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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면……엄마가 되지 않고도 ‘무엇’이 되고 싶다

[서평]<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최지은 지음, 한겨레출판, 2020)

김경민( icomn@icomn.net) 2020.07.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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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2 때 가정(지금은 ‘기술가정’으로 통합된 과목)을 가르친 여교사는 툭하면 ‘너희들은 나중에 아이를 낳을 몸이야’라는 말로 훈시를 했다. 아이를 낳을 몸이니 속옷을 잘 갖춰 입어야 한다, 청결하고 깔끔해야 한다, 담배를 피우는 건 미친 짓이다, 언제나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뭐 그렇고 그런 내용. 스스로 가부장제의 첨병이 되어 자신보다 어린 여성들을 통제 관리하는 여성들이야 지금이나 그때나 흔해 빠졌지만 당시의 나는 그 말이 너무나도 듣기가 싫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여자가 고작 자궁 달린 기계라는 거야 뭐야’ 저항감이 들면서 나는 나중에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2

그때의 결심이 무색하게도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해에 황선미 작가가 우리 동네에 강연을 와서 간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타임에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했다. "글을 쓰실 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나요?"

보통은 이럴 때 '창작의 고통'으로 요약되는, 뭔가 형이상학적인 고민이 나올 거라 예상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아이들이 '엄마 밥 줘'라고 하는 거요."

사람들 사이에선 웃음이 터졌지만 난 웃지 못했다. 웃음은커녕 코끝이 매워지며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내 글은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무시무시한 걸작에 비하면 그저 그런 잡문에 불과하지만, 순간 그녀에게 강하게 감정이입이 되었기 때문이다.

 

 

#3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작은아이가 9개월이던 그 무렵, 이번엔 김영하 작가가 온다는 소식을 접했고, 남편과 스케줄을 겨우 조정해서 강연에 갔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타임에 한 중년 여성이 손을 들어 이런 질문을 했다. “작가님은 왜 자식을 낳지 않는 거예요?”

세상에나, 이토록 무례한 질문을 저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하는 걸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김영하 작가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가볍고 유쾌하게 대답하며 그 순간을 넘겼다. 그럼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고 이런 말을 했다. “자식을 낳게 되면 더 좋은 글이 써질 텐데요!”

베스트셀러 작가가 면전에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광경이 민망함을 넘어 황망하게 다가왔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김영하 작가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저런 종류의 질문에 깔린 힐난의 뉘앙스 강도가 몇 배는 더 세지 않았을까.

 

 

#4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최지은 지음, 한겨레출판, 2020)는 아이 없이 살기로 결심한 기혼 무자녀 여성 18명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 중인 작가는 자신과 같은 결심을 한 17명의 여성들을 만나 그녀들의 속내를 들으며 자신의 속내도 털어놓는다. 작가를 포함한 18명의 여성들은 직업도, 나이대도, 사는 지역도, 아이를 원하지 않는 이유도 모두 다르다. 오로지 ‘기혼 무자녀’라는 교집합만 있을 뿐이다.

“결혼이 출산과 동의어로 여겨지고, 아이가 없는 결혼 생활은 불완전한 것으로 인식되며,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이기적인 여자로 취급되는 한국 사회에서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고민을 했고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할까”(p.10)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흔히 기혼 여성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마치 자신에겐 이 질문을 할 권리가 당연히 있다는 듯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은 남편의 동의 여부일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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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못됐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한 남자는 ‘착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애도 안 낳아주는 여자랑 살아주는 남자는 참 관대하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하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는 말에 담긴 진실은, 남자들이 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갈망해서라기보다 자기 몸 하나 상하지 않고 자기 성까지 따르는 아이를 편하게 얻을 수 있으니 쉽게 아이를 바란다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있어야 가족이 완성되고 그런 가정이어야만 유지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부부가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행복하게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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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를 둘 낳았으니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아이들은 이 세상에 현존하는 피조물 중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다. 내 아이들이 없는 삶을 나는 이제 상상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내가 아이를 낳은 선택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은 선택이 당연한 것이 아니듯. 오로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한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칙만이 당연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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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여자들의 인생에도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면……엄마가 되지 않고도 무엇이 되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는 엄마가 되지 않아야만 될 수 있는 무엇도 있다. (p.217)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낳음으로써 인생에서 무엇을 잃게 되는지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려 하지 않는다. (중략) 이 문제의 공동 책임자여야 할 남성이 책임을 간과하거나 회피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여성의 인생 목표에 아이는 기본값이 아니다. 여성은 무엇이 되든 ‘무엇보다도 엄마’여야 완성되거나 더 가치가 높아지는 존재가 아니다. 부부 중 여자만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러니까 여자가 아이를 가져야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자들의 인생에야말로 훨씬 무거운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 말이다. (p.22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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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여성들을 연대와 자매애를 담아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녀들이 행복하기를,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를 바란다.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과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무례하게 대하지 않고 배척하지 않는 태도, 다수가 소수를 밀어내고 소외시키지 않는 분위기가 좋은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지금보다 좋은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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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을 공부하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지금은 교사를 그만두고 두 아이를 키우며 꾸준히 읽고 쓰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를 비롯해 네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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