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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20년 5월 어느 날 모 학교 3교시

 

#교무실

코로나19 사태 중 등교 개학한 둘째 날, 수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차 복도를 돌고 계시던 부장님이 퍼질러 자는 녀석을 발견하고 교무실로 달려오셨다.

 

부장: O반에 수업 중에 엎드려 있는 애가 있는데 혹시 아픈 거 아닐까?

옆 반 쌤: 걔 혹시 □□이 아녜요? 등교 개학하자마자 엎드리다니 정말..

부장: 혹시 모르니 깨워서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아. 담임이 깨워서 물어봐요.

담임: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게슴츠레한 눈으로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온다)

 

부장: 가만있어 보자. 얘 체열을 재야 하는데...

담임: □□이 혹시 어디가 아프고 그래? 열 있어?

□□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열은 없는데 머리가 좀...

담임: 뭐? 머리가 아프다고? 두통이 있다는 얘기니?

□□이: 예. 머리 아픈데요. (다시 인상을 찌푸린다)

담임: 잠시만 있어 봐. (코로나 매뉴얼을 확인한 다음 깜짝 놀라며 서둘러 라텍스 장갑을 낀다) 부장님. 코로나 증상 중에 두통이랑 무기력이 있어요. □□아. 너 어제 어디 갔었어?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았어?

□□이: (건들건들) 어제 학원 갔다가 애들이랑 PC방 가서 게임 좀 하고 노래방 갔는데요? 집에 한 열 신가? 그때쯤 들어갔어요.

담임: 아이구 이 녀석아. 밀집 시설 이용하지 말라고 계속 안내했잖아. 가면 안 되는 데를 골고루 다 갔네. 마스크는 또 왜 이래. 어제 준 방역 마스크가 아닌데? 어제 나눠준 건 어쨌어?

□□이: (퉁명스럽게) 집에 있는데요

담임: 부장님. 얘 마스크가 방역용이 아니라 패션 마스크예요!! 큰일입니다. 예비용 방역 마스크 부탁드려요!!

부장: 쌤! 근데 얘 그냥 어제 게임 하느라 늦게까지 놀아서 피곤한 거 아닐까?

담임: 그야 저희는 모르죠. 증세랑 밀집 시설 방문한 거랑 마스크 착용한 거 보면 우선 저희는 매뉴얼에 나와 있는 대로 움직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부장님. 일단 마스크!

부장: (방역 마스크를 건낸다) 이거 마스크 안쪽에 손대지 말고 착용해야 한다 알았지? 라텍스 장갑 껴. 지금부터 손으로 아무것도 만지지 마. 위험해!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이.

담임: 자 이제 보건실로 가자 □□아. 얼른 따라와

 

#보건실

담임: 보건 선생님. □□이가 두통과 무기력을 호소합니다. 마스크도 방역이 전혀 안 되는 패션 마스크 끼고 있었는데 그것도 답답하다고 자꾸 내리고 그랬어요. 어제는 친구들이랑 학원, PC방, 노래방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학교 대응 매뉴얼에 따라서 일시적 관찰실로 데려가서 학부모님이랑 연락해서 선별 진료소 가든가 그게 안 되면 119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보건: 그렇죠. 일단 체온을 다시 잴게요. (비접촉 체열기로 체열을 잰 다음) 열은 없구나. 열이 안 나는 유증상자도 있긴 한데. 너는 어떤 거 같아?

□□이: 만약에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받으면 학교 안 와도 돼요?

담임: 아이고 야. 학교를 안 나오는 게 다 뭐냐. 이거 봐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홈페이지를 보여주며)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받으면 음성이 나오더라도 2주간 자가격리야. 너 뉴스 봤지? 자가격리 기간에 무단으로 집 밖으로 나오면 실형 받을 수도 있으니까 꼼! 짝하지 말고 집에서 잘 쉬고 있어. 안 그럼 처벌받는다 알았지?

□□이: 네? 집 밖으로 못 나간다고요? 저 사실 머리 안 아픈데요? 아까 선생님이 어디 아프냐고 해서 그냥 머리 아프다고 한 건데요?

담임: 뭐? 아니 얘가 밖에 못 나간다고 하니까 갑자기 말을 바꾸네?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해도 할 수 없어. 일단 선별 진료소 가야 돼. 어머님 오실 수 있어?

□□이: 아니. 안 아프다니까요?

