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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권주평] ‘사기꾼’에 대항하는 지구 용사들!

평화와인권( onespark@chollian.net) 2002.11.04 14:42

사랑하지도 않는데 싸운다는 것! 누군가를 고발해서 벌을 받게 한다는 것! 이것은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 짓을 해야 한다.

왜냐면 사용자들은 우리가 부당함을 지적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법대로 하라'든지 '니들 마음대로 하라든지' 하니 우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사장이 이렇게 나오면 주춤 한다. 그런데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싸우는 젊은이들이 있다.

어느 날 우리 노조사무실에 늘씬하고 예쁜 여성 두 명과 잘생긴 남자 한 명이 찾아왔다. 일반노조로 상담 오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늙은 남성 또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그런데 20대의 젊은이들이 무슨 일로 온 것일까?

그들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열심히 내게 뭔가를 설명했다. 요약하니 '해고당했다' '임금을 받지 못했다' '사기를 당했다' '억지로 물품을 사게 했다'는 거였다. 내게 질문 할 겨를도 주지 않고 서로들 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내가 정리를 해주었다. '허위광고로 인해 피해를 입었군요!' 그제야 그들은 조용히 내 말을 경청했다.(평화와 인권 제315호 기사 참고)

별것도 아닌 사안이지만 전화를 걸어 ‘종알종알’ 물어보는 것도 나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큰 거사를 준비하듯 상기되는 얼굴들도 보기 좋다. 그들이 말하듯 ‘사는 재미’ 가 있어 보인다.
‘부정행위 근절’의 기치를 내건 지구용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는 체불임금 받는 방법과 부당하게 산 상품을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상담을 마칠 생각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내가 다른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노조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사기꾼(회장과 사장)들이 다시는 회사운영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반 농성 식으로 나를 압박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피해본 사람들이 있으면 죄다 연락하라'고 했더니 서너 명의 사람들이 더 몰려왔고 줄줄이 전화로 신고를 해왔으며 이미 노동부에 7명이나 체불임금으로 진정을 낸 사항도 확인되었다. 종합하니 40여명이나 되었다. 모두들 생활광고지를 보고 취직했다가 임금도 못 받고 그만두거나 운전기사로 취직을 했는데 영업사원 일을 강요받다가 해고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젊은이들은 신이 났는지 서너 장씩 진술서를 써대고 자기네들끼리 조사관이 되어 확인을 하는 등 노조사무실을 거의 점거(?) 하다시피 하면서 난리를 피웠다. 나는 유심히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요즈음 젊은이들과는 다르게 열정이 있었다. 진지함도 베어 나왔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뭔가를 해보고자 하는 열의가 맘에 들어서 회사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회사를 찾아가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그들은 첩보원처럼 전화를 걸어서 '사장이 지금 있다. 빨리 와라 오바' '회장은 잠시 나갔다' '아, 지금 들어온다''단단히 준비하고 와라' 며 흥분했다. 그리고는 내가 회사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거의 환호에 가까운 분위기로 나를 맞이했다. 그런데 이미 사장과 '한바탕' 했는지 분위기는 다소 긴장되어 있었다.

회사라고 찾아간 그곳은 다단계 판매업체, 그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빌딩 한 곳을 임대하여 칸막이도 없이 소파 등 사무집기 몇 개를 놓고 회장, 사장 명칭을 사용하는 두 사람이 운영하는 체계였다. 나는 협상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지만 일단은 몇 가지 조사를 하였고 부당대우에 대하여 시정 조치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왔다.

그런데 또다시 젊은이들이 나를 쫒아나왔다. 나는 회사를 방문하여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것으로 내 임무를 끝내려고 했는데 그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연 삼일 노조사무실로 찾아오고 근거자료도 가져와서는 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이러쿵, 저러쿵' 자기네들의 계획을 자랑하였다.

'싹수머리와 사기꾼' 그들이 붙인 사장과 회장의 별명을 연신 불러대며 그들과 '맞장 뜨겠다'는 결의를 했다. 그리고는 노동부도 찾아가고, 인권단체도 찾아가고, 회사에 가서는 사장과 회장과 맞서 연일 싸움을 했다. 내가 해준 것은 법조 항을 일러준 것과 따질 수 있는 근거를 찾아준 것뿐이 없었다.

나는 큰 욕심 내지 않고 부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하여 뭔가를 열심히 하는 그들이 보기 좋았다. 별것도 아닌 사안이지만 내게 전화를 걸어 '종알종알' 물어보는 것도 좋다. 나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큰 거사를 준비하듯 상기되는 얼굴들도 보기 좋다. 그들이 말하듯 '사는 재미' 가 있어 보인다. 그들이 고발한 내용들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부정행위 근절'의 기치를 내건 지구용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 나 미리 / 전북지역 일반노조 위원장
- 출처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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