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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알바 사이트의 추억

김수연( icomn@icomn.net) 2019.11.02 13:48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하면서 온라인이 시끌시끌하다. 대체로 여자들은 이 영화에 호의적이고 남자들은 별 의식이 없거나 굳이 볼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들이 다수다. 김지영보다 여섯 살이 더 많은 필자 김수연은 우선 내 친구 지영이를 떠올렸다. 영화 속 김지영처럼 우린 모두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어느 순간 경력단절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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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필자는 이십 대에 직장생활을 몇 년 하고 바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생활도 좋았지만 아버지의 부재로 가장이 되니 고민이 깊어졌다. 자영업으로 돌아서고 가게 주인에게 월세를 내야 하는 처지가 된 다음부터는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매출이 좋은 날은 절로 콧노래가 나왔지만 다음날 매출이 시원치 않으면 장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결혼과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전업맘이 되었다. 커가는 아이의 눈망울은 온전한 기쁨을 주었지만 세상에서 내가 이대로 잊혀져 간다는 두려움은 정말 컸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알바 사이트를 뒤지다

 

아이가 대여섯 살이 되어 유치원생이 되자 오전, 오후 시간이 좀 한가해졌다. 때는 이때다 하고 인터넷으로 알바 사이트를 뒤졌다. 수백, 수천의 구인 목록이 어쩜 시간이 하나도 안 맞았다. 등원이 8시 반에서 늦어도 9시까지인데 어지간한 알바는 아침 7시부터 집에서 뛰쳐나가야 했다. 그것도 아침 9시에서 저녁 6시까지 하는 알바여야 그나마 두둑한(?) 돈을 쥘 수 있었다. 단순 사무, 영업, 캐셔 아니면 할 일도 없었다. “아... 그냥 집에서 애나 봐야 하는구나. 내 동기 남자 직원은 벌써 과장인데, 결혼 안 한 내 친구는 직장 다니며 차곡차곡 돈 모으던데... 난 언제 아이를 키우지? 아냐, 그래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해.” 하며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으며 마음을 접었다.

 

유치원생 꼬맹이였던 아이가 이제는 중3이 되었다. 하루 한두 끼 정도는 굳이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먹는다. 그 사이, 난 운이 좋게도 작가가 되어 프리랜서로 이것저것 일을 한다. 지나간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시간은 빨리도 갔다.

 

나와 비슷한 학력에,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도 벌써 사십 대 중반이 되었다. 아직 직장이 굳건한 남편의 울타리로 여전히 전업에 머무르는 엄마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4년제 졸업이라고, 중산층이라고 직업을 딱히 가리지는 않는다. 물론 개인의 성향과 선택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나이에 할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십 중반에 다시 알바 사이트를 뒤지다

 

며칠 전 스마트폰으로 알바 사이트를 뒤져 보았다. 세상에! 예전에는 그냥 알바 사이트를 뒤졌다면 이젠 알바 사이트에서 따로 관리(?)하는 중장년 알바 사이트를 뒤져야 한다. 거의 모든 직군에서 나이가 걸렸다. 여자 나이 만 40이 넘으면 선택지가 확 줄어든다. 사십 중반의 여성이 할 수 있는 고소득 알바는 베이비시터, 찬모, 마트 캐셔, 물류 창고 정리 등이다. 남자들이라고 다를까? 남자들의 선택지도 나이가 차면 확 줄어들긴 매한가지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남녀가 서로 아옹다옹 다투지만 중년이 되면 어째 전세가 역전되는 것도 같다.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일보다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적어도 알바 시장에서는 더 많아 보였다. 우스개로 그러지 않나. 나이 먹으면 남자들은 집으로 슬금슬금 들어앉고 여자들이 밖에서 나가 전투적으로 돈 벌어 생계를 꾸린다고. 그게 우스개가 아니고 사실이다. 당장 내 주변 친척들, 언니들 봐도 그렇다.

 

그때가 되면 성별보다 건강과 나이가 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짐을 나르든, 반찬을 만들든, 아이를 돌보든 간에 건강해야 하고 젊어야 한다. 중년이 되어서야 서로가 측은해지고 니 맘이 내 맘이 되고 내 맘도 니 맘이 될 수 있고 그렇더라. 참으로 오랜만에 알바 사이트를 뒤져보다 별생각이 다 든다. 결국은 다들 일하고 돈 버는 문제가 악착같아서다. 돈 버는 자가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아... 오늘도 돈 벌어야지. 돈 벌지 않으면 사람 구실하지 못한다고 하는 이 세상이 가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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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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