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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뭐, 물고기 복지?’라고 생각하는 당신께

박정희의 동물이야기 제7탄

박정희( icomn@icomn.net) 2020.02.08 11:51

동물학대로 고발당한 산천어 축제

 

동물을위한행동 등 11개 동물권 단체들로 구성된 ‘산천어 살리기 운동본부’는 지난 1월 9일 산천어 축제를 개최한 화천 군수를 ‘동물학대’ 혐의로 고발 했다. 동물단체들은 살아있는 생명체인 산천어를 ‘체험’ 프로그램의 도구로 쓰는 이 축제는 동물보호법 8조, ‘동물학대 금지’ 등의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 축제는 얼음 구명을 뚫어 산천어를 낚는 얼음낙시, 풀장에서 맨손으로 산천어를 잡는 맨손잡기 등의 체험이 있는데 이 중 맨손으로 산천어를 잡는 가학적인 ‘맨손잡기’ 체험을 대표적인 동물학대로 지적했다. (관련 경향신문 2020.01.09. ‘산천어 축제는 동물학대 행사’ 고발 위기에 놓인 화천군 명물)

 

산천어 축제는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 축제를 하는 화천군에는 ‘축제 하나로 먹고산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화천군하면 많은 이들이 산천어 축제를 바로 떠올린다. 그러나 실상 산천어 축제 지역에는 산천어가 살지 않는다. 그래서 화천군은 이 축제를 위해 약 80만 마리(190톤)를 전국 양식장에서 구매하는데, 이는 전국 산천어 양식장의 90%에 해당하는 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천어 축제는 <대한민국 축제콘텐츠 대상>을 수상하고 <글로벌 육성 축제>로 선정되는 등 지역 축제의 모범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이 같은 축제를 동물학대와 생태계 파괴의 온상으로 동물 단체들은 판단한 것이다.

 

 

왜 산천어 축제가 동물 학대인가

 

산천어 축제는 사실 한국 최악의 축제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축제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고통받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산천어.

 

3km에 걸친 얼음 벌판 축제장에 뚫린 구멍만 수천 개. 축제 전까지 굶긴 약 80만 마리 산천어들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쳐놓은 테두리 속에 갇혔다가 잡혀 죽는다. 운 좋게 살아남아도 굶고 상처가 곪아서 이내 폐사되고 어묵 공장으로 직행한다. 생존을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유흥을 위해 수십만의 생명이 단 몇 주 안에 죽어 나가는 해괴한 이벤트. 인간들이 축제라고 부르는 이 동물 지옥은 집단 살상의 현장에 불과하다.

 

산천어 축제는 특히 가족 단위 참가자가 많아,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동물 학대를 체득하게 된다. 맨손 잡기 등의 비교육적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다루는 법,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입에 물고 자랑스럽게 기념사진 찍는 법이다. 이렇게 우리의 아이들은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철학자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인할 수밖에 없다.

 

이미 무수한 과학 연구들이 어류도 고통을 지각한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세계적으로 식용의 경우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인도적 도살’ 기준을 마련하는 추세임에도 이런 인식이나 고려는 전무하며, 축제 기간 동안 ‘계곡의 여왕’이란 별명이 붙은 산천어의 아름다움이 음미되는 시간은 한순간도 없이, 잡은 즉시 몇 분 안에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충동질만 넘쳐 난다.

 

재미로 하는 살상이라는 사실 만큼이나 불편한 것이 그 방식이다. 화천 지방에서 살지도 않는 동물을 억지로 공수 해놓고 ‘지역축제’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조성한 거대 어항에 동물을 억지로 가두고 취미 삼아 잡아 죽이는 행위가 과연 품격있는 시민으로서, 또 아이들 앞에 선 부모로서 자랑스러운 행동일까, 아니면 좀스럽고 수치스런 행동인가? 낚시를 즐기는 이들조차 이 ‘가두리 학살’을 낚시라고 부르기 민망해 할 것이다.

 

또한, 양식산 상위 포식자인 산천어는 ‘미래 양식의 재앙’으로 문제시되는 생사료에 의존하므로 결과적으로 해양 생태계에 큰 부담을 준다. 한반도 어획량이 44년 만에 백만 톤 이하로 붕괴한 시점에서, 이처럼 아까운 생명의 낭비를 조장하는 행사는 미래를 생각했을 때 반생태적이고 지속 불가능한 모델이다.

