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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30살 미만의 독립은 인정하지 않는 사회

권영실( icomn@icomn.net) 2020.08.21 10:29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을 의결하면서 생계급여에서는 2022년 부양의무자 기준을 일부 폐지하지만, 의료급여에 있어서는 폐지를 약속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이것은 기존 입장보다 오히려 후퇴한 안으로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가족에게 부양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정부의 입장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주거급여에 있어서는 지난 2018년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국민기초생활보장법령상 수급 자격요건의 기본단위인 “개별가구(「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4조 제3항은 “보장기관은 가구를 단위로 하여 급여를 행하되,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개인을 단위로 하여 급여를 행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개별가구 단위의 보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에 대한 협소한 기준으로 인해 “30대 미만의 미혼 자녀(「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제2호 나목은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등재된 사람(동거인은 제외)의 미혼 자녀 중 30세 미만인 사람’을 부모와 동일 보장가구로 포함시키고 있다.)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아직 남아있다. 결혼하지 않은 청년 및 청소년의 경우 부모와 주거를 달리하여도 별도의 가구가 아닌 부모와 동일한 가구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위 규정으로 인해 부모와 주거를 달리하는 30세 미만의 비혼 청년 및 청소년들은 자신의 소득 및 재산이 아무리 낮아도 수급권을 신청조차 하지 못한다. 원칙적으로 이들의 소득 및 재산은 수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소득인정액 조사 시 부모의 소득・재산과 합산되어 계산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포함된 가구가 수급 대상에 선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별도가구로 인정되어 별도로 수급하게 될 1인당 수급액은 적기 때문에, 수급액이 감소하거나 수급권의 일부 또는 전부를 상실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주거급여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주거급여를 실시하여 국민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그러나 현재의 주거급여 제도는 위와 같은 관련 법령을 그대로 준용하여 주거급여가 필요함에도 수급대상이 될 수 없는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지역에 위치한 대학에 입학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20대 청년이나, 가족 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여 탈가정을 하게 된 만 18세의 청소년 등 부모로부터 전혀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주거급여를 신청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물론,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령」 제2조 제2항 제7호에 따라 생계 및 주거를 달리한다고 소명하여 시장·군수·구청장의 확인을 받은 사람은 별도가구로 보장될 수 있지만, 실무상 이를 소명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 해체를 입증해야 하는데,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 여부를 넘어 연락까지도 단절하고 지내는지 등에 따라 판단하고 그 과정이 인권침해적이라는 점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특히 만18세라도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원가정에서 물리적인 폭력이나 경찰에 신고한 내역이 없다면 가족해체를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자녀를 부모와 동일 보장가구로 포함시키는 30세라는 기준이 어디에서 기인하였을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1999년 IMF 이후 만들어진 법이다. 입법 당시 금융위기로 취직에 어려움을 겪으며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젊은이들을 캥거루족이라고 부르던 당시의 시대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으로 인해 청년세대가 겪는 어려움은 당시와 유사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족’을 둘러싼 가치와 우리사회의 인식은 큰 폭으로 변화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의 획일화된 가족 형태를 탈피하여 나이, 혈연 여부에서 벗어난 다양한 관계를 기반으로 가족을 꾸리고 있다. 20년 전 만들어진 전통적인 가족중심의 기준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특정한 가족 모델만을 기반으로 한 정책을 지속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주거권을 보장하고 주거상황을 안정시켜야 할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나아가 막연히 30세를 기준으로 30세 미만의 미혼 자녀들은 부모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전제는 그렇지 못한 이들의 삶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셈이다.

 

청년주거빈곤층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자, 정부는 미혼청년의 주거급여를 분리하여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이데일리, “정부, 미혼청년 주거급여 분리 지급... 청년 탈빈곤 지원” (2020. 8. 10.)​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781846625866008&mediaCodeNo=257)

이제나마 불합리한 규정으로 인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문제시 되는 “개별가구”에 대한 법규정은 그대로 둔 채, “주거급여 수급가구”에 국한하여 “국토교통부의 지침”을 통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작년부터 검토하겠다던 “개별가구를 구성하는 연령 제한을 낮추는 방안”(서울신문, “[단독]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도 주거급여 받는다” (2019. 6. 27.)​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628001028) 에서 오히려 축소된 안이다.

 

계획안의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주거급여 수급가구의 20대 자녀에게 분리거주사유서 제출을 요구하고, 주택기준에 제한이 있으며, 부모와 최소한의 행정구역이 다른 지역에 거주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 이러한 제한적인 대책으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청년 또는 청소년의 주거빈곤 상황을 포괄하지 못한다. 대상자를 만19세부터로 한정한 것도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주거급여와 같이 주거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의 경우에는 사전적인 판단을 통해 일률적으로 정해진 나이 기준이 아닌, 개인이 별도의 주거지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따라 지원의 필요성을 판단해야 한다. 30세 미만 개인들의 독립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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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동천은 로펌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을 활성화하고 공익단체, 활동가 및 예비공익변호사를 지원, 양성하는 한편, 공익법 연구 및 법률구조, 제도개선, 입법지원활동을 함으로써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공익법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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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경실련 아름다운 청년 선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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