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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편리로부터의 배신

편집팀( 1) 2002.12.18 09:51

[편집자 주] 정보화가 우리 삶의 양식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는 현재. 그 일면과 기술발달의 뱡향에 관한 단상을 담은 한 대학생의 글을 여기에 싣는다.

이글을 쓰는 필자가 요즘 읽는 책과 글의 주제가 기계와 인간의 대한 것이었다. 미래 sf소설,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기계의 미래를 주제로하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암울한 기계에 지배 되는 사회를 그리는 그런 내용이었다.

무분별한 기계의 사용으로 폭주해버린 기계를 더이상 제어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암울하고 차가운 기계의 미래이다. 이러한 미래가 이젠 미래가 아닌 현실에서 보이곤 한다.

대학 생활과 일상생활을 하면서부터 느끼는 점은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대부분이 컴퓨터, 핸드폰등을 사용하도록 요구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고 워드로 레포트를 작성하고 교수님은 이메일로 레포트를 받고, 10년전만 하더라도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것도 이제는 이메일로 보내고, 웹서핑등을 통해 자기와 같은 취미의 동호회를 가입해서 활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의 연락을 위해 항상 손에 들어있는 핸드폰을 통해서 언제든지 연락하고 각종 무선 VAN(Value Area Network)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우리 학교에도 VPN이 설치되어있다. 필자가 있는곳은 작동은 잘 안된다.)

일상을 침범하는 스팸

이처럼 우리는 온라인을 등에 업은 컴퓨터, 핸드폰 등에 의해 엄청난 양의 정보, 다양한 읽을거리들을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보고 얻을 수 있게 된 동시에 많은 매체들이 온라인의 경계를 넘어와서 이제는 시간이나 힘들이지 않고도 컴퓨터 앞에서 모든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음악, 디지털북, 대학에서 받는 강의까지 정말 시각 청각 매체는 컴퓨터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년전의 전쟁의 폐허에서 정보를 얻을 곳이 없어서 지적 자료궁핍으로 헤매다가 PC가 개발된지 단 20년, 그리고 인터넷을 일반인이 쓸수 있게 된지 10년도 안 돼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나오는 수많은 정보로 인한 홍수를 겪고 있다.

가까운 예를 들더라도, 받기 싫은 전화나 SMS메시지, 스팸메일, 웹 광고 등 자신이 필요 범위를 넘어선 정보까지 자신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는 경험을 하면서 정보기기를 이용하면 할수록 '과연 내가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혹, 정보가 오히려 내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을 주는것에 대해 고민 해본 적이 있거나 앞으로 고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은 정말 스모그처럼 언제나 현대인들 모두에게 고통을 주며 앞으로 언제나 겪어야 할 문제로 아주 심각해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폭주하는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리니지
요즘 인터넷 게임상 에서의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문제로 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 이다. 게임상의 세계가 현실과 게임 캐릭터 사이에 죽임이 현실의 죽임으로 이어지고 무리를 지어 게임을 캐릭터들이 현실과 결합하여 현실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현금과 게임상의 사이버 머니가 통용 되고, 아이템이 현금으로 판매가 되며.. 가상에서도 왜 가상과 현실의 세계가 섞여서 제어 할 수 없을 정도로 폭주되어 버린 것인가?

우리에게 현재 이러한 상황을 제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것인가? 그 전에 정보(콘텐츠)를 끝임없이 만들 줄만 알지 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자는 이야기있엇는가 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정보의 과잉 문제는 우리가 많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가의 문제 이다. 토마스 쿤 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교육의 목적이 과학의 패러다임을 선택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는데 학교에서 열심히(?) 교양으로 정보화교육을 받는 우리는 과연 이러한 정보를 선택 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주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보화 교육이 수업 끝나거나 유행이 지난후에는 쓸데 없는 저작 툴 사용하는 교양 과목은 없어 졌으면 한다. 그런 과목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 하는 역할이다. 학교에서 정보철학 쯤 되는 근사한 교양 과목이 생겨서 정보를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정보를 관리,통제할 수 있는가

잘못된 정보 생산과 관리는 미래의 기계 통제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사실 인간의 완벽한 기계의 통제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기계의노예). 인간과 기계의 정보 축적방식에서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보를 얻어서 망각과 깨달음을 통해 지혜로 축적하는 반면 기계는 정보를 그대로 축적하여 부피가 커진다.

