 기능에 관해서다. 법원은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한다. 국가의 기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구분하고, 국회는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을 위한 공리주의적 입법을 제정하고, 정부는 그런 기준으로 집행하고, 법원은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약자 또는 특수한 경우의 피해 구제하는 기능을 한다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이다. 국가 기능을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는 순차적으로 이해하는 이런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과거 인권유린을 할 수 있는 (입)법적인 근거를 둘러싼 논쟁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계엄법이 제정되지 않았던 당대의 군법회의 설치와 그 재판은 무효라는 주장이 힘을 받기도 하고, 일부 학자들은 일제의 법령에 기반 한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 논쟁은 당시의 군법회의의 설치가 정당한지에 집중되어 가해자인 군의 처형 결정으로 인한 피해를 사후 사법에서 구제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 현재의 법령 체계에서 재심의 전제인 당시 군법회의의 재판성을 인정해야 하는 모순이 깔려 있다. 당시 군법회의가 불법이어서 원천 무효라면 당연히 재심도 성립될 수 없고, 오히려 가해자측 논리인 당시 군법회의가 유효한 법적 근거에 의한 재판이거나, 사실상의 재판이라고 간주해야 재심을 통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법원을 통한 과거청산은 형식적이든, 문서기록상의 재판이든, 재판의 외형만을 띤 것이든 간에 당시의 재판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희생된 사건만을 다룰 수 있다. 재판 없이 즉결처형되거나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행방불명인들의 문제는 재심 즉 법원을 통해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과거청산을 법원을 통해서 하는 해결 방식은 재심은 불법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군법회의에 의한 재판을 받은 경우에 해당된다.

이 경우 법원은 국민의 인권을 지키거나, 그 피해를 회복시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분들이 사망하고 그 유가족들이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최근 일련의 법원 판결은 법원이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기보다는 최초의 교두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적어도 입법적, 즉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적어도 입법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법원은 최후의 인권 보루가 아니라 일상적인 인권의 수호자다. 입법부와 행정부 역시 그런 맥락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이번 재심 사건들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 모든 국가기관들은 국민의 인권 보호와 그 피해 회복을 위해서 서로 경쟁하는 길에 들어 선 것이다. 국회와 정부가 그걸 못하고 있다.

 

충분한 심리가 좋은 재판의 전제조건

둘째 재판이란 무엇인가이다. (형사) 재판은 (범죄) 사실을 특정해야 한다. 수사와 기소는 이런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고 재판은 이를 확인하고 법규정과의 연관성을 해석한다. 이번 일련의 재심사건들은 수형기록만 존재하거나, 재판서라는 개인 신상과 확정된 형량을 기록한 문서만이 존재하거나, 판결문이라는 형식에 피의자 개인의 범죄 사실은 적시되어 있고 똑 같은 형식에 이름만 바꾸고 판결 형량을 적시한 것들이다. 수사기록이나 조서 또는 공소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4․3 수형 피해자들의 경우에는 검사가 재심 과정에서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없어 공소기각 판결을 구형하고 법원도 같은 판단을 했다. 어떤 행위를 했다는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무죄가 된 것이다. 죄가 없다는 판결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검찰과 법원은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당시 국가가 행한 고문과 불법구금 등의 행위 요건을 인정해 재심을 판단한 것이다. 여러 정황을 보면 당시 군과 경찰은 재판을 해야 한다는 인식은 분명히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이라고 할 수 없는 기록재판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는 재심 사건들의 심리를 보면서 좋은 재판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피해자들이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의 입장과 얘기, 호소를 끝까지 진술하고 재판부가 이를 청취하고자 하는 자세가 적어도 사건 당사자와 국민들의 눈에는 좋은 재판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충분한 심리, 그게 좋은 재판, 재판다운 재판의 전제이다. 특히 과거청산 사건의 재심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다. 심리과정에서 제시되는 여러 주장과 문서들을 통해서 국가, 즉 법원이 공식적으로 기록되고 판결문에 반영되는 것이 좋은 재판의 중요한 요소이다.

 

피해자와 시민의 정치가 중요하다

셋째, 정치에 관한 것이다. 이번 재심은 피해 당사자 또는 그 유족들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지난한 노력과 관련 시민단체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의 잘못을 입법부와 행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피해자 개인과 시민사회가 법원을 통해 시정하려고 한 점을 크게 볼 필요가 있다. 과거청산을 위해서, 진실화해위원회법과 제주4․3법의 개정 또는 여순10․19사건법의 제정이 장기간 표류하고, 또 과거 법률이 과거청산을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 특히 정치의 광장인 국회를 통하지 않고, 정의의 영역인 법원을 통해서 직접적인 해결을 하려고 한 실천의 과정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법원의 구성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점이 확실히 증명되었다. 아울러 국회가 국민의 인권유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 부재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하고 있다. 의회주의, 대의제 정치가 한계를 드러내고 시민 정치, 피해자 정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환기했다.

 

피해자를 위한 진상규명과 배상

국가 또는 공권력이 자행하는 인권 유린 사건은 사회정치경제적 약자와 그 집단을 향해 이루어진다. 또 공권력이 그것을 결행하는 힘은 이런 약자들의 인권유린을 통해서 법의 힘이 아니라 사실상의 힘으로 가해집단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형성기부터 한국전쟁기에 이루어진 무수한 학살은 남한 단독정부를 추진하는 자들이 이를 반대하는 체제약자들을 향해 이루어진 것이고 법을 가장한 무력과 정치적인 힘으로 자행된 것이다. 무법천지였다는 의미다. 검사와 판사는 무기력했고, 당시 사회와 피해자들은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에 빠져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를 둘러싼 진실을 밝히는 것은 정의 즉 가해자 처벌의 문제이다. 공소시효가 문제라고 할지라도 공식적으로 국가가 밝혀 역사적인 기억과 우리 시대의 시민들의 집합적인 기억의 내용을 제공해야 한다. 그게 재발 방지책 즉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이다.

한편으로 이런 체제약자의 인권유린의 해결은 피해자와 그 유족들을 위한 진상규명이 되어야 한다. 즉 당사자들이 어떻게 피해를 입었고, 언제 왜 죽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과거청산의 진실 규명 작업의 큰 축은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밝히는 것과 함께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을 진실에 가깝게 조사하여 억울함을 푸는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피해자 각각의 피해 사실을 밝히고 확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제주4․3법의 개정해 개별 피해사실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피해자들의 진실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배상도 마찬가지다. 가해자나 가해 후견자가 국가 또는 공권력인 경우 배상이나 위로금 지급은 국가가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화해 조치이다. 이는 기억을 위한 교육과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가장 유효한 조치이기도 하다. 재심으로 시정할 수 있는 공권력의 잘못은 신속하고 진지하게 해야 한다. 배상은 적정해야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진화위법 개정이 자유한국당의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답보상태에 있자, 과거 진화위법에 진정과 조사 기간만을 변경하여 통과하려 하고 있다. 해결이 될 수 없다. 배상을 명확히 하고,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등 아동약자에게 가해진 국가의 인권 유린 사건들을 포함하는 개정을 해야 한다.

피해자의 무차별 원칙, 피해자를 위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위로금 등의 지급, 그리고 이를 통한 인권과 평화 그리고 민주적인 법치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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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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