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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동양철학이야기] 전라좌도를 가다 (4)

최재은( 1) 2003.01.12 14:19 추천:5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은 남부군의 본부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구림에는 회문산이 있다.

회문산은 전라도의 중앙에 있는 산이다. 북으로는 모악산이 서로는 내장산과 추월산이 남서쪽으로는 무등산이 그리고 남으로는 통명산이 남서로는 지리산이 동으로는 산서의 팔공산과 마이산 그리고 북동으로는 운장산과 덕유산이 둘러쳐져 있다. 이름 자체만으로도 회문(回文-산이 돌아든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요건이 전라남북도의 전체를 관망하는데는 안성맞춤인 지형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곳을 들어가려면 어디에서도 산악 또는 고개를 통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지형이다. 나아가 산악지대인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으로 연결되어 산맥이 끊어지지 않는 지세이다.

옛날부터 맹수는 반드시 산맥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한 가장 적절한 지점이 바로 회문산 이었다. 이러한 지형상의 잇점이 반대로 역사에서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으로 뒤바꾼 것이다.

더구나 회문산의 물은 서출동류이자 또한 180도 휘감아 돌아 나간다. 이것은 풍수지리에서 절대 최고의 명당의 요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 명당의 지형에 숱한 무고한 피를 뿌린 역사는 얼마나 심술궂은 일이란 말인가?

살아 싸움이 죽어서도 이어지고 있는 생화학무기의 학살지

심술궂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육군 대령으로서 빨치산 대장이었던 바우장군(정00)의 태생지가 바로 회문산이라는 지점과 맞닿아 있는 필봉 자락에 있다. 그리고 빨치산 토벌시에 최대의 학살지로 부각되는 지점이 지척지간인 백련산과 맞닿은 원통산 자락에 있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근동의 사람들은 쉬쉬하는 장소이지만 공공연한 비밀이다. 옛날 금을 캐내던 폐광 굴이 있었는데 회문산에서 밀려서 지리산으로 들어간 빨치산들의 이동이 있은 다음 낙오된 빨치산들은 이곳에 매복 은신처하였다. 이에 토벌군은 빨치산들의 가족들을 총알받이로 앞세워서 동굴 앞까지 진격한후 호스로 살인가스를 동굴 안에 살포하여 전원을 몰살시켰다. 있을 수 없는 잔악한 전쟁의 이면을 장식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장식에 그치지 않고 참혹한 역사의 그 현장에 현재 전몰군경묘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 얼마나 역사의 심술 사나운 장난이 아니란 말인가? 살아서 그렇게 원수가 되어서 총 뿌리를 맞댔는데 이제 죽은 송장끼리도 다시금 전쟁을 하라는 말인가? 해원(解寃)이 이렇도록 어렵단 말인가?

시원한 속풀이가 제맛인 다슬기탕.

섬진강은 예로부터 깨끗한 강이다. 최근까지도 공업지대가 없는 관계로 큰 강 중에서는 오염이 제일 적은 곳이다. 이곳에는 그래서 예로부터 특산물이 많다. 밑에서부터 하동의 제첩이 있고 또한 섬진강 은어가 있고 나아가 섬진강의 참게는 진상품이었다. 거기까지는 아니어도 섬진강의 다슬기는 맛있기로 소문이 있다. 그러한 곳 중의 하나가 임실 강진이다.

여기에서 속풀이 겸 저녘으로 다슬기탕을 먹고 우리 일행은 오늘의 하루를 정리하여 나가기로 했다. 오늘의 일정이 낙안 읍성에서 너무 지체를 많이 하였던 관계로 저녘이 약간 늦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참석하여 뜻을 같이하였던 여러 동지들이 있어서 별로 피곤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 고장에 대해 얼마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 국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느냐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관심과 이해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관심과 이해가 없는 사랑은 가식과 가증 그리고 위선으로 둘러싸인 거짓일 뿐이다.
무관심과 몰이해는 세상을 무지와 무명의 어둠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옛적 인류의 성자 석가모니는 무지(無智)와 무명(無明)을 심히 경계(警戒)하셨다.



단기4335년(壬午) 음력 10월 초사흘 開天節
終南山 天馬引東明의 草屋에서
圓通山人 雪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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