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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년, 아프고 시리고 벅찼던 시간

서평- 아이들은 즐겁다

김경민( icomn@icomn.net) 2020.08.07 10:16

유년 시절을 어떠한 근심 걱정 슬픔 아픔도 없는,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했던 시간으로 회고하는 서사물을 접할 때마다, 단순히 공감이 되지 않은 걸 넘어 그런 걸 만든 이에 대한 경멸까지 올라온다. 이는 서사물을 읽거나 보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창작자의 태도 중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는 아이라는 존재를 무시하는 태도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봐도, 육아의 경험으로 판단해 봐도, 아이는 아이일 뿐이지 바보가 아니다.

 

자,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유년을 1분1초의 빈틈도 없이 끔찍하게 어두운 시절로 묘사하는 서사물은 어떤가. 나는 이런 서사물 또한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서사물은 아주 중요한 진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건강한 망각능력과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갖고 있다는 진실 말이다. 아이는 눈물이 맺힌 채로 웃을 수 있는 존재다. 이는 아이가 (어른들은 잃어버린)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바보라서가 아니다. 만일 이 망각능력과 회복탄력성이 없다면,

많은 아이들이 살아서 어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부모에게서 태어났음에도, 폭력과 차별대우를 일삼는 선생을 만났음에도, 시기질투와 이간질을 하는 또래로부터 고통을 당했음에도,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결핍으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꼈음에도, 많은 아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결국 어른이 된다. 심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어른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나는 괜찮은 어른이 유년의 아팠던 어느 순간을 담담하게 회상하는 걸 보고 들을 때마다, 내 일이 아님에도 코끝이 매워지며 울컥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즐겁다》 (허5파6 글·그림, 비아북, 양장합본판, 2017)는 단순하고 소박한 그림체로 정말이지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감동을 주는 만화다. 유년 시절의 아팠고 시렸고 벅찼던 기억을 이보다 더 섬세하면서도 묵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원래 이 만화는 네이버에 연재된 웹툰인데, 연재 당시 매회마다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받은 사랑과 응원이 밑거름이 되어 이 책이 나왔고, 뒤늦게 이 만화를 책으로 보게 된 나는 마지막 장을 덮고도 한참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러할 것이다. 적어도 당신이 슬픈 표정으로 땅을 쳐다보며 천천히 걷는 아이를 보게 될 때 심장이 쿵 내려앉는 사람이라면.

 

20200802_135415.jpg(사진: 아이들은 즐겁다,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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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을 공부하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지금은 교사를 그만두고 두 아이를 키우며 꾸준히 읽고 쓰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를 비롯해 네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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