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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교조는 학교 현장의 민주주의를 위한 마지막 보루입니다"

법외노조 취소 소송 재판을 앞두고 보내는 탄원서

송호영(전교조 전북지부 참교육실장)( jbchamsori@gmail.com) 2015.10.02 18:02

오는 10월 5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장관을 상대로 법외노조통보처분 취소소송 항소심 3차 변론기일이 열린다. 재판을 앞두고 전교조 전북지부 송호영 참교육실장이 재판장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보냈다. 참소리는 이 탄원서를 입수하여 독자들과 나누고자 전문을 올린다.


집 앞에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추석날 친구 만나고 돌아오는 저녁, 학교 앞에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 나온 아이들로 가득했습니다. 떡볶이집 앞에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생기에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한편으로는 명절에도 학교에 나와서 공부해야만 하는 저들이 애처롭고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하고픈 것도 많고 친구들과 놀고 싶기도 할 텐데 모든 것을 참아내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입시 준비로 보내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청소년기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한국의 청소년 자살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행복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런 학교를 행복한 공간으로, 참된 교육의 현장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거쳐가는 학교를 한 평생 삶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무려 50년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는 이들. 그래서 학교와 교육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들. 바로 교사입니다. 그리고 전교조는 그런 교사들이 보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를 가르치고자 만든 교사들의 노동조합입니다.


저는 전북 지역의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여기는 김승환 교육감이 수장으로 있는 지역이지요.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 생각해보면 타 지역에 비해 학교 운영에 있어서 여성, 약자, 소수자,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습니다. 학교 내에 교사, 행정직, 조리종사원, 비정규직, 교무실무사 등의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파트너로 인정하고 각종 교육 사안에 있어서 협의합니다.


노사가 함께 협력하여 지역농산물을 활용한 친환경 무상급식, 혁신학교 운동을 통한 농어촌 소규모 학교 살리기, 투명한 예산 및 승진 시스템 구축, 민주적인 학교운영 등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대학 입시로 인해 고등학교 부분은 지지부진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변화가 느껴집니다. 전교조는 그런 학교의 변화에 늘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좀 생겼습니다. 학교 현장의 변화에 함께한 전교조를 정부가 법외노조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는 혁신학교라서 항상 아이들과 교사들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해서 운동회, 소풍 등을 결정했지요. 보통의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독단적으로 나가려고 하면 전교조 분회장 선생님께서 교사 대표로 의견을 전해서 조율을 합니다. 학교 현장의 민주주의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법외노조가 되면 변화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서 학교관리자들은 전교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그동안 힘들게 만들어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소풍 장소도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사람이 정해버릴 것이고, 입시를 강조하며 시험을 강화하는 학교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벌써부터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이런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수업이 활동과 체험보다는 문제풀이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노동조합이 왜 필요하지 깨닫는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정부는 초등교과서에 한자를 넣고 역사교과서는 국정화하는 등 아이들, 교사, 학부모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그나마 교사노조가 있어서 학교 현장에서 불합리한 일들을 막아왔는데, 전교조마저 없어지면 학교와 교육이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 열심히 가르치는 전교조 선생님들 보면서 힘을 보태야겠다는 마음에 가입은 했지만 전 사실 정부의 교육 정책이나 연금 등 이런 것들이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교장 선생님께 굽신거리며 아이들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던 초임 시절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고자 몇 명 있다고 교사 노동조합을 없애는 것은 좀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듯이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교사노조가 이런저런 문제점 얘기하면서 뭐라고 하니까 싫은 것이겠지요. 부디 재판장님께서 교육을 생각하시면서 판단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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