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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간절한 기도

김수연( icomn@icomn.net) 2020.03.09 09:09

며칠 전, 2001년에 개봉한 영화 ‘에이아이(AI)’를 케이블에서 다시 봤다. 두세 번은 봤던 영화인데 볼 때마다 뭉클하다. 주인공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이 인간인 엄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간절히 열망하는 여정은 언제 봐도 눈물겹다. 귀엽고 사려 깊은 소년 데이빗은 자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감정을 넣어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이다. 아픈 자식을 냉동보관한 헨리 스윈튼 부부에게 입양된 데이빗은 한때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부부의 친아들 마틴이 병에서 회복되고 집으로 돌아오자 데이빗은 그토록 사랑받던 엄마에게 버려진다. 인간이 된다면, 될 수만 있다면 엄마가 다시 사랑해줄 것이라 굳게 믿은 데이빗은 곰인형 테디, 섹스로봇 조(주드 로)와 함께 파란 요정이 있는 맨해튼으로 떠난다.

 

간절한 기도를 이루기 위한 간절한 여정

 

데이빗은 엄마가 읽어준 피노키오의 동화 속 파란 요정을 결국 찾아낸다. 바닷속에 잠겨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파란 요정 모형을 보며 간절하게 소원을 빈다. ”제발 저를 인간인 남자아이로 만들어주세요!“라고. 그 기도는 전원이 끊기며 데이빗의 로봇 생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시간이 흘러 2천 년 후. 외계인이 얼음 속에 갇힌 데이빗을 찾아내고 그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엄마는 단 하루만 복원되는 생명을 얻는다. 데이빗은 자신만을 온전하게 바라보는 엄마와 생애 최고의 행복한 시간을 함께한다.

 

세상은 간절한 기도가 차고 넘친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데이빗의 기도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측은함이 배가 된다. 영화 속에는 가뜩이나 이루기 어려운 기도를 곳곳에서 방해한다. 데이빗은 인간들이 로봇을 부수고 죽이며 쾌락을 즐기는 무시무시한 로봇 축제에 맞닥뜨리기도 하고 진실만을 말하는 유식 박사를 만나 만들어진 진실과 조우하기도 한다. 섹스로봇 조는 로봇은 절대 인간이 될 수 없다며 데이빗의 신념을 강하게 부정한다. 애초에 사랑을 받기 위해 프로그래밍된 데이빗이었기에 신념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곧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영화는 동화처럼 시작해서 동화처럼 끝나지만 현실의 세계는 어떨까.

 

기도의 신념 뒤에 오는 허탈함

 

종교가 딱히 없는 필자도 간절함이 솟구칠 때는 기도를 한다. 아이나 부모가 아플 때, 돈이 떨어졌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을 때 하느님, 부처님을 찾으며 신을 향한 기도를 올린다. 인간보다 우월한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면, 내 간절한 기도의 파장을 누군가 접선하여 들을 수 있다면 제발 그 기도 좀 이루어주십사 하고 눈을 질끈 감는다. 하지만 기도할 때의 간절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한다. 결과가 좋기라도 하면 ”역시 우주에는 뭔가가 있어!“하고 감탄하면 다행인데 때로 우연의 일치겠거니 치부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현실의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여기는 게 대부분이다. 딱히 신을 원망하거나 서운해하지는 않는다. 나의 간절함은 딱 거기까지다.

 

데이빗의 간절함은 영화이기 때문에 슬프고 아름답게 보였다. 현실에서 그런 간절함을 보았다면 아마 기피했을 것이다. 코로나로 정체가 드러난 신천지의 이야기들이 연일 시끄럽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지 못할 간절한 기도를 올렸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싹하다. 반대로 나의 모습도 투영해본다. ”어라, 나도 종종 이루지 못할 기도를 올렸지 않은가.“ 다만, 그 기도가 그들처럼 치열하지 않았을 뿐.

 

제발 나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하느님, 부처님, 알라가 있다면 오늘부터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제발 코로나를 물리치게 해달라고 말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바이러스는 늘 존재했고 인류는 고통받았으며 또 극복해나갔다. 하필 우리 세대에 이런 바이러스가 나타났느냐고 원망할 수도 있겠다. 일상이 침해받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으며 경제적 타격이 생기니 그 어느 때보다 진실로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로 세계의 질서가 어지러워진 지금의 상황에서는 개인의 힘은 무력하다. 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것도 개인의 힘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바이러스와 싸울 때 그 간절함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지금은 그렇게라도 굳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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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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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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