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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나도 모를 때가 가장 무서운 법입니다

한성주( icomn@icomn.net) 2020.03.14 10:07

한의대생시절 ‘예방의학’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콜레라 예방법을 알아낸 존 스노우라는 의사의 이야기였습니다.

 

콜레라가 주기적으로 창궐하던 19세기 영국에서는 세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에 모두들 전염병이란 것이 나쁜 공기에 의해서 전염된다고 믿었습니다. 환자와 접촉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전염되고, 벌레나 짐승에게 물린 적이 없어도 감염되는 상황에서 당시 과학은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나 마취과 의사였던 존 스노우 (John Snow)는 무슨 이유에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당시 콜레라가 발병했던 런던 소호 지역의 지도상에 그때까지 확인된 콜레라 감염자들의 주소를 꼼꼼히 표시하는 작업을 했고, 발병자들의 분포가 특정 펌프에 연결된 수도관의 배치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름 빅 데이터의 현명한 해석이라고 할까요. 심지어 이 수도관 배치에 어긋나는 환자를 추적 조사하여 같은 수도관의 물을 퍼다 마셨다는 것을 확인했고, 반대로 같은 펌프 영역인데도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은 공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지하수 펌프를 사용하거나 맥주를 물대신 마셨다는 것까지 밝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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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존 스노우가 지도상에 표시한 콜레라 환자)

수인성 감염(水因性感染 : 주로 오염된 물로 인해 전염되는 질병) 의 대표적 질병인 콜레라의 당시 감염경로는 이러했습니다. 최초 발병자의 집 정화조와 가까웠던 펌프 시설이 노화되어 콜레라균을 담은 오물이 흘러들어갔고, 이것이 상수도관을 통해 런던 시내 곳곳으로 콜레라균을 퍼 날랐던 것입니다. 결국 존 스노우의 발견으로 오염된 수도가 감염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는 그의 권고에 따라 해당 펌프의 손잡이를 뽑아버리고 대대적인 수도 교체 공사로 콜레라의 창궐을 억제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구 방법이지만, 당시에 그 과정이 쉬웠을 리는 없습니다. 과학이 종교에 지배받던 시대에 세균이란 것 자체를 보지 못했으니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동시대 전문가들은 저마다 나름의 논리로 존 스노우의 이론을 부정하고 나서는 바람에 애도 많이 먹었겠지요. 그나마 존 스노우는 빅토리아 여왕의 출산을 보조한 적도 있을 정도로 신망을 얻는 의사였기에 가능했던 면이 있는데, 그보다 앞서 의사의 손을 통해 산욕열이 감염된다며 의사가 손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오스트리아의 산과 의사 이그나츠 저멜바이스(Ignaz Semmelweis,의사의 손에 의해 환자에게 병균이 옮는다는 주장을 해서 동료의사들에게 모진 따돌림을 당했다고 합니다. 물론 손을 소독하지 않는 의사에게 대놓고 살인마라고 비난을 한다든가 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 공격적이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는 빈 의과대학의 보수적인 의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해고되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낸 존 스노우는 비록 콜레라 감염자를 치료한 것도 아니고 콜레라의 원인균을 밝혀내지도 못했지만 지금까지 역학의 선구자로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런던의 소호 지역엔 그를 기념하는 의미의 '존 스노우 펍' 이라는 술집이 있고, 그 앞에는 문제의 펌프가 지금도 손잡이가 뽑힌 채로 서있다고 합니다. (실제 그 펌프는 아니고 그로 인해 살아난 생명을 기념하는 의미의 조형물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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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John Snow Pub 과 손잡이 없는 펌프 (Matt Brown, 2018))

모든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을 동반한 두려움에서 시작합니다. 어디서 발생했는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병의 진행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하나도 모를 때가 가장 무서운 법입니다. 한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천연두라는 질환은 그 두려움으로 인해 병 이름을 차마 부르지도 못하고 극존칭을 붙여 마마 혹은 큰 손님이라고까지 부르며, 심지어 마을에서는 역신(疫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낼 정도였으나 1998년 WHO에서 완전 박멸되었음을 선포한 이후로는 예방접종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잊혀진 병이 되어 버렸습니다. 현대과학으로 바이러스의 생김새까지 그려내는 지금도 새로운 전염병이 나오면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 받는 벌’이라는 허망한 종교지도자들이 있을 정도니 과거엔 오죽했을까요.

 

2020년에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COVID-19 역시 우리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형태의 바이러스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공포는 곧 분노를 낳기도 하기에 더 힘든 시절을 겪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존 스노우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전 세계에 있고, 우리들 또한 다중 접촉을 줄이고 손을 열심히 씻으면서 철저한 위생관리에 매진하고 있는 만큼 지금의 공포도 곧 잊혀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어떻게 싸웠는지 기분 좋은 허풍을 치겠지요. 그러나 그날이 오더라도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다 돌아가신 사망자분들을 잊지 않고, 또한 온갖 가짜뉴스와 억측과 정치공세에 시달려가며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모든 보건의료인들의 노고는 잊지 말기로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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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 한의사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IBM Korea 에 잠시 근무를 했다가 세명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성주한의원(경기도 성남시 판교지역) 원장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센인들을 위한 회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고, CBS 팟캐스트 '스타까토' 에서 정치시사관련 인터넷방송을 한 적이 있으며 국방FM '너를 사랑하기에 전유나입니다' 에서 수요일 고정 코너로 '한성주의 세상풍경' 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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