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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거 잘못을 교정하는 방식

이창수( icomn@icomn.net) 2021.02.25 15:52

최근 프로 스포츠계의 선수들의 과거 중·고등학교 시절 폭력 전력이 제기되었다. 그 학교 폭력의 가해한 선수들은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경기 출전을 유보했다. 또 소속 구단이나 관련 체육 단체도 해당 선수들의 경기 출전을 금지시키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어떤 경우는 선수 생활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학교 폭력이 그 피해자에게는 평생 그 고통을 주는 범죄이고, 삶을 온전하게 누릴 기회를 박탈시킬 수 있는 반인권적인 이탈임을 다시 확인하고 근절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즉 가해 선수들은 공식적인 ‘직업’ 스포츠계에서 퇴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포츠계의 폭력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또 그 근절 대책도 여러 차례 제시되었다. 과거 문제가 된 것은 국가대표 선수 등 생활 등을 하면서 제기되어 법적인 문제로 처리된 반면, 요즘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 학생일 때 가한 폭력으로 가해자에 대한 법적인 재제를 할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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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과거 학교 폭력의 가해 선수들은 퇴출되어야 한다는 최근 언론과 여론의 흐름과는 다소 엉뚱한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다. 법과 법감정(사회여론)이 잘못을 시정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에 제기되는 사건들은 스포츠계 폭력은 프로 선수가 과거 학생시절에 저지른 폭력 즉 범죄행위(잘못)을 제기한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공소시효 등이 도과해 가해 선수를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인데, 여론은 가해 선수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사실상 제한하고 경제적인 활동을 포기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즉 잘못을 시정하는 법적 정의를 실현할 추진력이 거의 없지만, 사회적인 재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학교 폭력의 가해자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정도의 공감대 형성된 것은 첫째 스타 선수의 뒤에 있는 과거의 잘못을 뒤늦게 알게된 배신감도 있을 것이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직업 스포츠 선수의 경제활동의 장을 소비하는 대중이 마련하고 있는 구조이다. 스포츠를 구매하는 대중의 감정이나 상식을 벗어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점에 기초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인 재제도 법과 마찬가지로, 그 동안에 있었을 피해자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인 실천보다는 가해자를 퇴출시키자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즉 법적인 처벌 구조와 같은 맥락에 있다. 이른바 권력형 성폭력의 문제도 가해자 처벌에 집중되어 있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뒷전인 경우와 유사하다.

 

이번 과거 학교폭력 가해 선수들은 모두 학교 또는 그 학교라는 공식 기구에서 ‘공인’된 스포츠팀에서 발생한 것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학교폭력은 학교 또는 그것을 작동시키는 공식적인 기구에서만이 아니라 재학 시절을 관통하는 모든 시간 동안 학교든 학교 밖이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학교 스포츠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번의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당시에 제기되지 못한 문제는 이것이 절대화된 학교가, 그렇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공인한 스포츠팀내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그 팀의 감독, 코치 선생님들은 과연 이런 폭력을 몰랐을까? 혹시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문제이지만, 당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재제나 학교 개입 등 공식적인 기제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학교폭력 당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은폐하려는 힘들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식적인 재제나 시정 노력은 언제나 공식적인 목표인 스포츠 경쟁에서 이기기는 것이 유일한 철학을 가진 집단에 의해서 은폐되거나 침묵하고나 묵인된다. 잘못에 대한 법이나 공식적인 재제가 제도적인 힘에 의해서 왜곡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스포츠 선수들의 과거 학생폭력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오늘 학교와 그 소속 공식 스포츠팀 등에서 학교폭력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학교 폭력의 문제를 점검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여전히 가해 전력을 가진 스타 직업 선수들을 퇴출하는 위화의 억지력에 기반하고 있다. 즉 우리 사회는 여전히 피해자의 일상 복귀를 위한 제도적·사회적 노력과 잘못이 벌어지는 지금 이 순간을 공식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열정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사회적인 힘은 법적인 힘이 하지 못한 과거의 잘못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오늘 이런 잘못이 저질러지고 있을 지도 모를 가능성을 염두 해 두고,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공식적인 재제가 당시에 작동되지 않고 선택적으로 작동할 때, 국민들은 정의를 되묻는다. 하지만 과거가 되어 버린 뒤, 뒤늦은 정의를 외치는 사회적인 힘은 피해자의 일상복귀에 힘쓰고, 지금도 유사하게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들을 점검하지 않는다면 실효적으로 시정하는 방식이 될 수 없다. 그 가해 선수가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그런 가해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결국 사회적인 힘이나 법적인 힘의 덕성은 사람답게 살 권리에 기초하여 지금 뭔가를 해야 정의에 부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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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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