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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20년 8월 6일, 멕시코 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수가 5만 명을 넘어섰다.

이로써 미국과 브라질에 이어 사망자 기준 세계 3위가 되었다. 지난 3월 18일 첫 사망자가 발생한지 다섯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초기 멕시코 보건 당국이 예측한 총 사망자 숫자는 8천 명이었고, 중간에 다시 한 번 3만 명으로 상향 조정되었지만, 그 마저도 진즉 의미 없는 숫자가 되어버렸다. 보란 듯이 5만 명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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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멕시코 아홉 개 주 주지사들이 연합하여 사임을 요구한 멕시코 연방 보건부 차관 Hugo López Gatell, 출처: 멕시코 정부 대통령실(Presidencia de la República)

첫 확진자가 발생했던 지난 2월 말, 그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누군가는 페스트라 했고, 누군가는 인플루엔자라고 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심각하게 확진자와 사망자를 내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그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기후나 지리적 요건을 방패 삼아 무탈히 지나가주기를 바랬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이라는 궤도에 조금 늦게 올라탔을 뿐, 올라탄 이상 여느 나라들이 겪은 파동을 피해갈 수 없었고 오히려 더 가혹하게 진행되었다. 3월 중순에 첫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자택대피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1만 명의 사망자를 낸 끝에, 6월 초 자택대피령이 해제되었다.

이 때부터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시작되었다. 10만 명의 누적 확진자와 1만 명의 사망자가 존재하는 가운데, 그간 봉쇄되었던 경제활동들을 순차적으로 풀겠다니, 이에 대한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와 국민 모두 두 달 넘게 멈춰선 경제활동으로 인한 압력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정상’을 기대하며 조심스레 그간 닫혔던 문들을 열고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이후 멕시코의 코로나바이러스 상황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불행하게도 ‘정상’과는 거리가 먼 새로움이었다. 연일 사망자와 확진자 숫자에 신기록이 세워졌다. 불과 20여일 만인 6월 19일 사망자는 두 배가 되어 2만 명을 넘어섰다. 그로부터 다시 보름 후인 7월 4일 사망자는 3만 명을 넘어섰고 7월 21일에는 4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8월 6일 결국 사망자 5만 명을 넘어섰다. 자택 대피령을 해제하면서 시작된 New Normal 시대에 사망자가 4만 명이나 더 증가한 셈이다. 물론, 확진자도 40만 명이 증가하였다. 불과 두 달 사이의 일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초기, 멕시코 보건 당국이 내놓은 원래의 예측대로라면, 5월 8일 경 확진자 증가는 정점을 찍고 점점 하향하여 6월 말이 되면 이 사태가 종결될 것이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하룻 동안 발생하는 확진자 숫자와 사망자 숫자는 여전히 가파른 속도로 상승 중이다.

최근 들어 하룻 동안의 확진자는 평균 8000 여 명, 그리고 사망자 숫자는 8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어느 하루 그 보다 조금 더 높아지면 소식을 전하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는 암울 모드로 잠기고, 그보다 조금 낮아지면 목소리에 생기가 돋는다. 하룻 동안 8000명의 확진자 숫자와 800명이라는 사망자 숫자가 지금 현재 멕시코에서는 암울과 희망을 가르는 어떤 기준이 된 듯하다.

바로 위 미국에서 멕시코보다 훨씬 더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마당이니, 24시간 동안 목숨을 잃는 숫자 800명은 어쩌면 묘한 위안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놓쳐서는 안될 것이, 두 나라 사이 치명율 차이다.

2020년 8월 8일 통계를 보면 미국의 경우 하루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서는 날들이 많이 있지만, 전체 확진자 대비 치명율은 1.3%를 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에서 치명율이 가장 낮을 것이라고 공언할 만하다. 반대로 멕시코는 이미 지난 5월 이후 계속해서 12%에 가까운 치명율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멕시코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열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셈이다. 일단 병원에 입원을 환자들로 한정한다면 치명율은 36%까지 치솟는다. 열 명이 입원하게 되면 그 중 네 명이 사망을 하는 상황이다. 비교적 경미한 환자들은 자가 치료를 하는 반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될 정도면 중증 환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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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20년 7월 31일 멕시코 인터넷 언론 Animal Politico에서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사진. 당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누적 사망자는 46,688명이었다)