그래서 인간은 기계가 지닌 정보를 완벽히 이용을 못한다. 앞으로에 비하면 지금은 약간의 정보가 늘은 것에도 그전의 정보 다루 듯 이용 할려구 해서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러한 기계가 인간과 비슷한 양의 정보를 저장하고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어찌 인간이 기계를 지금 처럼 순한 양 다루듯 할 수 있을까? 그때 쯤이면 복잡해진 기계를 독립된 자기 인식 가진 생명체로 의미를 부여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간이 기계를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패러다임이 완벽한 통제 불가능을 가속화 시킨다. '모든 프로그램의 문제는 추상화를 통해서 해결이 가능하다.'

기계가 발전하고 정보가 기계에 쌓이게 되면 문제의 추상화를 쉽게 가능하도록 해준다. 문제해결의 모든 과정이 하나의 사람이
다 겪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단절되고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다. --이러한 것 이 권력을 만들기도 한다.--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더욱 더.. 사용자의 다룰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다.

사실 우리가 기계를 다루기 쉽게 만드는것은 대안은 정보나 기계의 추상화 --여기 추상화는 기계나 정보를 사람이 쉽게 생각하도록 바꾸어 생각 하는 것이다. -- 였다.

21세기 '모던타임즈'

그러나 이전의 기계의 의존적인 문제해결(해결이 사람 중심이 아닌 사람이 기계에 맞추는 해결방법)은 인간의 기계로부터의 얽매임이 더 컸다. 예를 들면 '모던타임즈'에서 나오던 컨베이어 벨트에서 컨베이어벨트를 따라가는 노동자들을 기계의 움직임에 맞추어 작업을 하던 모습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추상화가 탁월한 방법 이었음에도 우리는 역시 편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기계와 정보) 으로 부터 억매임으로 벗어날 수 가 없다.

90년대 이후 이러한 정보와 테크놀로지와 인간으로 고민하는 의식이 여러곳에 활발하게 나타났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이 주제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많은 만화나 영화등이 이주제를 화두로 던져지고 있다. 이러한 주제로 한 만화로는 90년대 이주제의 대표문제작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 기동대', 그의 영향을 받은 '메트릭스', '제5 원소' 그외로 오시마모루의 '페트레이버 극장판', 나카무라 루타류의 'Serial Experiments Lain', ... 이작품들의 세계관에서는 모든 기계나 정보 자체가 자기의지를 지니고, 오히려 인간과 결합하여 인간과 공존하고,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였다. 미래가 암울하다는 생각보다 보다 이제 인정해야할 현실이다.

암울한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 기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결 수단인가?

얼마전에 친구와 밥 먹다가 오시마모루의 사상에 대해 잡담을 나누다가 섬뜻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일시적이나마 종교나 이데올로기 없이 생활을 할 수 있을 지언정, 기계의 존재가 없어지면 인간의 존재가 위협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 시대를 따라 가기위해 기계가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시대이다. 선택에서 이젠 필요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옷 입듯 밥 먹듯 없으면 불안하고 불편해서 사회 생활을 못 할 정도이다. 필자는 대학 초년에 핸드폰을 안가지고 다녔다.

친구나 모임에서 약속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누구나 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약속변경, 장소 변경, 시간 변경을 쉽게 생각 하여서 좀 고생하고 찾아 다니기 힘들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사귀면서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핸드폰 메신져, e-mail이 필수였다. 핸드폰을 가지고 않으면 그들로 부터 소외를 느끼곤 했다. 그럴때면 내 귀가 하나 줄어든 기분이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주체는 '테크놀로지'?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인간을 변혁시킬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가능성은 테크놀로지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잡지의 오시마모루의 인터뷰의 일부분이다. 종교문제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역사를 보면..) 그가 찾은 새로운 시대의 변혁의 주체는 테크놀로지 이다.

그 전시대의 삶의 과제가 인간의 희노애락을 잘 다루는 거라면 이제는 인간의 문제 + 방대해진 테크놀로지를 같이 다루어 삶을 증진시키는것이 과제가 아닐까?


- 박동희 (전북대 전자정보공학부 휴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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