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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의 수업을 준비하며

김정환( icomn@icomn.net) 2019.07.30 16:40

1. 참소리 칼럼 세 번째 글이다. 직업이 변호사이다 보니 뭔가 재판과 법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을 고민했다. 교육 현장을 망치는 학교폭력예방법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생각도 했고 위자료의 의미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도 했다. 국가를 대리하는 입장과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입장에 섰을 때 나 스스로 가지게 되는 미묘한 사고방식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 했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사안을 이야기 하면 당사자가 특정되는 문제가 생기더라. 물론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해당 사건이 누구의 사건인지 알 수 없고 관심도 없겠지만, 단 한사람 나의 의뢰인은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당연히 알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사전에 허락을 받거나 또는 아예 소설처럼 각색을 해야 할 것이다. 허락과 각색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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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에게는 하나의 직업이 더 있다. ‘강사’이다. ‘교수’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강사로 나를 규정짓는 것이 마음 편하다. 변호사가 되기 전 시간강사를 오래 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시간강사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강의는 보람된 일이다. 내가 지혜를 가지지 못했기에 지혜를 전달할 수도 없지만 본디 강의는 지혜의 전달이 아닌 지식의 전달이 목적인 행위라서 마음이 편하다. 인연이 닿은 제자들에게 내가 먼저 공부한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는 시간이 소중하다. 내가 영민하지 못하여 이해에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이 많았기에 왜 이해에 어려움을 겪었는지 이야기 해주면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보람 있다. 가끔은 ‘재미있는 과목’을 맡을 수 있는 공부를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다. 과목 이름만 보더라도 이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은 행복하겠다며 질투가 느껴지는 과목이 많다. 나는 법학 중에서도 국가와 관련한 내용을 전공하였기에 ‘헌법, 행정법’ 이런 과목을 주로 강의한다. 과목 이름만 들어도 수강생들의 졸음이 느껴진다.

 

3. 경험의 한계는 인식의 한계. 나는 내가 들었던 많은 수업을 떠올리며 그 중 좋았던 시간을 생각하며 수업준비를 한다. 내 강의를 조금이나마 좋은 시간이라고 느낀 제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선생님들 덕분이다. 강의와 관련하여서 특히 고마운 조언 하나가 늘 내 마음에 남아있다. 내가 박사과정 시절 내 인생 첫 대학 강의를 나갈 때의 일이다. 지도교수님께서 대학 강단에 서게 되는 제자가 대견하면서도 조금은 불안하셨는지 식사 하자고 부르시고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정환아. 앞으로 만나는 제자들에게 감사한 마음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선생과 제자 사이는 선생이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선생도 제자를 선택할 수는 없다. 제자가 선생을 선택해 주는거야. 나를 선택하고 내 이야기를 듣겠다고 온 제자에게 늘 최선을 다해라... 나도 너희 제자들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4. 다가오는 2학기에도 강의를 한다. 지난 학기 두 곳의 학부 강의를 하였지만 빡빡한 재판과 수업 일정이 부담되어 A대학에서 기존에 하던 강의는 고사할 수 밖에 없어 아쉽고 죄송했다. 다음 학기는 B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법 과목을 가르친다. 마침 B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에서 나의 수업에 대하여 질의서를 보냈다. 수업계획서 이외에도 이렇게 과목 담당 교수들에게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학생들 수강신청 안내에 활용한다고 한다. 수업계획서는 아무래도 그 과목의 특성만을 이야기하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업에 임하는 교수의 마음을 조금 더 알고 싶어 이런 설문을 시도하는 듯하다. 나도 이런 설문지에 답변을 해본 것은 처음이다. 답변을 쓰면서 수업과 공부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나의 세 번째 칼럼은 그 설문지에 대한 답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대학의 수업을 준비하는 나의 마음이고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5. <본 설문은 교수님들로부터 강의 전반에 대한 소개를 받아 정리하고 SNS 상으로 배포하여 학부 강의에 대한 학우들의 이해를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회 사업입니다.>

 

Q.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이 수업의 매력을 간략하게 표현해주신다면 무엇일까요?

 

A. 다른 정외과 수업에 비하면 매력이 없습니다. 법학은 아무래도 사고의 확장보다는 규범학의 특성상 정해진 법적 사고 능력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좀 딱딱하지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다른 정외과 전공 수업보다는 매력이 떨어지지요. 다만 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분야이기도 해서 이 수업을 통해 법과 조금 친해져두면 나중에 법을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자신의 분야에 관련된 법을 접할 때 조금은 덜 두려워할 수 있는 정도의 장점은 있겠어요.

