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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권주평] 대선후보들 왜 사회복지시설 방문하는가?

평화와인권( onespark@chollian.net) 2002.10.27 16:02

제대로 된 사회복지정책의 비전을 천명하길

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정치권이 분주해졌다. 신문·방송은 연일 대선 후보들의 일일 동정을 전하고 있다. 후보들마다 이미지 제고를 위해 홍길동처럼 이곳저곳에 출현하여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미 후보들마다 시설에서 봉사하는 장면이 언론매체를 통해서 전국에 보도됐다.

쌓여가는 장애인의 한을 보라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하는 모습은 후보들의 서민적이고 이타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서민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멀고 평소 재산과 권력을 추구해 온 후보일수록 이런 곳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한다. 권력과 자본이 인간의 냄새를 피우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바르는 화장품이 봉사활동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집권하게 된다 해도 사회복지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그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인권이나 복지는 그들의 뇌리에 얼마나 남아 있는 지 모르겠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도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에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했고 집권 직후에 자신도 장애인임을 애써 강조하며 국민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복지라고 말했지만, 현재 이 땅의 장애인들은 엘리베이터 추락으로 몇 명 째 목숨을 잃었고 이동권 확보를 위해 단식 농성까지 벌였다. 장애인들은 오히려 한이 쌓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하는 척(?)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누구나 의례적으로 하는 것인데 무슨 시비가 많으냐고 할 지 모르겠다.

사회복지시설 거주자들과 종사자들은 대통령을 당선시킬 힘도 낙선시킬 힘도 없다. 그러니까 쉽게 대한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가 다녀간다고 해서 그들은 준비하느라 난리를 치고 부산을 떨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결과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뉴스 시간에 몇 초간 화면에 비치는 것 외에는 말이다.

보도용 제스처에 덩달아 춤추는 사람들

적어도 대선 후보가 사회복지시설을 선거 목적으로 방문할 때에는 큼지막한 선물 보따리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일이나 음료수 같은 선물 말고 대선 공약으로서 복지정책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사진 찍고 생색내는 포장용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복지정책의 비전을 제시하는 배경으로 이용한다면 오히려 아름답고 멋진 장면이 될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에 봉사하러 간 후보에게 동행한 기자들은 복지와 무관한 정치적 쟁점에 대해묻는다. 누가 이러저러한 사실을 폭로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둥 복지와 무관한 인터뷰가 이어지고, 그것이 그날 저녁 뉴스와 다음 날 조간신문을 장식한다. 이런 일이 그 동안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참으로 탄식이 나온다.

조만간 후보들의 공약이 발표된다. 그리고 자료집으로 배포된다. 유권자들은 그것을 구하기도 어렵고 온갖 공약들이 나열되어 있어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사회복지 공약은 끼워넣기식으로 들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 그 동안 사회복지 분야의 선거공약을 보면 각 정당의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거의 비슷하거나 현실적인 고민 없이 외국의 제도를 흉내낸 것들이 많았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정당인 자민련의 사회복지 공약이 가장 진보적인 색채를 띠었다. 과연 복지를 알고 공약을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운 정도였다.

복지는 선심도 아니고 포장도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며 인간답게 사는 것의 문제이다.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는 이에 대해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운영을 맡게 될 대통령 후보는 이 헌법적 의무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답해야 하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복지예산 집행을 법의 원칙에 따라 집행해서 부정수급자를 방지하고 재정을 낭비하지 않는 복지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해야 하고, 정몽준 후보는 복지에 시장원리를 도입해 사회복지의 민영화를 하겠다고 주장해야 하며, 노무현 후보는 사회복지예산을 지금의 두 배 이상 대폭 증액하여 생산적 복지의 내실화를 기하겠다고 해야 하며, 권영길 후보는 사회보험의 국가 부담 신설, 사회수당제도 도입,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대폭 증원, 의사의 준공무원화 등을 공약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는 공약이 될 것이다.

복지는 인간답게 사는 문제

모든 후보들이 똑같이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고 그와 상관없는 인터뷰나 한다든지, 비슷한 공약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그 만큼 복지에 뜻이 없다는 증거다. 앞으로 후보들이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한다면 공약에 적합한 시설을 택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사회복지정책의 비전을 천명해주기 바란다.


- 윤 찬영 / 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사회복지학
- 출처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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