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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학의 아름다움

한성주( icomn@icomn.net) 2020.11.21 20:29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1997) 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엘리가 외계인의 신호를 수신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과연 외계 생명체가 보낸 신호인지, 아니면 우연히 생겨난 외계 공간에서의 기계적 소음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 신호를 분석하는데 놀랍게도 2, 3, 5, 7, 11, 13, 17, 19... 바로 ‘소수’의 수열이었습니다. 소수는 1과 그 자신으로만 나누어 떨어지는 수로서, 이 수의 나열은 자연적으로 우연히 일어날 리 없는, 논리적으로만 존재하는 수열입니다. 그러니 이 수열을 보낸 주체는 지능을 가진 존재일 것이라고 판단을 하고 지구인들은 26광년이 떨어진 이 전파의 발사처를 향해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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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택트’ (1997)>

 

2016년에 개봉한 드니 발뵈브 감독의 ‘Arrival’ 이란 영화는 원래 테드 창의 SF 소설 ‘The story of your life’를 영화화 한 것인데, 이 영화 역시 지구에 온 외계인과 소통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한국에서만 원제와 달리 ‘컨택트’ 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습니다. 분명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 수학 공부를 하다 힘들면 “이걸 내가 나중에 언제 써먹겠느냐” 며 한탄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실생활에 도움도 안 될 것들을 대학에 가기 위해 억지로 배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정규 교과 과정이 달가울 리 없었습니다. 더구나 문과 학생에게 복잡한 함수나 미적분 같은 과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머리에서 싹 지워질 것이 뻔해 보이니 수학에서 보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 교육과정을 다시 공부해 보니 그 정규 과정의 수업내용이 너무나 소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학이란 단순히 계산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콘택트’ 라는 영화를 통해 수학이 외계 생명체와의 소통의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된 저는 뒤늦게 수학의 매력에 매료되었습니다.

 

1과 1을 더하면 2가 된다는 것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고, 언어와 문화 심지어 인종을 넘어 어떤 생명체에게나 공통으로 통하는 논리가 되는데, 이 절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종교가 아닌 수학에서 ‘절대 진리’를 발견하고 감동을 하게 된 데는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것도 정답이 없는 사회에서 잠시 수학책을 들여다보면 그 명확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정답’ 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해도 눈물 나게 감동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단원은 바로 미분이었습니다. 잊어버리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미분은 함수의 변화율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어떤 함수로 나타날 수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현재의 위치가 아주 높은 위치에 있더라도 변화율이 마이너스라면 현재 내리막길에 있다는 뜻이므로 나도 언젠가는 낮아질 것이고, 현재의 위치가 아주 낮은 곳에 있더라도 변화율이 양(+) 이라면 언젠가는 위로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죠.

 

고달픈 일상에 힘들어 하던 어느 날 미분을 공부하면서, 내가 비록 지금은 이렇게 힘들게 살지만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건 현재의 변화율을 양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내 삶은 점점 나아질 것이고, 행여 그 변화율마저 음이라고 할지라도 그 변화율의 변화율(수학에서는 이계도함수라고 부릅니다) 이 양이라면 현재 내리막인 그 변화율이 곧 양이 되어 언젠가는 다시 내 삶을 끌어 올릴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수는 미분하면 사라집니다. 변화 없이 매일 제자리에 있는 삶은 미분을 해버리면 사실은 아예 사라져 버리는 죽은 삶이라고 비약해볼 수 있을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힘든 날, 오늘을 미분해보세요. 그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한 번 더 미분하는 겁니다. 그렇게 인생 역전을 만들기 위한 터닝 포인트를 우리는 ‘변곡점’ 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교육 얘기로 돌아가자면, 수학은 단순히 사칙연산으로 계산을 하는 산수와 달리 이렇게 우리의 사고방식을 논리적으로 만들어주는 교육입니다. 미지수가 있을 때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식을 만들어서 답을 구해내는 논리. 함수와 그래프를 통해 규칙을 찾아내고 예측과 검정을 가능하게 하는 논리. 이러한 논리는 수학 문제를 풀 때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활용되는 것입니다. 이 논리 공부가 부족하면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기 때문에, 수학 공부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못 믿겠으면, 쉬운 것부터 수학문제를 풀어보세요. 시험 점수의 부담감만 버리고 공부한다면 수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금방 느끼시게 될 겁니다.

 

그 아름다운 수학을, 쓸 데 없다고 폄하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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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 한의사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IBM Korea 에 잠시 근무를 했다가 세명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성주한의원(경기도 성남시 판교지역) 원장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센인들을 위한 회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고, CBS 팟캐스트 '스타까토' 에서 정치시사관련 인터넷방송을 한 적이 있으며 국방FM '너를 사랑하기에 전유나입니다' 에서 수요일 고정 코너로 '한성주의 세상풍경' 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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