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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피폭자 6천명 치료한 노의사 "안전한 곳은 없다"

[서평] 히다 슌타로의 <생명을 살리는 반핵>

정은균(오마이뉴스 시민기자)( jbchamsori@gmail.com) 2015.07.3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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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이 후원하고 민간단체 후쿠칸네트가 추진하는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청소년 문화교류' 사업의 일환에 따라 국내 학생 150여 명이 일본 후쿠시마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 지난 29일 출국했다고 한다. 참가 학생이 110명으로 가장 많은 전북교육청이 참가 경위 파악과 학생 안전 조치를 위해 새벽까지 분주했던 모양이다. 정의당과 녹색당,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성명을 내어 정부 당국과 일본 외무성을 비판했다.

후쿠시마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난 지역이다. 방사선 오염으로 인한 피폭 문제 등 핵발전소 폭발 사고의 여파가 아직 심각하다.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는 2013년에 펴낸 <한국 탈핵>에서 미국 국립과학원회보를 인용해 후쿠시마로부터 반경 350km까지 고농도로 방사능에 오염되었으며, 이는 일본 국토의 70%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전북도당은 29일자 논평에서 "후쿠시마 지역은 18세 이하 청소년 갑상샘암 발병률이 통상적인 발병률에 대비 100배 이상 높은 지역이다"라고 밝혔다. 방사선 피폭은 나이가 어릴수록,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쉽게 이루어진다. 4년 전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또 다른 '현재진형형' 사고가 있다. 70년 전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도심 상공에 미군 폭격기 1대가 날아와 '꼬마(Little Boy)'라는 이름의 폭탄 하나를 떨어뜨렸다. 우라늄 700g이 들어간, 인류 최초의 핵폭탄 3발 중 하나였다.

히로시마에 있던 7만6000여 채 건물 중 7만 채가 폭탄 한 발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7만 명의 즉사자, 10만 명이 넘는 부상자, 수많은 방사선 피폭자가 발생했다. 당시 히로시마 육군병원 의사로, 이 책 <생명을 살리는 반핵>을 쓴 히다 슌타로(1917~현재)도 그중 하나였다.

핵발전소 '안전 신화' 날카롭게 비판한 책

저자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매우 급한 상황 속에서 6000명 이상의 피폭자들을 꾸준히 치료했다. 만성 방사능증('부라부라병'으로 불리는 무기력증), 만발성장애(백혈병, 암, 간장장애 등) 등 핵폭탄 피해자들의 고통을 일본 전역과 세계에 알렸다.

저자는 지금 100살이 가까워져 오는 나이에도 전국 강연을 다니며 반핵무기, 반핵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일본 정부가 핵 중심 정책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권과 생명을 필생의 화두로 안은 채 반핵 운동의 선봉에 선 노의사의 인생 역정을 기술한 것이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저자가 살아온 삶의 이력을 따라 짜여 있다. 핵폭탄 투하 직후부터 '백지 상태'에서 원폭증을 치료하고, 증세의 원인을 규명해 이를 바깥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등이 차례대로 펼쳐진다. 자연스러운 구술체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현장감을 더한다. 핵폭탄 투하 직후의 처참한 상황을 묘사하는 대목은 핵의 두려운 위력을 생생히 느끼게 해준다.

몸이 흔들리면서 나를 향해 조금씩 걸어왔지만, 전체가 새카맣게 변해버린 맨몸상태였습니다. 맨몸의 가슴에서 허리까지 무수한 누더기 조각이 너덜거리고, 가슴 앞에 막대기 같은 것이 돌출되어 있고, 양손 끝에서는 검은 액체가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머리가 커져 있고, 팽창되어 있는 양 눈, 코가 없이 얼굴의 반 정도까지 부어오른 위아래 입술, 홀랑 타버린 머리에는 한 올의 머리카락도 없었습니다. 저는 숨을 멈추고 뒤로 주춤거렸습니다. 누더기 조각으로 보였던 것은 사람의 생가죽, 떨어지는 검은 물방울은 사람의 피였습니다. (본문 59~60쪽 중에서)

저자는 핵무기에 얽힌 '추악한' 비밀을 책 곳곳에서 들려주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플루토늄을 죄인이나 회복의 전망이 없는 입원환자에게 정맥주사를 해 방사선 내부피폭의 영향을 연구했다. 전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와 관련된 의학 문제가 전혀 없다는 보고서도 냈다.

