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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학교가 달라지고 있다

학교 공간혁신으로 가는 길

강미현( icomn@icomn.net) 2019.10.21 17:13

“친구들과 술래잡기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어요. 숨을 데가 없어서 술래잡기를 할 수가 없거든요.”

“친구와 비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할 공간이 없어요. 저희만의 아지트가 필요해요.”

“쉬는 시간이 짧아서 복도에서 놀 수밖에 없는데 맘껏 떠들 수 없어요..”

초등학생들과 건축가가 학교 공간에 대해 한참 대화중이다.

참여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자신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에 마음에 담아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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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건축가와 참여수업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을 표현하는 학생들)

 

학교가 달라지고 있다.

교육부가 앞으로 5년간 학교 공간 혁신을 위해 9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며 학교일선에서 공간 혁신 열풍이 불고 있다.

학교 공간혁신이란 무엇인가. 학교라는 공간이 가진 획일적이고 견고한 물리적 관행을 깨는 프로젝트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학교 공간의 본질적 주인인 학생과 교직원의 주도적 참여로 공간 주권을 회복하는 사업이다.

무엇보다 공간 프로젝트이기에 건축가의 참여가 필수요소로 작용한다. 그동안 학교 건축은 물량 위주의 공급 사업으로 진행되며 학생이나 교직원의 참여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건축가 역시 실제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공간 이용 행태를 관찰할 시간도, 필요도 없이 관리주체의 지시를 받아 설계 도서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학교건축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니 학교는 획일적 모양으로 붕어빵 찍듯 생산이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학교 공간을 성공적으로 혁신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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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건축가와의 참여수업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는 학생들)

 

첫 번째는 학교 건축 과정에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학생, 교직원, 건축가 등 주체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지 못한, 혹은 자각은 했으나 권리를 실현하지 못한 당사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의 이양이기도 하다. 이 변화는 기존의 탑다운 방식인 시설 행정체계와는 다르기에 관계자들의 인식뿐 아니라 시스템의 변화까지 요구된다. 무엇보다 당사자 스스로 권리에 대한 감수성이 있어야 하며 권리에 따른 책임까지 인지해야 한다. 학교는 지식을 습득하는 공간이 아닌 삶의 방식을 배우는 민주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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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놀이공간을 디자인하는 학생들)

 

두 번째는 학교 공간 혁신을 위해 학생들이 참여하는 설계수업의 지속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교 건축은 방학기간을 활용하여 공사를 한다. 즉 사업이 선정되어 진행될 때 공사 일정이 중요도의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 공간 혁신에서 본질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학생들과의 참여 수업은 조급하게 진행되거나, 축소 혹은 일부 내용이 생략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건축가와 함께하는 참여수업은 학기과정에서 안정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사용할 공간을 스스로 디자인 해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다. 건축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삶과 밀접한 건축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게 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그 해결방식이 사용자에 의해 제안 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진행이 되어야 한다. 그 해결방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학, 미술, 과학 등 다양한 교과 지식들이 건축이란 복합체를 통해 구현될 수 있기에 학생들에게는 경험을 확장시켜주는 좋은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다양한 재료를 통해 구현해보는 학생들.jpg

(사진: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다양한 재료를 통해 구현해보는 학생들)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건축가들의 능동적 변화이다. 학교건축에는 교육철학이 반영되어야 한다. 당사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혹은 관찰하기 위해 다양한 설계수업(워크숍, 투어, 회의 등)이 필요하다. 건축가가 공간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기에 섬세하게 기획해내야 한다. 기획자로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을 때 공동주체로서 함께 설 수 있는 것이다. 사용자의 언어를 찾아내어 눈높이에 맞는 설계수업을 계획하고 과정내내 보다 좋은 건축공간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또한 그렇게 찾아낸 사용자들의 니즈를 일차원적 지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 담긴 내용까지 고려하여 건축어휘로 풀어내야 하는 사명을 가진다.

추후 만들어질 공간에 놓일 의자일부를 디자인해서 만드는 학생들.jpg

(사진: 추후 만들어질 공간에 놓일 의자일부를 디자인해서 만드는 학생들)

 

혁신은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에게도 교직원에게도 또 건축가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사업이 학교 공간 혁신이다.

 

어쩌면 가장 솔직하게 시급한 것은 [어른]이란 견고한 관행을 깰 수 있도록 학생들의 권리가 우선 탑재된 중간지원 조직의 결성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갈 길이 참 멀다.

 

/ 건축하는 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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