물론, 지난 2월과 3월 일찍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호된 공격을 받은 유럽 국가들 중 영국이나 이태리 같은 나라들이 14% 대로 멕시코보다 높은 치명율을 보였지만, 이 나라들은 각 국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두 달이 되기 전에 정점에 닿은 후 사망자와 확진자 모두 감소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영국, 이태리, 스페인 이 세 나라가 유럽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가장 혹독하게 치룬 나라로 구분되는데 이들 세 나라 모두 한달 보름 여 만에 사망자 증가 속도가 정점에 달한 후 하향했다.

그런데 멕시코의 경우 지난 3월 18일 첫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8월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사망자 숫자 증가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언제쯤 정점에 닿을지, 그리고 몇 명의 사망자가 나올지 이미 여러 번의 예측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한 예측이었다.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칠레 등과 같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여전히 사망자와 확진자가 증가 추세에 있긴 하지만, 멕시코의 치명율은 이 모든 국가들보다도 월등히 높다.

그나마 이 기록은 공식적인 수치일 뿐, 보건 당국이 인정하는 비공식적 수치까지 포함시킨다면, 확진자 숫자와 사망자 숫자는 훨씬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확진자 숫자와 관련하여 멕시코 보건 당국은 공식적 숫자에 8배를 곱하라 했고 6월 이후 사망자에 대해서는 적어도 3배는 곱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치명율은 조금 내려갈 수 있겠지만, 세계 1, 2위를 다투는 미국과 브라질의 기록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암담해지는 순간이다.

멕시코 보건 당국이 확진자와 사망자에 대해 정확한 숫자를 내지 못한 채 이렇게 큰 오차범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적은 검사 건 수 때문이다. 8월 8일 현재 멕시코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검사가 이루어진 건 수는 1,085,897 건에 불과하다. 이 중 확진을 받은 수가 47만 6천 건이며 9만 여 건은 현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검사를 받는 자들 중 50% 이상이 확진을 받게 된다. 검사율 대비 확진자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초기, 멕시코에서는 중증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검사가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지방 병원에서는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경우로 한정되었다. 그러다 보니 무증상자이거나 경증상자의 경우 검사의 기회도 얻지 못하였고, 그런 와중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면, 이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나 사망자 통계에 집계되지 않았다.

굳이 대한민국이나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바로 위에서 엄청난 수의 확진자와 사망자를 내고 있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해봐도 멕시코의 상황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미국의 경우 8월 8일 현재 검사 숫자가 6천5백 만 건을 넘어섰고 그 중 약 9%가 확진되었다. 미국에서는 검사를 받는 사람들 열 명 중 한 명이 확진을 받는 반면, 멕시코에서는 검사를 받는 사람들 두 명 중 한 명이 확진을 받는다.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도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멕시코보다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검사 수는 멕시코를 훌쩍 넘어서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브라질을 필두로 페루, 베네주엘라 칠레, 콜롬비아에서 멕시코보다 훨씬 많은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쿠바, 엘살바도르, 도미니카 공화국 등도 멕시코보다는 검사 수가 적은 편이지만, 이 나라들이 멕시코에 비해 인구 수가 비교 불가할 만큼 적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멕시코는 라틴아메리카에서도 가장 소극적인 검사가 이루어지는 나라임을 알 수 있다.

멕시코 내 검사 수가 적은 상황에 대해서 국내외 언론들의 비판이 일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소문과 추측 또한 난무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한가지는 멕시코 정부와 보건 당국이 적극적인 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대부분 지방병원뿐 아니라 수도 멕시코시티에 있는 상당 수 병원에서도 충분한 검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여전히 지방의 병원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결과를 받기까지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초기 열흘에서 보름까지 걸렸던 시간에 비하면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지극히 한정되고, 또한 검사 후 결과를 받을 때까지 수 일이 소요되는 가운데 정부에서 발표하는 공식사망자 숫자가 5만 명에 이르렀을 때, 급기야 구체적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첫 확진자가 발생한 2월 28일부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저녁 여덟 시에 대국민 보고를 해 온 보건부 차관 Hugo Lopez Gatell에 대한 사임 요구였다.