담임: 그건 너나 내가 판단할 수가 없다니까. 니가 자가격리되기 싫어서 거짓말 하는지 어떻게 아냐?

□□이: 저 확진자랑 만난 적도 없어요!

담임: 니가 만난 사람이 확진잔지 아닌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매뉴얼대로 해야 돼. 자! 우선 일시적 관찰실로 간다.

 

#일시적_관찰실

담임: 어머님께 전화하고 올게 여기서 쉬고 있어. (어머님께 전화)

□□이: (깜짝 놀라 화를 내며) 아니 엄마한테는 왜 전화해요?!

담임: 보호자가 데리고 가는 게 원칙이야. 보호자 못 오면 119 불러야 돼.

□□이: 네?! 119요???

담임: 어. 그럼 확진자일지도 모르는 너를 누가 데리고 가냐. 가서 검사받았는데 니가 확진자면 데려간 사람도 확진되는데 어떡하라고. 전용 차량이랑 방역복으로 완전무장한 119 요원들이 너 태우러 와야지

□□이: 아니. 쌤! 왜 일을 크게 만들어요. 저 안 아프다고요

담임: (심각한 표정) 내가 의료 전문가가 아니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는 매뉴얼대로 하는 수밖에 없어. (보건소 담당자와 통화) 네, 네! 알겠습니다. 자 인적사항 말씀 드려라.

□□이: 아아아....

 

담임, 부장, 보건 교사는 소독용 물티슈로 학생이 앉았던 책상과 주변, 동선을 알알샅샅이 닦는다. 곧이어 119 대신 담임이 학생을 데리고 선별 진료소로 출발한다. 가는 내내 정말로 머리가 아프지 않다는 □□이의 간절한 호소에 차를 멈추고 얘기를 나눴다

 

#차_안

담임: 너 혹시 교회나 성당 다니냐? (네. 교회 다녀요.) 만약에 너 확진되면 교회 신자들 전부 선별 진료소 가서 검사하고 교회 2주간 폐쇄 (네???) 너 학원 다니잖아. 그럼 학원 원장님과 선생님, 학생도 전부 검사. 그리고 2주간 폐쇄 (네에에에???) 어머님은 어린이집 선생님이시지? (아니, 그럼 제가 확진되면 어머님도 검사 받으세요?) 검사만 받으시냐? 어린이집 선생님이랑 어린이들, 학부모님도 다 검사받고 어린이집 2주간 폐쇄! (어어어억!!) 참고로 나도 검사 받아야 되는데 우리 엄마 기저질환자야. 만약에 네가 확진되고 나도 확진됐어 어? 근데 우리 엄마도 나한테 옮아서 확진됐는데 잘못되시면 나는 너를 용서할 수가 없을 거 같다. 너라도 그럴 거야. 이해하지? (네....) 네가 부주의하게 PC방 가고 노래방 가서 감염됐는데 그것 때문에 누군가 감염되어 죽게 되면 너 그거 평생 괴로울 텐데 감당할 수 있겠냐?? (아니요...) 감염병 별 거 아니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 이거 그렇게 단순한 일 아니야. 니가 들렀던 슈퍼나 편의점 이런 곳도 너 확진되면 다 폐쇄라고.. 2주 지나도 거기 사람 안 와. 확진자 다녀간 영업장은 2주 뒤에도 매출이 확 떨어졌다고 뉴스에도 나왔어. 그것보다 너희 어머님은? 다시 어린이집에서 근무하실 수 있을 거 같냐? 아마 어린이집 학부모님들이 가만 안 있어서 어려울 걸?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다. 그러니까 너 확진 아니기만을 기도해.

□□이: 그럼 제가 가서 머리 아프다고 한 거 거짓말이었다고 하면 검사를 안 받을 수도 있는 거예요?

담임: 그야 나는 모르지. 진료소 전문가들이 판단하겠지

 

결론

대화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것으로 한바탕 소통이 끝났다. 그리고 어머님과 보건소에 연락했다. 학생이 머리 아프다고 한 게 거짓말이라고 일관되게 이야기해서 저희가 확인하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바쁘고 정신 없으실 텐데 정말 죄송하다, 앞으로는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여 혼선이 없도록 하겠다 등등

선별 진료소 소동으로 영혼이 불타버린 기분이다. 이번 기회에 이 녀석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코로나 19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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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 오늘도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지고 볶으며 가르치고 또 배우며 사는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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