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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어에 대한 오해와 이해 1

김정환( icomn@icomn.net) 2020.03.27 14:34

“겪어보지 못한 전염병에 대한 전세계적 공포가 가득하다. 인간성 상실의 끝은 어떤 모습일지 탄식하게 되는 악랄한 범죄자에 대한 뉴스가 넘쳐난다. 원래 뉴스라는 것은 미담보다는 아픈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의 뉴스는 더욱 무겁고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무겁고 아픈 소식도 자꾸 듣고 또 듣고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이러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축적해 왔고 반드시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는 낙관을 통해 세상을 발전시켜 왔다. 공공의료는 나아질 것이고 성착취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그 대응도 조금은 변할 것이다.”

 

요즘 여러 뉴스로 우울한 제 심정에 조금은 희망을 담아 문장을 하나 써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쓴 문장을 읽다가 혹시 턱하니 걸린 부분이 있나요? ‘어 여기는 이상한데 왜 이런 문장을 썼지?’ 이런 생각이 드는 문장이 있나요. 우리는 발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나요. 인류는 낙관한 적 없나요. 아 그건 저와 당신의 발전과 낙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문장이나 단어에서 걸리는 부분을 찾으셨나요?

 

제 문장에서 “자꾸 듣고 또 듣고 알아야 한다.”라는 문장은 어떠셨나요? 평소에 우리는 관용적으로 듣고 알아야 한다는 표현을 쓰니까 전혀 이상하지 않았나요? 이 문장이 자연스러웠다면 우리는 언어는 듣는 것이라는 작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언어는 보는 것이고 손으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네 수어라는 언어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건청인(농인에 대응하는 단어입니다. 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의 선입견이 반영된 많은 표현을 쉽게 하지요. 나쁘다고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입견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단지 경험해보지 못했을 뿐이죠. 저도 많은 선입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성숙이라는 것은 내가 가진 선입견에 자꾸 의문을 제기해 보는 과정이겠지요.

 

제가 장애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제가 장애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여러 공부를 하던 제가 장애인 당사자를 만나면 너무 불편한 겁니다. 뇌병변장애인을 만났을 때 도대체 내가 이 분과 대화를 어떻게 할 지 모르더라구요. 그냥 평소처럼 대화하면 되는데 말이지요. 시각장애인분과 처음 식사를 하는데 자꾸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내가 먹는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내가 왜 이렇게 장애인들을 불편해 할까 생각해보니 제가 성장하면서 장애인과 생활하고 함께 지내본 경험이 정말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을 시설에 수용하거나 하는 등으로 비장애인과 분리하는 정책을 계속 썼었거든요. 아주 잘못된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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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이 글의 제목은 수어에 대한 오해와 이해입니다. 참소리에서 칼럼을 쓸 기회를 주셔서 글을 써오다가 그래도 내가 배운 것 중에 무언가 다른 사람의 선입견에 작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봤더니 수어라는 테마가 떠올랐어요. 앞으로 2-3회 정도 더 수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수어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왜 수어통역사는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통역하는지, 각 나라의 수어는 모두 같은지, 수어도 사투리가 있는지와 같은 수어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해 드리고 싶구요. 그 다음에는 우리나라에 한국수화언어법이라는 법이 있다는 것과 그 법이 만들어진 배경과 내용 그리고 한계에 대해 조금 학술적인 내용도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쓰니 제가 마치 수어를 굉장히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지요? 아닙니다. 저는 수어에 능통하지도 않고 아직 수어를 잘 몰라요. 다만 수어를 사용하는 분들과의 교류 그리고 수어를 공부해본 ‘경험’이 있을 뿐이지요. 영어로 치면 인사말을 배우고 단어 몇 개를 배워서는 외국인에게 인사말만 걸면 그 뒤로 아무 말도 못하는 수준 정도일 뿐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지금 배가 고파요.” “안녕하세요. 이건 정말 맛있어요.”가 저의 가장 자신있는 수어 문장입니다. 이 수준을 넘어가는 문장은 잘 몰라요. 하지만 저는 수어를 배우고 수어선생님, 농아인분들과의 만남이라는 작은 경험을 통해서 제 스스로 저의 편견을 깬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경험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수어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어색한 분들이 많지요. 수화라는 표현이 더 보편적이니까요. 수어냐 수화냐라는 이름부터 사실은 논쟁이 많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한국수화언어’를 ‘한국수어’로 줄여 부른다 정도로 이해해 주셔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수어가 조금 더 바람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어 과목에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있지요. 수화는 그 중 말하기 정도의 표현이고 수어라고 표현함으로서 완전한 언어로서의 느낌을 받기 때문이지요. 한국수어는 한국어와는 체계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언어’이거든요. 하지만 수화라고 표현한다고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보편적 표현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수어냐 수화냐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이해와 소통이니까요.

 

수어가 무엇인지 정도만 이해하더라도 우리는 “청력은 능력이다”라는 광고카피가 불편해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2012년에 위의 카피를 사용했던 보청기 회사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어요. 결국은 사과했지만 많은 농인들에게 상처가 되는 카피였지요. 보청기가 발전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수어를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아주 작은 이해만 있었어도 그런 카피는 나오지 않았을테니 아쉬운 일이었지요.

 

오늘 인사 글의 마지막 단락은 수어를 조금 더 정식으로 소개하는 문장들로 끝내야겠네요. ‘수어’를 조금 더 자세히 표현하면, 수어는 농인공동체 속에서 자생하여 발달한 자연언어로서 언어의 보편적 특성에서 비롯한 구조를 가지며 독자의 문법체계를 바탕으로 운용하는 시각·동작 체계의 ‘언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음성언어 습득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언어습득에서의 보편성을 가지고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제 1언어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지요. 우리 사회의 편견은 아직도 수어를 대화의 보조수단 또는 특정 행위를 함에 있어서의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제1언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오스트리아 수어는 독자 언어로 인정된다. 법률로 자세한 사항을 정한다. / Die Österreichische Gebärdensprache ist als eigenständige Sprache anerkannt. Das Nähere bestimmen die Gesetze. / The Austrian sign language is recognized as independent language. Details are regulated by the laws. 오스트리아 헌법 제8조 제3항」 2005년 오스트리아 헌법에 새로 신설된 조항입니다. 멋지지요? 우리나라는 아직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요. 조금씩 바뀌겠지만 누군가에게 수어는 제1언어이고 그것은 독자적인 언어다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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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법학박사,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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