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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당신의 꿈을 물어봅니다

김수연( icomn@icomn.net) 2020.06.07 19:35

예전에 사람을 만나 좀 친해지면 질문을 불쑥 하곤 했다. “당신의 꿈은 뭔가요?”라고. 그러면 대체로 “뭘 그런 걸 다 물어봐?” 하며 피하거나 면박 주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든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바로 튀어나오든 질문한 사람들 모두에게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원초적이고 솔직한 대답부터 “음... 나는 몇 년 안에 강원도 한적한 곳에 집을 지어서 텃밭에 고추랑 토마토랑 이것저것 심어 사람들 초대하며 살고 싶어.”라는 아주 구체적인 계획까지.

 

한참 눈을 반짝이며 꿈을 털어놓은 상대방은 반대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럼 당신의 꿈은 뭔가요?”라고. 그러면 나는 바로 “일흔 살, 여든 살 즈음에 대하소설을 쓰고 싶어요. 나와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 세대의 이야기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책을 안 읽잖아요. 과연 책이 팔릴까 고민은 되지만 누가 읽든 안 읽든 쓰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책 시장이 어렵다는 걸 다들 아는지라 그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다들 “멋지다!”라고 응원해준다. 꿈을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결국 내 꿈을 응원받는 상황이 되는 게 재미있어서 한 마디 더 덧붙인다. “꿈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누군가의 꿈을 이뤄주는 데 제가 도움이 되는 거예요.”

 

먹고사니즘은 꿈이 안되는 걸까?

 

누군가의 꿈을 물어보고 다녔지만 지금은 매달 돌아오는 먹고사니즘으로 말문을 닫았다. 굳이 누군가의 꿈을 애써 물어보지 않는다. 염세주의자까지 된 건 아니지만 냉소적으로 변한 건 맞다. “각자의 꿈,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거지.”, “내가 당신 꿈 알아서 뭐에 쓰게?”라며 내 앞날, 내 것을 생각하기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발을 동동거린다. 당장의 일만 잘하고 해결하기에도 바쁜데 몇 년 후의 모습을 지금부터 준비한다는 게 여유 있는 자들의 자랑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달을 버티고, 두 달을 버티고, 반년을 버티고 올해도 무사히 넘어갔음을 위안하기 바쁜데 꿈이라니, 목표라니 사치처럼 느껴졌다. 눈이 삐딱해지고 귀가 삐딱해지고 입도 삐딱해진 것이다. 그 삐딱함이 치열함이라고 우겼다. 한 달의 먹고사니즘도 위대한 것 아니냐며 꿈을 소홀히 했다.

 

꿈의 불씨는 재낀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요즘 내 꿈이 뭐였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꿈은 뭔가요?”라고 질문한다면 여전히 대하소설 쓰고 누군가의 꿈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일일 거라고 조용히 대답할 것이다. 시간이 지났고 나를 둘러싼 상황이 변했고 코로나로 세상이 변했어도 내 꿈은 그때 그 모습이다. 달라진 게 하나 없었다. 덮어놓은 꿈의 불씨는 그대로였다. 다만 누군가의 꿈을 질문하는 것은 당분간 조심스럽다. 내가 좀 더 성장하고 여유로워질 때 그때 제대로 도와주고 함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다. 삶의 우선순위가 남에게서 나에게로 넘어오는 시점에 서게 된 것이다. 중년이 되어 그렇고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그랬을 테다. 나쁘지 않은 변화라고 본다.

 

소중한 대답을 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강의를 시작했다. 마스크 쓰고 띄엄띄엄 대각선으로 칸막이 좌석에 앉은 수강생에게 질문한다. “어떤 글을 쓰려고 여기 오셨나요?”라고. 그러면 모두가 쓰고 싶은 글을 조근조근 이야기해주신다. 제각각의 개성만큼 다양한 목표를 이야기해주는 수강생의 대답을 들으면 어떻게든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가 보석 같고 소중한 꿈 같다. 결국 꿈이든 글쓰기든 누군가의 대답에 고민에 빠지는 나는 오지랖 성격이다. 그러면서 냉소적인 척, 못 들은 척, 쿨한 척 한다. 조만간 또 누군가를 붙잡고 질문을 할 시간이 임박했다. “당신의 꿈은 뭔가요? 나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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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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