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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날”이나 “요즘” 정치가 거기서 거긴 이유

이창수( icomn@icomn.net) 2021.01.22 12:58

<우리는 ‘외적인’ 법문화와 ‘내적인’ 법문화 사이를 변별할 수 있다. 외적인 법문화는 주민 일반의 법문화이고, 내적인 법문화는 전문화된 법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회의 구성원들의 법문화이다. 모든 사회에는 법문화가 있지만, 법 전문가들이 있는 사회들만이 내적인 법문화를 갖는다. 안건으로 법적 과정이 수립된다는 것은 그 체계속의 요구이다. 이해관계는 요구사항들로 전환되어야 한다. 즉 외적인 법문화의 한 부분인 태도와 행위는 내적인 법문화의 요건들에 부합되도록 처리되어야 한다. 방송으로 떠도는 “사회적 압력”은 법체계상의 요구가 아니다. 판사, 입법자, 변호사와 같은 법적 행위자들에게 전달되는 경우에는 예외이다. 요구 몇 가지는 아주 비공적으로 진행(국회의원에게 보내는 서한, 도움을 요청하는 탄원)되지만, 다른 경우는 적절한 “법적인” 형식(인신 보호 영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Lawrence M. Friedman, 《THE LEGAL SYSTEM: A Social Science Perspective》, Russell Sage Foundation, 1975, New York, p. 223.)>

 

제2기 진실화해위워원회가 출범도 못하고 있다. 관련 법률인 개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은 공표 뒤 6개월의 경과규정이 지나 지난 12월 10일 발효되었다. 이런 경과규정을 둔 것은 기존 관청에 의무를 부여하는 한 것이 아니라 위원들을 구성해 위원회 설립 준비를 해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적어도 국회 선출 위원 8인이 늦어도 9월말까지는 선출이 완료시키고 인사검증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이 완료되어야 했다. 위원들은 12월 10일 위원회 출범 일까지 직제령 초안을 마련하고 사무처장과 조사관 등 직원들의 채용해야 했다. 이 기간 동안 국회는 상임위원 2인을 포함한 위원 8인의 선출을 완료시키지 못했다. 여당과 교섭단체인 야당의 각각 4인을 선출해야 했다. 그런데도 미루다가 지난 1월 8일 본회의에서 선출과정을 완료했다. 그런데 야당 교섭단체인 국민의힘의 추천해 선출된 위원 가운데 정경진 변호사가 과거 대학교수 시절 성폭력 문제로 징계처분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보도직후 국민의힘은 일부 언론을 통해서 대학교수 경력 자체를 제출하지 않아 검증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거나, 국회 본회의 선출 다음 날인 9일에 본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퇴했다고 알려 왔다고 역시 언론에게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식으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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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원들이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 기자회견에서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강창일 더민주 의원 홈페이지)

 

그런데 이 과정을 자세히 보면 몇 가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첫째 국민의힘은 어떤 인사를 어떻게 추천했는지 공식적인 발표를 한 적이 없다. 1월 8일 오후에 있을 국회 본회의가 있기 전에 한 언론이 단독 보도하면서 추천한 위원들이 명단이 돌았다. 즉 국민의힘은 적어도 위원 추천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본회의 선출 전에 공개적인 검증을 받을 기회를 스스로 차단한 것이다. 둘째 국회 본회의에서 인사와 관련된 선출안은 의원들의 무기명 투표로 처리한다. 그런데 이 선출과정에서 정 변호사를 위원으로 찬성한 여야 의원들은 물론이고 여야 원내대표, 국회 선출이라는 절차를 총괄한 국회의장도 선출 다음날 ‘사퇴’하는 사태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사과 한마디 없었다. 더욱이 정 변호사를 추천한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은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해명과 사과도 없었다. 국회 본회의의 선출 과정이 희화화되었다. 그렇지만 정치권 누구도 부꾸러운 줄 모른다. 셋째 국회 선출과 대통령 임명 사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퇴한다는 것이 추천한 정당인 국민의힘이 일부 언론에 알리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진경 변호사 스스로 해명과 사과 그리고 사퇴를 밝혀야 했다. 또 국회 선출 이후에 국민의힘의 정 변호사가 사퇴를 알려 왔다는 식의 공표가 과연 적정한 것인가? 진화위는 위원회 조직이다. 위원장을 포함한 9인의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는 위원회 조직이다. 위원회는 나머지 위원들이 임명된다고 하더라고 최초로 구성되어야 하는 법정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 이 점에 대해서 국회의장과 여야 사과해야 한다. 국회일정에 따르면 다음 본회의는 2월 26일에 있다. 빠르게 절차를 진행한다는 노력도 부재하다.

 

법의 수범자는 국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 사례를 보면 이 말은 정치적인 교섭단체 대표들이나 국회의장단들은 예외처럼 변질되었다. 정치는 국민을 상대로 하지 않고 언론을 향하고, 자기의 투표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상황을 우리는 정치특권에 의해서 민주주의와 국민의 주권이 제약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런 특권정치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가 준법하지 않고 함량 미달의 무능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가? 미국의 법사학자이자 법사학자인 로렌스 마이어 프리드만은 판사, 입법가, 변호사 등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은 ‘내적인’ 법문화가 있다고 했다. 정당화시키지 못하는 내적인 법문화가 바로 그들의 특권이 되는 것이다. 정당화는 국민의 주권과 동등하게 가려는 노력이다.

국회 선출의 위원들은 상대적으로 점차 증대하고 있다. 이것은 3권분립과 견제가 아니라, 의회가 행정부를 지배하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한국 정치는 정치의 부재로 인한 과잉사법화도 문제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내부적’으로 공고한 문화를 형성한 특수집단들의 법치주의 예외가 만성화되어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나도 궁금하다. 진화위는 탄생되었는가? 뇌사상태인가? 입법도 지연하더니 출범도 법정기간을 지키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후진 정치 아닌가?

“그날”은 학살과 인권유린이 자행된 과거 즉 역사적인 어느 시간대를 오늘의 시점에 개념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요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른바 민주시대를 말한다. 국가의 잘못된 행위로 중대한 인권유린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그날의 정치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이른바 과거사정리기본법이 다시 도입된 시점의 정치가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날과 요즘의 정치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정치는 외견상으로는 피해자를 위해서 ‘입법’을 심도 깊은 논의를 한다. 말은 피해당사자(를 위한)주의가 과거청산의 핵심이 되었다. 국가폭력을 동원해 인권유린했던 그날의 정치나 그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즘의 정치가 오히려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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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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