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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각과 몽둥이질

오길영( icomn@icomn.net) 2019.10.10 14:17

요즘은 필자도 나이를 먹어 가는지, 간혹 어릴 적 생각이 나곤 한다. 고등학교 등교시간, 하필 긴박하기 그지없던 그 시점이 가을볕 좋은 요즘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그 시절 어느 고등학교에서나 두어 명 있을 법한 ‘특수부대’ 출신의 선생님이 계셨다. 다소 거칠고 남성적인 표현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기도 했지만, 일단 화가 나시면 영화 ‘친구’에서처럼 금속줄 손목시계를 풀어놓고선 거침없는 폭력을 행사하시던 무서운 선생님. 오늘은 그 분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등교시간에 그 선생님은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들고 교문 앞에 서 계셨다. 네모난 카시오 전자시계가 정시에서 1초를 넘기는 순간부터 교문을 통과하는 학생들을 소위 ‘엎드려 뻗쳐’를 시켜놓고선, 뒤늦게 교문을 통과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스로의 운명을 쉽게 깨닫을 수 있게끔 하는 배려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더 이상 지각생이 늘지 않는다 싶으면, 드디어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타작’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매일 벌어지던 긴박한 아침풍경이란 참으로 구경할 만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전력질주를 해서 도착한 교실 안에선 미처 고르지 못한 거친 호흡과 함께 땀 냄새가 진동을 해야 했고, 그로부터 수 십분 이후에 다리를 절뚝이며 교실로 들어오던 지각생들은 실룩거리는 어깨를 쉬이 추스르지 못했다. 그러한 그들의 사정은 담임선생님은 물론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했으며, 교실 앞 작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던 아침 방송수업의 음향에 묻혀버리기가 일쑤였다. 좀처럼 지각을 하지 않던 필자는, 그 풀스윙을 딱 한 번 경험해본 기억이 있다. 아픔의 정도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 놀라웠던 것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그 선생님이 ‘타작’의 사유를 밝히셨는데 놀랍게도 전날 밤에 드셨던 ‘술이 덜 깨서’라는 것이었고, 홈런타자의 스윙마냥 전신의 회전력과 온 힘을 집중하여 무서운 속도로 풀스윙을 하시면서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함께 토해내셨다는 것이었다. 그 욕설이 담고 있는 취지는 대략, 지각을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이렇듯 아침부터 육체노동을 시키는 것이므로 개나 돼지보다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때리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굳이 왜 육체노동을 하셔서 아침부터 욕설이 동반되는 화까지 내셔야 했던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당시 그 선생님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난 지금에 와서야 필자는 그 속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술이 채 깨지도 않은 아침 일찍부터 출근을 해야 했다는 점이 못마땅했으리라. ‘위’에서 시킨 일에 저항하지 못했던 그분의 사정을, 결국 학생들의 허벅지살들이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즉 연일 계속된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단순히 그 선생님의 해장용 액션이 아니라 꿈쩍도 않던 ‘위’의 사람들을 향한 울부짖음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이제서야 헤아리게 되었다. 규율준수의 강제가 결국 모순으로 귀납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모순의 시정을 위해 누군가가 또 다른 모순으로 응해야만 했다는 사실, 나아가 그 폐해를 영문을 모르는 자들이 감당해야 했다는 점 등을 ‘지각과 몽둥이질’이라는 아픈 기억의 뒤안길에서 잠시 이야기하고 싶었다.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이러한 일들이 다시금 벌어진다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모습이란 그리 쉬이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핸드폰 화면에서 홈런타자의 풀스윙을 생생한 라이브로 즐기고 사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지각과 몽둥이질’이라는 모순이 동일한 구조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늦장리콜’과 그 처벌에 관하여 잠시 살피기로 하자. 결함이 있는 자동차는 대단히 위험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시정조치를 받아야 함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래서 우리 법은 리콜을 지연하면 강력한 처벌을 가한다.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리콜은 ‘자발적 리콜’과 ‘강제적 리콜’로 구분한다. 일단 결함이 발견되면 제조사가 이를 ‘지체 없이’ 공개하고 시정하는 의무(자동차관리법 제31조 제1항)를 부담하는데, 이를 자발적 리콜이라고 칭한다. 이는 사실 법률상 의무이기 때문에 ‘자발’이라는 의미와 정합성을 가지지 못하나, 행정청이 리콜의 실시를 강제하는 강제적 리콜(자동차관리법 제31조 제3항)에 대비해 보자면 상대적으로 자발적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따라서 국토교통부가 시정명령을 내리는 강제적 리콜에는 ‘늦장’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명령에 대한 불복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늦장리콜이라 함은 대체로 결함을 발견하고도 제작사 스스로가 ‘지체 없이’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는 ‘지각’의 경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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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발적 리콜을 취하지 않는 경우의 타작은 상당히 강력한 편이다. 매출액의 100분의 1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의 과징금이 부과(자동차관리법 제74조 제1항 제3호)되거나,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자동차관리법 제78조 제1호)에 처해진다. 자발적 리콜이 이 정도라면 강제적 리콜은 어떠할까? 자발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저렇듯 장기의 징역이 나올 정도인데, 심지어 행정청의 명령을 거역하고 버티는 경우라면 어쩌면 무기징역이라도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 법률은 강제적 리콜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아예 ‘모르쇠’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아침 방송수업이 끝나도록 당구장에 있다가 뒤늦게 담을 넘어 들어온 학생이 타작되지 않았던 것과 같다. 물론 그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야단이야 맞았던 것처럼, 이 경우도 제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수입 또는 판매의 중지(자동차관리법 제30조의3 제1항 제4호)를 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의 경제적 손실 측면만을 보자면 더 강력한 제재일지도 모를 일이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행정적 처분의 형태가 아닌가? 형사처벌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요즘의 자동차 시장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한 가지의 차종만을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회사는 없기 때문에 대체 차종을 생산 또는 수입해서 계속 영업을 하거나, 어딘가를 살짝 바꿔낸 유사한 차종을 새로은 차종으로 둔갑시켜 판매한다면 이러한 행정제재는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하다. 요컨대 지각보다 더한 경우에 몽둥이질이 없는 것은 분명한 모순이다.

