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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능 단상]모두를 위한 축복과 환대

김현규( icomn@icomn.net) 2020.11.29 13:31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언론에서 자주 표현하듯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이 시험을 위해 온 나라가 들썩인다. 출제 위원들과 검토 위원들은 약 한 달 간 호텔에 감금(?)되고 엘리베이터마다 보안 요원들이 배치되는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 문제가 출제된다. 시험지가 인쇄되면 이를 수송하기 위해 교육청 관계자들은 물론 경찰이 동원되고 시험 당일날은 수험생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전 국민의 출근 시간도 한 시간 늦춰진다. 영어 듣기평가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비행기의 이착륙도 미뤄진다. 수능은 그야말로 ‘온 나라가 동원되어’ 치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험생을 위해 기업과 상공인들도 나선다. 수험표를 가져오는 수험생들에게 할인을 해주거나 사은품을 증정하는 마케팅 행사를 이제 흔히 볼 수 있다. 여행, 숙박, 교통, 의류, 미용 분야를 넘어 의료, 레저, 금융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수험생을 위한 특별 행사를 준비한다. 기성 세대가 이제 막 이십 대가 되는 청소년들을 온갖 정성으로 환대하는 것 같아 마음이 흐믓해진다. 그러나 보이는 것 너머에 그냥 봐서는 보이지 않지만 꼭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십대 후반 아이들은 모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수능에 응시했을까? 이토록 요란한 행사와 축하에서 소외된 아이들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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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ay>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총 15만 259명인데 이 가운데 고등학생은 48.7%인 7만 3,225명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원인은 질병, 장기결석, 해외출국, 학교생활 부적응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이 비율이 2016년에는 2만 3,741명이었는데 2018년에는 2만 4,978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학업중단의사를 밝힌 학생들을 복귀시키는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업중단숙려제를 통해 학교로 복귀하는 학생 비율도 2016년 79.75%에서 2018년 75.08%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이 학생들 중 일부는 검정고시 등을 통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어 수능에 응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수능에 응시하지 않고 성인이 된다.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 고등학생들은 어떨까?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2016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59만 2천여명 가운데 17.4%인 10만 3천여명, 2018년에는 45만 7천여명 가운데 18.16%인 8만 3천여명이 직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2019년 기준으로 일반고 재학생 중 3학년 때 산업고 등에서 직업 위탁교육을 받는 학생은 1만 3천 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생들도 대부분 수능을 보지 않는다. 수험생은 2021학년도 수능 기준으로 약 49만 3,433명이고 이 가운데 십 대인 재학생은 70.2%에 해당하는 34만 6,673명이다. 그런데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0년 10월 현재 전국의 열 아홉 살은 57만 6,625명이다. 정리하면, 수능이라는 국가적 이벤트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열 아홉 살 중에서 60.12%에 불과하다. 약 40%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시작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이들은 수능 응시 여부와 관계 없이 한 달 뒤 모두 스무 살이 된다. 나는 우리 기성 세대가 수험생에게만 공부하느라 수고했으니 혜택을 주겠다가 아니라 스무 살이 되는 이들 모두에게 십 대를 무사히 잘 보내고 이십 대가 되느라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면 좋겠다. 

수능날에 열 아홉 살 내 제자들 중 제과제빵과 조리를 전공한 몇몇은 수능장이 아니라 직장으로 갈 것이다. 출근하고 작업을 준비하고 하루 종일 구슬땀을 흘릴 것이다. 수험표를 들고 그 매장을 찾아 할인 혜택이며 각종 사은품을 받는 자기 또래 고객들을 정성껏 응대할 것이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되는 모두가 축하를 받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냉정한 곳이지만 적어도 잔인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스무 살이 되는 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고 또 앞으로 겪게 될 것인데 적어도 시작점에 서 있는 동안 만큼은 그동안의 수고를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청년들을 기성 세대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축복하고 환대한다면 정말 멋질 것이다. 이런 문화가 뿌리 내린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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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 오늘도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지고 볶으며 가르치고 또 배우며 사는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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