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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상산고 자사고 지위 유지 결정, 유감이다.

오은미( icomn@icomn.net) 2019.08.02 09:06

귀족학교, 특권교육...

애당초 우리 서민들과는, 특히 농촌에서 소농으로 살아가는 내겐 먼 얘기다. 아이 셋을 두고 있지만 가난하고 바쁜 부모가 되다보니 돌봄은커녕 방치, 방목하며 흐르는 세월에 저들 스스로 컸다. 때로 미안한 맘 크지만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도 그저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지난 주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틈새에 토종 텃밭에서 땀이 범벅이 되어 숨쉬기조차 버겁게 풀과 씨름을 하며 쓰러진 고추를 일으켜 세워 말뚝을 박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상산고가 자사고 지위 유지로 발표 됐는데 의견이 어떠냐는 거였다. 막상 결과를 들으니 ‘그러면 그렇지...’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 뒤틀리는 속내를 감출 수가 없었다.

온갖 특혜와 특권은 법과 제도를 넘나들며 늘 그들의 손을 들어준다. 대한민국에서 공정성, 보편성은 갈수록 멀어지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특권교육 해체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철석같은 믿음을 주던 대통령의 공약은 쌈 된장에 쌈 싸 드셨나?

이명박근혜 시절에도 눈치 보며 주저하던 일들을 문재인 정부는 사람 좋은 얼굴을 디밀며 뒤통수친다. 유체이탈 화법의 원조가 박근혜였었다면 유체이탈 화법의 달인은 문재인이라 할 만큼!

 

대한민국과 전라북도에 인재가 없어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5년 전 박근혜 시절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끝까지 관철하려 했던 상산고였다. 추운 겨울 전북지역 시민단체들이 상산고 정문 앞에서 국정화 저지를 위해 시위하던 기억이 여름 한 낮 더위를 잊게 해준다. 보아하니 상산고 이사장이 훌륭한 교육 철학을 가졌다고 이 사람 저 사람 칭찬을 많이 하던데 왜곡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것은 훌륭한 교육 철학과 별개의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님 교학사 교과서에 쓰여진 역사를 신념으로 가지고 있든지...

이번 상산고의 자사고 지위 유지에 많은 정치권과 내로라하는 단체들이 역성을 들었다. 지역 인재 양성과 지역 경제 발전이 이유 중 하나다. 대한민국과 전라북도에 인재가 없어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좀 더 솔직해지자. 수치에도 명백하게 나와 있는 지역 인재가 도대체 몇 명이고 그들이 지역 경제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기에 상산고가 폐교나 되는 것처럼 상산고 구하기에 목을 매었나?

이들 중 노조 만들었다고 직장 잘리어 하늘 감옥으로 올라가 50일이 넘게 곡기를 끊고 있는 노동자와 양파·마늘 값이 폭락하여 자식 같이 키운 양파를 갈아엎고 멍든 가슴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농민을 걱정하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20년도 훨씬 넘은 기억이 떠오른다. 지역 방송국에서 중국에 대해 심층 취재를 한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는데 중국에는 20대 유학파 인재들이 많다고 한다. 국비로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들과 인터뷰를 하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국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니 제가 배운 것을 다 바쳐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일할 것이다.”

충격이었다. 우리는 죽기 살기로 투자해 출세와 성공, 부와 권력이 개인의 영광으로 끝이 나는데 중국의 저력은 바로 젊은 인재들의 투철한 애국정신임을 확인하고 개인주의가 활짝 핀 우리나라와 비교되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러웠었다.

과연 자사고 아이들에게 역사와 민족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갈 공동체 의식 또한 기르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물론 입시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반 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어려서부터 있는 집 부모의 한없는 뒷받침과 투자 속에 공부 잘하는 기계로 길러진 아이들, 분리교육을 통해 명문대의 의대 한의대를 거쳐 우리 사회의 상류층 주류들이 되게 하는 과정을 거치며 뼛속 깊이 새겨진 특권의식은 그들만의 성을 더욱 견고히 쌓게 만들어 가게 할 것이다.

이는 백년지대계 교육을 일년지대계 정책으로 교육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일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차이를 더욱 넓혀 차별과 괴리를 부추길 뿐이다.

 

나에게 있어 특권이란 정직한 노동의 땀방울을 흘리며 당당한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박물관에 들어간 지 오래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라고 등 떠미는 것 자체가 모순인 현실, 이미 그들은 특권을 대물림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이 사회의 기득권· 특권층이다. 좁은 대한민국에서 서로 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더워진다.

이번 자사고 사태의 결과를 보며 교육이 함께 성장하고 모두가 행복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누군가에겐 박탈감과 소외감으로 되새겨 진다면 그건 분명 시대를 역행하는 잘못된 결정일 것이고 실망을 넘어 결국 우리의 미래가 암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에게 있어 특권이란 자연과 더불어 노동이 아름답고, 사회가 평등하고,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직한 노동의 땀방울을 흘리며 당당한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또 그런 삶을 우리 아이들이 살아 줄 것을 기대하고 현실 교육제도에서 실현되는 날을 꿈꾸며 쓰러진 고추를 일으켜 세워 말뚝을 박는다. 현실은 절망일 뿐이지만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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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미 : 전북도 8,9대 의원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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