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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무주택자의 꿈

김수연( icomn@icomn.net) 2020.12.06 15:54

며칠 전 대학 때 친구한테 카톡이 왔다. 졸업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다. 안부 카톡 몇 마디 나누던 그녀는 이번에 집값 때문에 빈곤층이 됐다며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미니멀라이프를 고수하기로 했다고 했다. 부모님 소유의 수도권 인근 아파트에 함께 살며 싱글로 살고 있는 그녀는 부디 서로 건강하기만 하자고 내게 말했다. 나 역시 그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같은 무주택자 처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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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할머니 소유의 주택에 대가족이 함께 살았다. 장남인 아버지가 분가하며 분당 신도시에 당첨이 됐고 그 사실을 안 날, 로또를 맞은 것만큼이나 크게 기뻐하셨다. 아파트값은 천천히 올랐다. 그냥 남들이 보기에 중산층 정도였다. 그러다 아버지가 아프시고 돌아가시면서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때는 아파트값이 오히려 떨어진 상황이어서 시세차익도 별로 못 얻고 팔리는 대로 팔았다. 그 후 1, 2년이 지나자 거의 두 배로 값이 가파르게 올랐다.

 

집을 꼭 소유해야 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었던 나는 결혼 후에도 크게 안달하지 않았다. 그냥 주어진 형편대로 살고 형편대로 이사 다녔다. 지금은 한 동네에서 무려 14년을 살며 세를 내고 산다. 적당히 평온하고 적당히 욕심 없는 동네라 나한테 최적이라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동네마저 들썩이고 있다. 이사 나가고 이사 들어오는 소리가 어느 날 갑자기 멎었다. 수면 위는 조용한데 안으로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는 중이다. 부동산 사장님은 내년에는 더 힘들 거라며 한숨을 쉬었다.

 

가끔은 너무 욕심 없이 살아서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때 되면 계약을 갱신하는 삶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집에 목숨 걸며 사는 삶도 별로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삶이 나아지겠지, 언젠가는 좋은 시절 오겠지 하며 긍정적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더 많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강심장인 나도 불안해진다. 노후를 보장할 끼깔난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뒤늦게 서성인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나보다 10년, 20년 아래의 동생, 자식뻘 되는 친구들은 더 열악하다. 대체로 고시원 살고 단칸방 원룸 살며 고군분투하며 산다. 지방 가면 싸고 좋은 아파트 많은데 왜 서울, 수도권 와서 아득바득 고생이냐고 하는 사람들은 멍청이다. 지방 가면 일자리 없고 인프라가 없다. 젊은이가 버티고 살래도 살 수가 없는 구조다.

 

결국 돈을 지금보다 잘 벌고 투자에도 성공하고 어쩌다 자영업이라도 하게 되면 절대 망하지 않고 회사에서도 영원히 잘리지 않아야 그나마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다. 공무원 시험 합격이 지상 과제였던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이젠 주식에 눈을 돌린다. 예전에도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었지만 갈수록 더 이상해지고 있다.

 

꿈이 서울에 집 한 채인 나라, 꿈이 주식투자 해서 대박 치는 나라는 암울한 나라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뜯어고치려면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릴 것이다. 문제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당장의 1년도 못 내다본다는 점이다. 잘못된 시류에 이리저리 휩쓸리느라 정신없는 서민들은 능력 없고 자기 욕심만 가득 찬 사람들을 걸러내는 눈도 길러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래저래 피곤한 시간이 어서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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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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