 

이번에는 몽둥이질 자체를 한번 살펴보자. 알루미늄인지 쇠몽둥이인지 말이다. 우리 법은 “결함을 은폐ㆍ축소 또는 거짓으로 공개하거나 결함사실을 안 날부터 지체 없이 그 결함을 시정하지 아니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처벌의 내용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그런데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자발적 리콜의무란 결함사실에 대하여 지체가 없이 ‘공개’하고 ‘시정조치’를 하는 것인데, 지체 없이 공개하지 않은 경우는 처벌의 내용이 없다. 공개에 대해서는 지각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은폐ㆍ축소 또는 거짓’만을 처벌한다. 그렇다면 시정조치, 즉 수리행위 자체가 지체되면 어떻게 처벌하는가? 법문은 “결함사실을 안 날부터 지체 없이” 수리를 하지 않으면 처벌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결함의 존재를 인지하자마자 바로 시정조치를 시작하는 것은 최소한 자동차 부문에 있어서는 대체로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인을 파악해야 시정을 시작할 수 있는데, 수많은 부품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자동차의 특성상 원인파악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결함이 있는 것은 확인했으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하여, 지체 없는 원인파악을 강제하는 결과를 가져와 이미 논리적으로 무리이다. 수리나 교체 등 구체적인 시정행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는 통상 인력과 장비 및 부품 등이 소요되므로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데, 이를 결함사실을 인지한 날로부터 지체 없이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지각공개도 지각수리도 모두 처벌의 근거규정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가 형사처벌을 강행한다면 어찌되는가? 이는 실현이 불가능한 의무를 부과(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하거나 자의적인 판단(근거규정이 부존재함에도 무조건 지체되었다고 판단할 경우)에 의한 형사처벌을 하는 셈이라 위헌성의 문제로 직결될 소지가 있다. 결국 타작 행위자체가 ‘술이 덜 깬’ 상황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몽둥이질의 구조적인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자발적 리콜에만 강력한 처벌을 하고 그보다 더 심한 경우인 강제적 리콜의 경우에는 아무런 처벌이 없는 현재의 입법태도는, 결국 자동차의 결함시정을 자발적 리콜의 단계에서 해결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으로 다가오게 된다. 실제 리콜의 통계를 보아도 이러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에서 2017년까지 5년 동안, 국토교통부가 발동한 강제적 리콜은 4.3%에 불과하여 95%가 넘는 자발적 리콜에 비하자면 매우 미미하다. 또한 이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연간 ‘0’건의 시정명령을 기록하다가 2017년에 와서야 겨우 ‘6’건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어낸 상황이기도 하다. 이 정도의 현실이라면, 우리네 행정력은 미진의 수준을 넘어 거의 부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행정공백으로 인하여, 강제적 리콜의 역할을 자발적 리콜로 떠넘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의 리콜은 본래 정부의 행정행위로서 강제적 리콜이 본연의 모습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의 리콜의무가 자동차제작사의 의무보다 우선되어야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즉 자동차 리콜은 전형적인 행정행위이며 그 일차적 주체는 정부이지 자동차제작사가 아니라는 바탕위에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에 대한 오인은 결국 자발적 리콜을 강조하는 입법태도를 부추기고, 결국 지금과 같은 행정부작위의 상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행정은 이렇듯 공백인 것일까? 이는 국토교통부의 고백에서 알 수 있다. 지난 해, 국토교통부는 리콜관련 근거규정이 부족하고 조직과 예산이 부족하여 리콜절차의 진행에 현실적인 장애가 있음을 솔직히 털어놓은 바(국토교통부의 ‘국민안전과 소비자보호를 위한 자동차리콜 대응체계 혁신방안’, 4쪽) 있다. 즉 돈과 사람이 없어서 선택한 해결책이 결국, 몽둥이질인 셈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아무리 때려봐야 지각생은 줄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상황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었다. 술이 덜 깬 채로 출근하는 날이 잦아지셨고 욕설은 더욱 험해져 갔으며, 급기야 학교를 관둬 버리셨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순이 구조적일 경우에는 대체로 악순환이 반복되고 그 폐해가 가중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듯 어리석은 반복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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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영 :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부교수, 정보통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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