멕시코 아홉 개 주에서 주지사들이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더 이상 숫자 놀음과 함께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는 이유였다. 해당 아홉 개 주 인구 합이 4천만 명임을 강조하면서 보건 당국은 인구 4천 만 명의 요구에 따를 것을 종용했다.

물론, 보건부 차관은 사임하지 않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보건부 차관이 사임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방어막을 쳤다. 더불어 아홉 개 주의 주지사들이 내건 요구가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하나의 포석임을 역시 국민들 앞에 자세히 설명했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 사이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 숫자는 다소 줄어들며 희망을 주는가 싶더니, 다시 매일 1000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 때, 멕시코는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단 한 번의 승기를 잡아보지 못한 채 끌려가는 듯하다.

그 와중에 판도라의 상자라도 열린 듯, 오랜 시간 멕시코가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문제들이 일시에 수면 위로 올라와 멕시코 곳곳을 유령처럼 횡행한다. 가장 먼저 취약한 의료시스템의 문제가 터져 나왔고,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가 대두되었으며, 마약카르텔에 의한 치안부재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불거졌다. 물론 그 모든 문제의 기저에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부정과 부패가 도사리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어쩌면 그 모든 문제들이 일시에 터져 나올 수 있는 문을 열어준 셈이다.

지금까지 멕시코 정부와 보건 당국이 단 한 번도 사망자와 확진자 숫자를 예측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신기록을 세워가며 치솟는 수치를 뒤쫓는 반면, 지금까지 추이를 비교적 정확한 숫자로 예측해 온 기관이 있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교의 건강 측정 및 평가 연구소다.

이 연구소만이 유일하게 8월 초 멕시코 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숫자를 5만 명으로 추정했었다. 그리고 암담하게도 금년 12월까지 사망자 숫자를 15만 명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한다면 15만 명의 사망자 숫자는 11만 명까지 줄어들 것이란 조건과 함께 말이다.

2020년 8월 13일 현재, 멕시코 내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사망자는 5만5천 명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정치인들은 여전히 마스크 착용을 피하고 있다. 대통령도 물론이다. 수일 전 아홉 개 주 주지사들이 연합하여 사임을 요구했던 보건부 차관 Hugo López Gatell은 8월 13일 대국민 보고에서도 여전히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해당 연구소는 멕시코에서 얼마나 마스크 착용을 엄격히 규제하는가에 따라 15만 명에서 11만 명까지 상이한 사망자 숫자를 낼 수 있다고 예측하였다. 이미5만 5천 명이 사망했고 앞으로 10만 명 정도가 더 사망할 것이란 예측 앞에 마스크만 철저히 착용한다면 4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판도라 상자 안에 내재되었던 모든 악의 뿌리들로부터 설령 현 정권이 조금은 자유롭다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코로나 시절 마스크 정책으로부터는 절대로 자유롭다 할 수 없다. 4만 명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 지금이라도 보다 더 철저하게 마스크를 써야한다. 물론, 대통령부터. 그리고 더 많은 정치인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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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Lim, Su Jin),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

(Facultad de Ciencias Políticas y Sociales, Universidad de Colima)

 

일곱 살 먹던 해 겨울, 할머니를 따라 서울에 갔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역 광장에 단아하게 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울역사 앞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각인이었습니다. 이후 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였습니다. 결국, 이다음에 크면 반드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진 못하였습니다. 대신, 지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핑계 삼아 원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 서른 살이 되던 2001년, 코스타리카로 갔습니다. 19세기 말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의 증손자 쯤으로 신분을 둘러대고 커피밭에 ‘위장취업’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커피를 따면서 3년을 보냈습니다.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는 저 ‘불량노동자’를 걱정하며 자신들이 딴 커피와 음식과 마음을 나눠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이 니카라과에서 건너온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의 삶을 좇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이후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주’, ‘국제분쟁’, ‘지정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0년 이후 멕시코 연방정부 고등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가연구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 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21세기 중앙아메리카의 단면들:내전과 독재의 상흔>, <세계의 분쟁(공저)>, <디코딩라틴아메리카: 20개의 코드(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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