핵발전소의 '안전 신화'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일반적으로 핵반응로(원자로)는 두께 15~20cm가 넘는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사시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핵반응에서 나오는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든 뒤 그것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 구조의 특성상 핵발전소 내 모든 구조물은 관으로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독립된 하나의 건물이 단독으로 서 있고 원자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곳을 중심으로 전부 관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관 안으로 무엇이 흐르고 있느냐, 굉장히 뜨거운 물과 그 속에서 지금 막 발생한 용해된 방사성 물질이 흐르고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고 있는 관은 3개월, 6개월 가동하면 관 속 열과 방사선으로 인해 부식되고 틈이 생기게 돼 이때부터 방사선이 스며 나옵니다. 이는 막을 수 없습니다. 완전하게 막으려면 … (관의) 바깥쪽만은 아주 두껍게 해버리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설비투자를 한다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수력전기나 화력전기보다 비싸진다면 판매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아주 빠듯한 비용으로 감내해야 합니다. 이런 비용한계로 인한 유출을 세계 각국에서 논의를 해 '안전허용량'이라는 명분하에 국제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본문 168~169쪽 중에서)

핵발전 '안전'의 의미? '생명'이 아닌 '경영'

이 책에 따르면 안전허용량은 1972년 BEIR(미국 국립 아카데미 국립자문위원회)가 작성한 방사선 안전기준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3년마다 미국이 결정하고, 그 결과를 전 세계 원자로가 따라간다고 한다.

저자는 최초에 비교적 양심적 기준이었을지 모르는 안전기준이 전력회사의 압력으로 대폭 완화되었다고 비판한다. 전력회사가 핵발전에 드는 비용을 줄여 이익을 내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안전'의 의미다.

미국에서 기준을 공표할 때 '안전은 무엇을 위한 안전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유감입니다만, 사람의 생명은 아닙니다'라면서 '그것은 경영의 관점에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최저한의 경영안전입니다'라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안전허용량'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생명의 안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문제없다',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실은 계속해서 일본의 원전에서 방사선은 새고 있었습니다. 일본 전 지역 어느 곳에 가더라도 방사선 누출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이 점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각 지방의 사람들 모두 방사선에 노출되어왔던 것입니다. (본문 179쪽 중에서)

일본 핵발전소 노동자들은 적산선량계(필름배지)를 부착한 채 일을 한다고 한다. 일정 정도의 적산선량을 넘으면 인체가 한계에 달해 폐암 등에 걸릴 수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 예방의학 교과서에는 암과 유전병이 피폭량과 정비례한다고 서술되어 있다고 한다. 피폭량 0 이후부터 곧장 유병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핵물질은 아직 인간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핵 반응로에서 밤낮없이 4년간 물을 끓인 뒤 10년 동안 찬물에 식혀져 방사선이 없어질 때까지 최고 10만 년~100만 년간 깊은 지하동굴에서 보관되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폐기장(고준핵위폐기장)은 아직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노구의 저자가 핵물질은 깊은 땅속에 있어야 한다면서 반핵, 탈핵의 선봉에 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문화교류'의 이름 아래 피폭에 취약한 어린 청소년들을 방사선 오염 위험 지역에 보낸 한국 어른들이 이 책을 두루 보았으면 좋겠다.

<생명을 살리는 반핵>(히다 슌타로·오쿠보 겐이치 지음, 박찬호 옮김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 2015.7.1. / 215쪽 / 12000원)


<편집자 주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지난 30일 게재됐습니다. 정은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동의 아래 참소리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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