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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전, 그리고 클래식

한성주( icomn@icomn.net) 2021.01.20 08:51

고전(古典) 이란 말은 한자로 보면 옛 경전입니다. 일단 오래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경전이란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어떤 기준이 되는 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봤을 때, 고전은 오랜 세월동안 기준이 되는 높은 수준의 작품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고전은 영어단어로는 클래식(classic) 으로 번역이 됩니다. class 라는 말을 포함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상류 계층이 향유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클래식은 한국에서는 주로 고전음악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고전음악은 Classical music 이고, 캠브리지 영어사전에서 classic을 찾아보니 첫 번째 해설이 “높은 수준이거나 다른 것들을 평가하는 기준을 갖는 것” (having a high quality or standard against which other things are judged) 이라고 합니다.

 

자동차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미국에서는 클래식 카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조된 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차를 클래식 자동차라고 하지요. 지금도 구글에서 classic을 검색하면 오래된 포드, 폰티악, 닷지 등의 클래식 차량들 사진이 먼저 나오는 걸 보면 우리에게 클래식이란 단어가 고전음악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그들에겐 오래된 명차들을 먼저 연상 시키는가 봅니다.

 

Ford-Mustang-1024x652.jpg(사진: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는 Ford 사의 클래식카, 1965년형 Mustang)

탄산음료 업계에서 전세계 부동의 1위인 코카콜라가 시장을 더 확장하겠다고 체리코크, 다이어트 콜라 등 여러 가지 제품을 내놨다가 오히려 점유율이 떨어지자 다시 원래 코카콜라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코카콜라 클래식’ 이란 제품을 내놓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는 이야기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만큼 클래식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2003년에 개봉한 곽재용 감독의 영화 ‘클래식’ 은 두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엔 뭔가 옛날식 로맨스라서 제목을 저렇게 지었나 했는데, 아마 제작진도 시대를 뛰어넘어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의미로 클래식이라 제목을 지은게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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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클래식 포스터)

 

한 번은 서양인 친구들과 모여 다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한 명이 사진을 보고 ‘classic!’ 이라고 외치길래 이 상황에서는 클래식이 무슨 의미냐고 물으니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냥 피식 웃고 지나가는 수준이 아니라 두고두고 봐도 웃길 것 같다는 식의 과장된 표현인 것 같았는데, 사전에 찾아보니 아예 아주 웃기거나, 나쁘거나, 이상한 것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있네요. 요즘 우리말로 치면 ‘역대급’ 정도로 사용되는 것일까요.

 

우리말과 영어를 비교해봤을 때, 우리의 고전은 기본적으로 ‘오래된’ 이라는 표현을 넣는 반면에 서양의 classic 은 ‘앞으로 오래 지속될’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오래된 것, 조상님의 지혜를 최고로 인정하고 지금의 내가 감히 최고라고 말하면 무례하게 보는 문화가 있었기에 그런 차이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동양에서도 단순히 오래된 문학은 고전문학이 아닌 고대문학이라고 합니다. 역시나 오래되었음에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고전이란 말을 붙일 수 있습니다.

 

문학이나 영화 등에 있어서도 고전의 힘은 대단합니다. 주제의식이나 서사, 인물 캐릭터나 관계의 설정 등에 힘이 있어서, 지금 봐도 여전히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 바로 고전이지요. 현대문학이나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고전문학을 읽으면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 작품 이후로 수많은 곳에서 때론 패러디로, 클리셰로, 또 어떤 것은 오마주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우리는 수많은 작품 속에서 가문의 갈등으로 인한 사랑의 희생을 보아왔고, 괴테의 파우스트 이후로 얼마나 많은 주인공들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는지 모릅니다. 패러디로 유명한 우리 작품 중에는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이 있지요. 그 서사가 어찌나 훌륭한지 18세기에 연암이 지어낸 이야기를 가지고 21세기에 들어서도 어떤 주제든지 적절히 녹여 넣으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있어서 지금도 수많은 패러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고전의 힘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故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이란 책을 보면 우리가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동양의 고전들 속에 들어있는 무한한 지혜가 얼마나 생동감 있게 들리는지 모릅니다. 어렵지 않은 책이니 반드시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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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著)

 

음악으로 이야기하자면, 소위 유행가들은 시간이 지나가면 흘러간 옛노래가 되지만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전혀 없지요. 그렇다고 대중음악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맡고 있는 부분이 많이 다르죠, 더구나 대중음악 역시 클래식 음악의 화성과 흐름 등의 뼈대를 가지고 응용하여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를 활용한 스위트박스의 ‘Everthing’s gonna be all right’ 이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활용한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처럼 아예 클래식 음악을 그대로 사용한 대중음악도 많지요.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이 고전이 될 만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일반 대중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대중들의 취향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됩니다. 저도 아직 클래식 음악이라면 유명한 콩쿨에서 한국인 중에 누가 1등 상을 타야 그제서야 관심을 가지고, 미술이라면 어디 경매에서 누구의 작품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렸더라 같은 소식에나 눈이 가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어느날 조성진씨가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을 들었을 때의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 늘 보던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을 미술관에서 보며 심장이 뛰는 느낌에 놀라면서 나도 문화적 식견을 좀 더 가지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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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 한의사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IBM Korea 에 잠시 근무를 했다가 세명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성주한의원(경기도 성남시 판교지역) 원장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센인들을 위한 회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고, CBS 팟캐스트 '스타까토' 에서 정치시사관련 인터넷방송을 한 적이 있으며 국방FM '너를 사랑하기에 전유나입니다' 에서 수요일 고정 코너로 '한성주의 세상풍경' 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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