 

이런 축제가 타 지방에서 널리 모방 될수록, 더 많은 동물 학대와 생명 낭비로 이어지고 각 지역 하천의 생태계 파괴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이 된다. 동물을 이익추구, 욕구충족, 레저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축제를 계속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종의 급감이나 멸종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 동물들은 싹쓸이해도 좋을 만큼 무한한 상품이 아니라, 가능한 한 아껴서 소중히 다뤄야 할 유한한 생명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것을 민간도 아닌 지자체가 나서서 국민 세금으로 추진하고 생각 없이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수공통전염 질병, 야생동물에 대한 무례와 무지가 초래한 것

 

2020년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생각하지도 못한 감염병으로 온 나라가 비상인 상태로 시작되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원인은 야생 박쥐를 먹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따라서 축제의 맨손잡이 체험은 인수공통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무시하면 안된다. 맨손잡이 체험은 물고기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 아니라 인간 감염의 위험도 있다. 어류로부터 인간으로 전염될 수 있는 병원체에는 곰팡이, 박테리아 등이 있다. 마이코박테리아(Mycobacterium)은 감염된 어류나 매개물(물)을 만졌을 때 감염될 수 있으며 면역 시스템이 손상된 환자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박테리아는 피부의 상처가 있을 때 이를 통해 들어와 내부 면역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스트렙토코커스 이니아에(Streptococcus iniae)의 경우 어류에게서 방향상실, 점상출혈, 안구돌출(exophthalmia), 안구 농(corneal hypopyon) 등의 임상증상을 일으키는데, 인간은 감염된 어류를 손으로 만질때 봉와직염(cellulitis), 심장내막염(endocarditis), 수막염(meningitis), 관절염(arthritis) 등에 걸릴 수 있다. 이 밖에도 맨손으로 어류를 만졌을 때 아로모나스와 비브리오(Aeromonas and Vibrio), 에이스피플로트릭스 루시오파티아(Aeromonas hydrophila Erysipelothrix rhusiopathiae) 등의 감염 위험도 있다. 축제에 들어오는 산천어는 수송, 절식, 과밀 사육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이미 질병 발생의 위험이 크고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이런 산천어를 맨손으로 잡는 체험은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위험 때문에 수의 전문가들은 맨손으로 어류를 함부로 만지지 않도록 조언하고 있다. (참고문헌) Marcy J Souza 외, Veterinary Clinics of North America-Exotic Animal Practice, 2011

 

 

무식한 축제는 이제 그만

 

축제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반대하는 분들은 ‘당신들은 물고기를 안 먹나’라고 묻는다. 그러나 축제를 반대하는 것이 물고기를 먹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유희를 위해 수많은 물고리를 인위적으로 몰아 넣거 죽이는 상황을 그만두자는 것이다. 우리가 닭을 먹지만 닭을 한군데 몰아넣고 죽이는 축제 같은 것은 않지 않나.

 

선진 외국에서는 이런 죽음을 즐기는 대규모 축제는 없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와 의식수준에 맞지 않는 이러한 축제를 2011년 CNN에서 ‘겨울 7대 불가사의’로 뽑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들과 화천군은 외국 시각에서 이상하고 무식한 축제로 취재한 것을 오히려 반대로 외국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오판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1월 6일 기자 간담회에서 화천 산천어 축제에 대해 개인 입장이라 선을 긋긴 했지만 ‘생명을 담보로 한 인간 중심의 향연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환경부 장관으로선 처음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였다.

 

다행한 일이다.

생명체를 죽이는 것을 즐기는 축제에 대해 환경부 수장이 반대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이제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얄팍한 상술로 산천어 축제를 모방하는 무식한 지자체장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지역의 먹거리가 없더라도 세계시민의 의식 수준에 어울리는 경제활성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20년 이제는 윤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생명을 존중하면서 생태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 그런 축제를 즐기자. 제발.

 

[참고]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에 '동물보호의 기본원칙'이 명시되어 있고, 제3조 1항에 ‘본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할 것', 3항에'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고 불편함을 겪지 아니하도록 할 것', 5항에 '동물이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지 아니하도록 할 것' 등 5가지 관련 조항이 있다.)

 

* 유럽 식품 안전국(European Food Safety Authority)은 2009년 보고서를 통해 어류가 기능적 통각수용기와 통증 과정과 관련된 뇌 구조를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공식화하였다. 이는 어류가 통증, 공포,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동물임을 입증하는 과학 연구 성과에 기초하였다. 2005년 유럽위원회는 양식 어류의 복지에 관한 권고문을 발표했으며, 영국의 환경식품농업부는 2012년 영국 수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어류의 복지에 관한 기준을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어류를 축제라는 이름으로 학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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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천산천어 축제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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