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루나, 고맙고 사랑해

박정희( icomn@icomn.net) 2021.03.27 10:02

소용이 없다.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올해로 13살을 맞는 나의 첫 강아지 루나는 생일이 막 지난 2월 23일 저녁 8시 14분에 나와 이별을 했다. 마음의 준비를 그리했지만 현실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2009년 2개월령이던 어린 강아지는 나의 첫 강아지이자 나의 가족이 되었다. 한없이 약하고 소심하던 이 강아지는 가족으로 맞이하고 만12년 동안 나를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내가 이렇게 변할 줄 아무도 몰랐다.

 

나의 첫 강아지, 루나

image01.png  

첫강아지 이름은 ‘루나(Luna)’이나. 숫강아지었으나 이름은 은은한 달의 기운을 닮으라고 그리 지었다.

루나는 멋지게 자라주었다. 물론 1살이 될 때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5개월 때는 강아지코로나(요즘 코로나-19 시대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 바이러스와는 다르지만 이름이 같다. 개들의 경우 코로나장염이라고 부르며 감염되면 주로 위장염이 발생)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적이 있다. 당시 병원에서 치료할 때 루나가 나만 보면 너무 흥분하며 좋아해서 수의사가 치료를 마칠 때까지 나보고 오지 말라고 해서 치료가 끝난 1주일 후 퇴원할 때 루나는 마치 ‘자신을 다시는 혼자두지 말라’는 말을 온 몸으로 하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루나를 버리고 떠난 것쯤으로 여겼던 거 같아 보였다. 어린 루나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으니 세상 무너지는 심정이었으리라.

 

루나는 프리즈비(원반) 선수였다. 루나가 받아온 상장만해도 10개가 넘었다. 딸아기는 우스개소리로 가훈을 ‘루나만큼만 하자’라고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나 자신도 ‘내가 루나만큼 주어진 삶에 충실한가?’라는 생각을 자주했고 ‘루나가 나보다 났다’고 생각했다.

 

루나는 상대를 믿는다는 것, 한결같은 마음으로 상대를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단순 명료하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아마도 세상 모든 개는 그러하리라.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하다가도 내가 부르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뛰어와 주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만나면 세상을 다가진 것처럼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 표현은 13년이 될 때까지 한번도 수그러든 적이 없다. (우리는 처음과는 달리 조금만 익숙해지면 상대를 향한 감정이 사라져버리지 않는가)

 

네발 스승, 루나

 

루나는 나에게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다. 루나가 가족이 된 2009년 그해 12월 1살이 되어가는 루나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나는 루나를 맞이하는 것처럼 분양을 하는 기관이나 사람을 찾았다. 그러다 정말 우연치않게 ‘입양’을 하는 방법을 알게되었다. 구조된 동물들을 입양 보내는 기관을 인터넷으로 찾다가 한 단체를 알게되었고, 대한민국에 버려지는 유기견이 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고 인간으로서 미안한 마음에 가장 입양이 안 되는 잡종 대형견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써니’가 두 번째로 가족이 되었다. 이름 그대로 써니는 햇님처럼 밝은 녀석이 되었다. 써니 때부터는 ‘사지말고 입양하세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게되었다.

 

루나는 또한 나에게 개가 아닌 다른 종의 동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변화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루나는 성품이 좋아 고양이도 좋아했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가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늘 ‘개와 고양이가 싸우지 않는지요?’라고 묻는다. 물론 개와 상호교감이 없는 고양이는 일반적으로 개를 무서워하고, 또한 인간에 의해 사냥본능을 키워 놓은 개는 고양이를 공격하여 죽인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경험으론 대다수의 개는 무조건 고양이를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다른 동물과 교감을 한 개나 고양이는 서로에게 관대하며 심지어 종을 초월해서 좋아하기도 한다. 우리 집 개 7마리 모두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전혀 공격성을 띄지 않는다. 고양이 역시 마찬가지로 무서워하기는커녕 좋아한다.

루나 때문에 나는 길고양이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고 집 주변 고양이를 위한 캣맘이 되도록 만들었다.

2011년 구제역으로 온 뉴스가 도배될 때, 나로하여금 고기를 그만 먹도록 만든 것 역시 루나였다.

 

루나,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반려동물은 반려인을 좋은 인간이 되도록 만드는 매직 파워를 가지고 있다. 루나와 나만의 일이 아니다. 김보경 작가 (동물을 마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 도 나와 똑같은 마음을 책으로 펴냈다.

루나는 내게 인간보다 약한 존재를 존중하며 대하는 태도를 가르친 스승이다. 또한 같이하는 순간과 변화가 없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깨우쳐 주었다.

 

스승이자,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나의 루나는 이제 없다.

루나의 긴털을 쓰다듬고 싶어도 다시는할 수가 없다.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보고픔은 가라앉지 않는다.

책임이 무엇인지,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위로가 무엇인지를 알려준 루나에 대한 보고픔을 품고서, 루나가 내게 요구한 ‘좋은 인간’이 되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루나,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영원히 사랑해.

------------------------

박정희

완산여고 교장

동물권활동가

강아지 6(루나가 떠나 감), 고양이 8, 딸1의 엄마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