 

Q. 이 수업의 권장 수강 대상은 어떤 학생들인가요?

 

A. 금요일 늦은 오후에 수업을 듣는 것이 괴롭지 않을 사람이 좋겠습니다. 심지어 금요일 저녁에 보강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Q. 출석, 발표, 보고서, 시험 등의 여러 평가 요소 중 교수님께서 가장 중시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나아가, 이 수업을 잘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여러분이 보내는 시간 속에 수업보다 더 중요한 일들도 있습니다. 그럼 어떤 날은 수업을 빠지고 그 일을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전출을 우대하지는 않습니다. 두 번 정도 빠지는 것은 감점하지 않아요. 다만 저는 제 강의시간에 다른 일을 기회비용으로 두고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좋은 지식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사명이자 의무지요. 그리고 제 수업을 듣고 또 그 수업을 통해 생각해 본 내용들이 보람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시험을 통해 수업을 잘 듣고 잘 생각해 보았는지를 묻게 됩니다. 성적을 줘야한다는 것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닙니다만 한 학기의 성실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볼 수밖에 없고 시험은 중요하지요.

발표도 시키고 싶습니다. 다만 많은 학생이 듣는 수업이고 그들에게 발표를 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문제가 있어요. 저도 15명과 헌법 수업하라고 하면 한 명씩 각자 다른 헌재 판례를 나누어 주고 그 판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더 재미있고 내용 풍부한 수업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럴 수 없고 아무래도 법 과목은 설명으로 전달해야할 것이 많아서 강의식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조발표 등도 하지 않는 것은 한정된 시간에 가장 효율적인 법 과목의 학습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강의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Q. 수강생 중 어떤 유형의 학생을 선호하고, 선호하지 않으시나요?

 

A. 특별한 선호는 없습니다. 제 수업을 선택하여 준 학생들에게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Q. 신설 강의인 점, <법과정치>가 인기가 많았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기대가 높습니다. 주로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국가와 헌법> 수업을 풀어 가실 예정인가요?

 

A. 대학 시절 제가 배웠던 수많은 과목들의 구체적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그 과목이 지향하던 가치는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저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저는 매 수업에 올 때마다 오늘 하루 수업에서 학생들이 이거 하나는 꼭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수업 준비를 합니다. 그 하나도 결국에는 소멸할 지식이지만 그런 하나하나가 모여 한 학기가 지나고 “아 법 공부를 해봤더니 자유와 권리가 좀 중요한 가치네” 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그런 목표를 가지고 내용과 형식을 채워가려고 합니다.

 

Q. 수업에서 학생들이 가장 알아갔으면 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A. 자유와 권리가 좀 중요한 가치라는 것, 정치학을 공부하는 내가 좀 중요하고 멋진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Q. 기존에 여셨던 <법과정치> 수업과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요?

 

A. 법과 정치는 법의 여러 분야에 대한 접근을 통해 우리의 정치현실과 사회를 이해하도록 진행하였으므로 주제가 다양하지만 조금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과목이지요. 과목의 성격상 그렇게 진행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목은 ‘헌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주된 목표이므로 아무래도 법과 정치보다는 조금 더 이론에 치중하는 수업이 되겠지요. 헌법 교과서 한 권을 주교재로 선정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교과서로 정리하는 것이 학습을 위해서도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수업은 교재를 강독하는 형식은 지양하고 다양한 헌재 판례와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Q. 학생들에게 어떤 교수님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그런 바람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뭘 바라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어요.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A. 학부시절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행정고시를 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점심 먹으면서 외교관이 되고 싶고 술자리에서 사회현실에 분노하여 기자가 되어야겠다 생각하다가 자기 전에는 미국 유학을 가고 싶어지잖아요. 그만큼 정외과의 경우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지요. 그건 그만큼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고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제자이자 후배들을 만나면서 조급해 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물론 무엇인가를 빠르게 잘 성취해 내는 것은 큰 보람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관심이 가는 분야에 대해서 조금만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생각하며 그 자질을 위해 자신을 천천히 만들어 가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이 소중한 대학시절의 시간들을 행복해 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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