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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근혜 퇴진을 넘어 체제의 개혁까지

아래로부터의 토론과 요구가 시민혁명의 출발점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jbchamsori@gmail.com) 2017.02.02 15:00

2016년 10월 29일부터 시작된 광장의 촛불이 열 번째 만에 1천만 명을 돌파했다. 광장에서 새로운 ‘시민혁명’의 역사가 쓰이고 있음을 감격스럽게 확인하고 2016년은 막을 내렸다. 광장의 기록을 매번 갈아치운 시민들조차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혁명을 두고 많은 말들이 나누고 있다. 한참 진행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유형의 ‘직접행동 민주주의 혁명’이기도 해서 전문가들조차도 일치된 성격 규정을 못하고 있다.


그런 중에 2017년 새해를 맞았다. 500년 전의 종교개혁, 100년 전의 러시아혁명, 30년 전의 6월 항쟁을 끌어내오면서 2017년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한다. 지금 진행되는 상황으로 보면 격변의 한 해가 될 성싶다. 헌재의 탄핵이 예정되어 있고, 헌재 탄핵이 결정되면 60일 이내에 19대 대선이 치러진다. 그런 중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정치세력의 합종연횡이 예상되며, 개헌 관련 논의도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탄핵을 당하는 입장인 박근혜 세력 등 기득권 세력들은 현 상황이 광장의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저들의 반격은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새해 첫날 박근혜의 느닷없는 기자간담회로 드러났으며, 대통령 권한대행에 불과한 황교안이 국정역사교과서 강행에서 보듯이 지속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정책들을 강행해가는 점에서도 볼 수 있다. 박근혜와 그 일당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다. 죽기 살기로 대들 그들과의 한 판 대결이 남아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올해 상반기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규정할 새로운 판짜기가 진행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요구는 ‘박근혜 퇴진’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 퇴진’이다. 나아가 오늘의 박근혜를 가능하게 했던 체제의 변화까지 나아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박근혜 퇴진은 기정사실로 굳히고 있다. 오로지 추운 겨울에도 매주 토요일 광장을 지켜온 시민들의 힘이 아닐 수 없다. 그 힘으로 국회를 탄핵으로 견인했고, 지금은 특검과 헌재를 견인하는 중에 있다.


그렇지만 이후 박근혜 정권 퇴진이나 나아가 잘못된 불평등, 불공정, 불의한 체제를 바꾸는 일을 책임지고 나서야 하는 정치 주체가 아직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광장의 시민들의 힘이 거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탄핵 다음에 곧바로 닥칠 19대 대선,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 중에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서 광장의 시민들은 흩어지고 새 판짜기는 결국 새 대통령의 의지에 달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거기에 정치권의 논의에 따라서 개헌국면이 펼쳐질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대선 이후 새 정부에서 개헌하자고 하는데 국회에서는 이미 개헌특위가 만들어지고 논의가 시작되고 있음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세 갈래의 분노


광장의 시민들을 모아낸 것은 ‘분노’였다. 그 분노들의 세 갈래였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나 백남기 농민의 사망 사건에서 보듯이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못하거나 살해했음에도 어떤 책임도지지 않음에 대한 분노가 그 하나다. 공권력을 앞세워 정부의 안위만을 구한 정권이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세력들은 가차없이 응징하고 사찰하고 사법부마저 압박하는 민주성을 상실한 정권에 대한 분노였다.


걸핏하면 안보와 민생을 위한 사심 없는 결단을 내리는 것처럼 온갖 생색을 다 내던 이들이 사실은 온갖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협잡꾼들이었다는 점에 대한 분노였다. 정경유착, 권언유착, 기울어진 운동장 등의 언어들로 표현되는 세계의 민낯이 완전히 드러났다. 국민들이 알던 온갖 의혹들이 사실로 확인되고, 그 사실들이 갖는 함의는 썩어도 너무 썩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정유라의 이와여대 부정입학과 부정 학사관리에서 보듯이 다수의 국민들은 그나마 공정하다는 입시경쟁의 룰마저 파괴된 데에 분노했다. 특히나 ‘헬조선’ 온갖 노오력을 해도 실업자나 비정규직 신세를 면할 수 없는 절망의 청년들의 분노는 더욱 컸다.


이런 분노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비선실세와 같은 특권층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었으며, 헌법이 금하고 있는 ‘사회적 특수계급’이 창출되어 비정상적으로 국민을 지배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로 집약되는 분노는 광장에 시민들을 불러 모았고,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판단하여 행동했으며, 그런 집단지성이 모여서 누가 대신 나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이번 광장의 시민혁명은 근본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냈다. 시민들은 온갖 불법, 탈법, 부정부패의 정점에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확인하고도 당장 끌어내릴 수 없음에도 분노했다. 국민소환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였다. 그래서 개헌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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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개혁부터 근본적 개혁까지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 퇴진, 나아가서 체제를 바꾸는 새 판짜기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먼저 ‘박근혜 표 나쁜 정책’의 중단과 폐기이다. 시급하게는 역사국정교과서를 중단한다든가 사드 배치를 중단하는 것, 노동시장을 더욱 황폐화하게 만들 성과연봉제 같은 것들 폐기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국민들의 의사와는 반하는 방향에서 대통령과 측근들의 사심에 의해서 결정되고 추진되었던 것들이다. 아울러 세월호 특별법 재추진, 백남기 특검 추진, 방송장악법의 개정으로 공영방송을 정상화하는 사안 등이다. 어디 이것만이겠는가. 박근혜 4년 동안 저지른 온갖 악행들을 찾아내고 되돌려서 정상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둘째로 중요한 게 인적 청산이다. 김기춘과 우병우와 같은 세력들, 정권에 돈을 갖다 바치고 자신들의 사익을 채운 재벌총수들과 같은 이들을 공직에서 추방하거나 처벌하는 일이다. 인적 청산이 되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부패한 권력이 특권층이 되어 민주공화국을 파괴할 수 있다.


셋째는 국가기구의 개혁이다.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사법부, 공영방송 등의 개혁들이 뒤따라야 한다. 이들 기구와 기관들을 활용해서 민의를 왜곡하고, 조작하였고, 정권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을 일삼았다. 김기춘 일당이 청와대를 옛 유신 시절의 중앙정보부처럼 운영하면서 이들 기관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을 저질렀다. 비대한 청와대의 구조를 혁파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런 세 가지 차원의 개혁이 우선적으로 또한 동시적으로 진행되면서 미래의 민주공화국에 대한 상을 아래로부터 광범위하게 모아내고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이번의 시민혁명은 혁명이라는 이름에 값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위의 과제들은 진짜 새 판짜기를 위한 전제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체제만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마저도 새로 짜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헬조선의 비극적인 국가를 넘을 수 있겠는가.


이런 개혁을 위한 힘은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까? 광장에 모여서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요한 게 아래로부터의 제안과 토론이고, 이를 집약된 요구로 만들고 관철하는 정치적 시민운동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한정해서 진행하는 개헌을 막을 수 있다. 결국 우리 앞에는 기회는 있지만 이번 기회를 넘어서 근본적인 새 판을 짜야 하는 조직체도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과연 이번의 시민혁명이 이런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우리사회 진보진영이 짊어진 중차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칼럼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소식지 '평화와 인권'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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