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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상의 모든 개들에게 필요한 것

박정희( icomn@icomn.net) 2021.01.18 15:02

개인적으로 아파트 생활을 벗어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나와 같이 생활하는 동물가족 때문이었다. 아파트 1층에서 생활했지만 가끔 마주치는 주민들은 큰개(실은 중형견인 보더콜리)에 대해 불만과 경계의 눈빛과 말을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당이 있는 주택을 찾았고 그 결과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전주외곽의 오래된 집이였으나 내부도 나무와 꽃이 가득한 마당도 너무 좋아 아무 망설임 없이 이사했다.

 

우리 집은 언제나 많은 생명들로 북적인다. 그들 중 으뜸은 개들이다. 임보(임시보호)하는 개들이 늘 있기에 많을 땐 열 마리도 넘는다. 지난해 11월에도 급하게 필요한 어미견과 아직 눈도 못 뜬 강아지 7마리 도합 8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어미 견은 귀하디귀한 삽살개였으나 버림을 받고 길거리를 떠돌다가 김제보호소에 들어왔고 그곳에 오자마자 출산을 한 것이다. 보호소는 이들에게 너무 열약했고 동물보호 단체에서는 임보처를 찾고 있었다. 이들의 소식을 듣자마자 마당 한 켠에 이들의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방한 켄트를 사고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환경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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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온 강아지들은 수리(어미견 이름)의 지극정성으로 너무도 이쁘고 건강하게 자랐다. 문제는 추위가 오면서부터였다. 낮에는 상관없었지만 저녁 기온은 어미견과 강아지들에게 문제가 될수 있었기에 아직은 강아지들 때문에 나를 경계하는 녀석을 퇴근 후엔 현관에 옮겨 놓고 히터를 켜주었다. 출근하기 전 다시 마당에 옮겨놓고 퇴근하면 현관에 옮겨 놓기를 반복하는 것은 매번 힘들고 어려웠으나 하루 이틀 지나자 수리는 무엇을 위해 내가 그러는지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동에 협조적이었다. 수리도 추운 곳보다 따뜻한 곳에서 편히 자는 것이 새끼들에게 나은 것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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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강아지들은 낮 동안은 마당에서 지내다가 내가 퇴근하면 모두 집 안으로 들어오는 생활을 한다. 잠은 각자의 위치가 있다. 10살이 넘은 노견들이거나 장애가 있는 녀석들인지라 잠자리는 최대한 편안한 곳을 선택하게 해준다. 녀석들은 성격대로 선택한다. 나의 옆자리를 선택하는 녀석도 있고, 소파를 선택하는 녀석들도 있고, 준비한 자신의 침대를 선택하는 녀석도 있다. 말로 대화는 할 수 없지만 녀석들은 매우 편안해 한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편안하게 집안으로 들어오는 우리 집 개들을 관찰하던 수리는 어느 날 자신도 들어가질 원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조심스레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왔다. 수리의 아이들은 2개월이지나 어미젖을 떼자 올 1월이 되기 전에 모두 입양을 갔다. 아이들이 모두 입양을 간 날 수리는 내게 좀 더 가까이 왔다. 거실 입구 쪽에서 잔뜩 웅크리고 자던 수리는 그 날 저녁에는 내 침실 입구까지 다가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수리는 무서운 경험이 많았는지 내가 쓰다듬으려 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았다. 그런 그녀의 몸짓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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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며, 너는 그 자체로 너무도 사랑스런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알려주는 방법은 간단하다.

존중과 침착한 마음으로 대하고 규칙적인 식사를 준비해주고 실수에 관대하며(소리와 야단치는 것은 효과가 전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잠자리와 쉴 공간을 마련해주면 된다. 이뿐이면 된다. 어렵지도 특별한 기술이나 물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제 저녁 수리는 내 침대위로 올라와 잠을 잤다. 아침에는 강아지처럼 뛰면서 나에게 쓰다듬어달라고 조른다. 내 손길에 깜짝깜짝 놀라던 수리가 더 이상 아니다. 부르면 긴 다리로 날아온다. 내가 알려주고자 한 ‘수리는 사랑스런 존재’라는 것을 그녀는 받아드렸다. 그녀는 입양이 결정되었고, 며칠 후면 내 곁을 떠나 그녀와 평생을 같이할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운 그녀는 이제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개들에게는 그들을 존중하며 모든 순간을 함께할 가족이 필요하다.

 

2021년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19로 힘들고 기후위기로 인한 추위는 예전과는 다르다. 아무리 모든 것이 나빠지더라도 인간인 우리는 공존하는 생명에 대한 것만은 좋은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같이 사는 동물들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성숙하며 진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들에게도 좋은 먹거리와 따뜻하고 안락한 잠자리가 삶의 기본이라는 것을 더 이상 모른체하지 말자. 그들도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명심하며 올 한해를 시작하기를 동물권활동가로서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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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완산여고 교장

동물권활동가

강아지 7, 고양이 8, 딸1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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