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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시는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강미현( icomn@icomn.net) 2020.02.05 10:02

터키여행을 다녀왔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있는 나라,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 그리스 로마 유적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나라……. 이런 동서양 문화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다. 뜻밖에도 여행 기간 내내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은 이스탄불도 트로이의 유적지도 아닌 길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고양이와 개(강아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큰)들의 일상이었다.

 

이스탄불에 왔다는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았던 도착 직후 호텔 입구에서 고양이와 마주쳤다. 아..... 길고양인가? 지나치는 순간 동물 무리(2~3여 마리)가 등장한다. 어……라? 이렇게 커다란 개들이 호텔 출입문 근처에 있다니 아직 도시화가 되지 않은 지역인가 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첫날이 지났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되자 이스탄불 도심에서도, 지중해 휴양지에서도, 심지어 유네스코 유적지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어슬렁대는 고양이와 커다란 개들을 만나는 일이 계속되었다. 이곳 길 동물들은 사람에게 미움이라고는 받아 본 적이 없다는 듯 길 가 상점들을 자연스럽게 들락거린다. 커다란 개들도 도심을 어슬렁거리거나 거리 한쪽에서 배를 드러내고 낮잠을 잔다. 사람들을 따라 자유롭게 도시를 산책하는 개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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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개들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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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원에 사람만큼 이나 많은 개들이 모여있다)

 

사람과 동물의 보행이 가능한 이유는 도시 내 차량 속도가 느렸기 때문이다. 터키의 교통문화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갔는데도 우리 사회와 비교될 만큼 보행자 우선이었고 자동차 경적 또한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길거리 동물들을 향해 가끔 팔을 뻗어 쓰다듬을 해주거나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갈 길을 간다. 무엇보다 동물들이 행복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도시에서 동물과 사람의 공존이 가능한 것일까. 동물이 사람이 아닌 자연에 속한 존재라는 생명 존중적 사고가 돋보인다.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목줄을 한 강아지 외에는 자신의 몸을 사람들로부터 숨기기에 정신이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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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적지에도 흔한 길고양이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다)

 

이렇게 도시는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만약 도시가 지금처럼 사람과 그 사람들에게 길든 동물과 식물만이 살아간다면 생태계의 균형이 곧 깨질 것이 자명하다. 공존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대하는 기본적인 인식이 변해야 한다. 동물은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며 그들을 먹고, 입고, 유희할 권리가 사람에게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도시계획 역시 동물도 사람과 같이 자유롭게 살아가야 할 자연적 존재라는 것을 아는 윤리적 사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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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흔한 길거리 개와 필자)

 

우리 사회에서도 동물을 보는 시선이 사람이 우위에 있던 애완에서 반려동물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에 따라 도시 정책 역시 자연과 인간을 동등 선에서 놓고 결정해야 한다. 더디지만 변화는 눈에 띈다. 우리 지역에서도 동물 수용소(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였던 동물원이 생태적으로 변화되고 있고, 길고양이 급식소가 생기고 있다. 축산 농가에서도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동물 복지가 논의 중이고, 전주시는 생태 도시로서 거듭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정책들 사이로 도시 내 반려견 놀이터 하나 만드는 것도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 한국 사회를 보며 동물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 터키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그 경이로운 경험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여행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 나에게 터키라는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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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과 도시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을 너무도 사랑하는 강미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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