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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리나라에 성착취 인신매매가 아직도, 있다고? (2)

전수연( icomn@icomn.net) 2020.02.20 12:49

저번 저의 글에서는, 팔레르모 의정서(한국은 2015년에 가입함)에서 정하고 있는 인신매매의 개념을 살피고, 현행 우리 형법상으로는 위 의정서가 정의하는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범죄를 정의하고 처벌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는 점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의 미군기지 부근의 외국인전용 유흥업소 등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인신매매의 실태를 제가 만난 피해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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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오마이뉴스)

예술흥행비자(E-6-2). 한국의 외국인전용 유흥업소에서 공연 등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오려는 외국인들이 받아야하는 체류비자입니다. 이름부터가 수상쩍긴합니다. 예술을 흥행하기 위한 비자라니… 순수예술활동을 위한 E-6-1비자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순수’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참고로, E-6-2비자는 한국정부가 보장하는 시스템 안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성착취 인신매매를 묵인하는 비자가 아닌지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해당 비자의 존폐여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예술흥행비자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본인들이 한국의 업소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추측도 못한 채, 그저 ‘나는 노래를 잘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부르는 것도 좋아하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본국에 있는 가난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겠지’라는 순박하고도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한국에 입국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합니다. 업주에게 여권을 압수당하고, 문을 밖에서 잠가 업주의 허락이 있어야 외출이 가능한 사실상의 감금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노래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여성들이 기대했던 공연기회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끔찍하게도 손님들로부터 유사성행위[1] 혹은 성매매까지 강요받았습니다. 업주에게 ‘이런 것은 하기싫다’고도 하소연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야! 너 처녀야? 이런거 하기 싫으면 여기 왜 왔어?” 하며, 맥주잔으로 머리를 맞기도, 머리채를 잡히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여성들은 틈만 나면 행해지는 업주의 상습적인 성추행(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등)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여성들은 몇 개월간 지옥을 견디어내듯 버티다가 끝내 탈출을 시도하였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여성들은 성매매 관련 피의자로 체포가 되었고, 업주 또한 수사를 받았습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여성들은 성착취 인신매매의 피해자임이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사실을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련법상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 취급을 받으며 강제퇴거명령(한국에서 쫓아내고) 및 보호명령(구금시설에 가두겠다는 내용)까지 발부된 채, 결국 교도소와 동일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습니다. 이후 어필에서는 여성들을 대리하여 업주와 프로모터(기획사 직원)를 고소하고 형사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업주는 법원에서 고작 1년의 징역형과 함께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실제로 교도소에서 복역하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형사소송을 마쳤다는 것만으로 여성들이 받아왔던 피해의 온전한 회복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외에도 수사기관에서 여성들이 피해자인 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성매매범죄에 대한 ‘피의자’로 간주하고 수사를 개시한 바람에, 여성들은 강제퇴거명령을 받고, 체류자격 박탈되었으며,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을 뿐 아니라, 구금기간 동안 이뤄졌던 불리하고 위법한 조치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행정소송이나 국가배상, 민사소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최근까지도 다퉈오고 있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피해자임이 분명했지만, 소송이 어렵게 풀려갔던 이유는 여성들의 ‘피해자성’이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 주요했습니다. 성매매처벌법[2]에 의하면, ‘외국인 여성을 성매매피해자로 수사하는 경우’에는 해당 피해자에 대한 불기소 처분 등의 검찰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강제퇴거명령이나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구금 등의 불리한 조치를 하지 않는 대상을 ‘피해자’로 한정한다는 점입니다. 수사기관에서 여성들을 ‘피해자’로 보는 경우는 대체로 “여성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신고한” 때입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먼저 신고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너네 만약 신고하면 너희만 감옥간다. 내 친척 중에 판사도 있고, 경찰도 있어. 신고하면 너희만 필리핀으로 갈거야” 라는 협박을 업주로부터 지속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의 지인이라고는 업주와 동료여성들이 다인 여성들에게 낯선 땅인 한국에 와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말은 그녀들의 온 존재를 옭아매기에 충분한 협박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고를 먼저 하지 않았으니, 여성들도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것이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들이 작용되었고, 여성들은 결국 ‘기소유예’ 처분을 받으면서, 죄가 없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딜레마적 틀에 갇혀버린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피해여성들과 관련한 사건의 재판기일에서 ‘죄지은 여성들이 뭘 잘했다고 이런 것까지 다투지’하는 무심한 눈빛의 판사를 마주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신매매에 대해 충실치 못하게 규정된 법과 이를 더욱 좁게 해석하려는 관행과 원칙, 피해자들에게 100%의 순수성을 요구하는 실무자들의 시선들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여성들의 절박함과 취약함들이 뒤엉켰고, 결국 남은 것은 ‘여성들은 피해자가 아니며 출입국관리법 위반자이므로 어서 한국 땅을 출국하라는 명령과 여성들이 받은 피해에 국가의 잘못은 단 하나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판결문의 문장들 뿐.

그러나 제가 만난 피해여성은 다음과 같이 선명히 이야기하였어요.

“정의를 되찾고 싶어요. 내 명예도 같이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인데, 한국정부는 나를 범죄자처럼 취급하며, 교도소(외국인보호소)에 구금시켰어요.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합의는 안합니다.”

피해자는 ‘피해자’로 인식되고, 가해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으며, 같은 피해자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피해가 발생하였다면 적실한 보상이 이뤄지고, 피해 여성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는 내용들이 포괄적으로 규정된 법과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정책, 관련 공무원들의 인식개선이 절실합니다. 조금 더 힘을 내어보겠습니다.


[1]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

나. 구강, 항문 등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이용한 유사 성교행위

[2] 성매매알선등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11조 : ① 외국인여성이 이 법에 규정된 범죄를 신고한 경우나 외국인여성을 성매매피해자로 수사하는 경우에는 해당 사건을 불기소처분하거나 공소를 제기할 때까지 「출입국관리법」 제46조에 따른 강제퇴거명령 또는 같은 법 제51조에 따른 보호의 집행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경우 수사기관은 지방출입국ㆍ외국인관서에 해당 외국인여성의 인적사항과 주거를 통보하는 등 출입국 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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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의 인권을 옹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안의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방인(strangers)’들이죠. 그러나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는 이미 이방인이며, 혹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이방인이 될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We are all st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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