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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실의 가치와 거소

이창수( icomn@icomn.net) 2020.12.15 17:31

지난 12월 10일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원회‘)’가 한국 전쟁 전후의 민간인 희생 사건과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자행된 인권유린 사건 등의 피해자와 유족들의 진정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진실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것도 아니다. 국회에서 상임위원 2인을 포함해 8명의 위원을 추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추천할 위원을 내정하고 공개했고, 야당 교섭단체인 국민의힘은 그런 공표마저 하지 않은 상태다. 위원회 조직에서 위원들이 구성되지 않으니 공식 출범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법에 따라 이날부터 2년간 진정을 접수하는 것을 보면 진실위원회의 실체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위원 추천의 지연으로 국가가 공식적으로 진실을 규명할 시간은 통째로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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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과 회피가 정치적인 기획이 될 순 없다

 

개정 과정도 지난했지만, 법률로 정한 출범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 이렇게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평정심으로 지켜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실위원회가 실제 작동하는 것을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진실’과 대면하려는 용기가 부족하거나 그것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일부 정치권에 상존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연시키고 회피하는 것으로 정치의 전술과 전략이 되는 시기는 지났다.

 

진실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진정을 접수한 뒤에, 나는 한 관련 유족에게 전화를 했다. 진정 접수가 시작된 것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실재로 이 진실위원회가 진정을 접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한국 전쟁 당시 우이동에 거주하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일가가 학살되었고, 그 가운데 살아남은 80대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찾고 싶다고 전해 들었던 터였다. 그렇지만 그 딸들은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진실’에 대한 온도 차이가 있었다. 나는 이 유족3세와의 통화를 하면서 문득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진실의 두 차원: 객관적인 것과 피해자를 위한 것

 

실 중에서 가장 좋은 실은 ‘진실(眞實)’이라는 말이 있다. 진실은 개인적으로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참된 실체’를 드러내는 일이다. ‘거짓없이 참된’ 것은 ‘사실’에 기초한다. 발견하거나 알아낸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고 과학적으로 해석하면 진실에 가깝게 된다. 과거청산 과정에서 이런 사실, 조사, 재구성, 해석을 통한 진실을 규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사실’을 ‘무엇 또는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조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즉 피해자를 위한 조사가 아니면 그 사실은 다수의 상식에 불과하고 피해자와 그 유족의 고통과 인권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청산 과정에서 진실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을 사회적으로 완전히 포용하지 못하는 있는 상황, 즉 공식 조사를 지연시키고 진실과의 대면을 회피하려는 사회정치적인 세력이 존재하는 그런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과거 은폐되거나 왜곡된 인권 침해 사건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사회정치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재발 방지와 평화를 위한 차원인, 객관적이고 공익적인 진실규명이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고 회복시키는 진실규명이다. 이 둘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렇게 될 때 과거청산 과정에서 진실은 힘을 얻는 것이다.

 

진실의 가치와 있는 곳을 찾아서

 

은폐되고 왜곡되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들의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피해자와 그 유가족이 그 진실 찾기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통화한 그 유족 3세들은 그러했다. 과거청산 과정에서 망각하는게 치유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경우에도 객관적이고 공익적인 입장에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피해자와 그 유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 분들의 인권적인 가치와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더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분들과 꾸준히 대화해야 한다. 과거청산 과정에서 진실의 가치는 사실을 발견하여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과정(다수의 상식)을 넘어, 피해자 개인들이 생각하는 가치와 존엄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를 숙고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결국 진실의 가치는 피해자의 한이 풀리고 명예가 회복되는 터에서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우리 사회는 과거청산을 통해서 인권과 평화가 구체적인 사회적인 주된 흐름으로 자리할 수 있다. 진실은 실체적 사실과 피해자들의 주체적인 권리에 기초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법도 실효성과 함께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전자는 사실의 문제이고 후자는 규범의 문제이다. 과거사법이 개정되었다. 이것은 규범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작동되지 않고 있어 실효성이 의문이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것은 단순히 법이 작동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가규범이 법의 지배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법이 작동하는 과정이 사실과 규범의 상호작용이듯, 진실을 찾아나서는 길은 다수의 상식과 피해자 약자의 존엄 그 사잇길을 찾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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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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