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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중년의 편지 쓰기

김수연( icomn@icomn.net) 2020.11.07 21:35

100세 시대가 되면서 노인의 기준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 예전에는 환갑 지나면 무조건 노인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어르신들 보면 대체로 80세 이상이다. 그만큼 건강하고 활발한 젊은 노년층이 많아졌다. 노인이라는 표현이 고루하고 듣기에 민망해서인지 종종 ‘시니어’라는 단어가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시니어를 앞둔 코앞의 50대, 60대를 ‘신중년’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왜 글을 쓰시나요?

 

필자가 진행하는 글쓰기 강의의 주 대상자는 바로 이 신중년들이다. 내 또래 40대도 종종 있지만 50대, 60대가 훨씬 많다. 이미 은퇴를 했거나 제2의 직업으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그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놀랄 때가 많다. 글쓰기 첫 강의 시간이 되면 항상 이분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글을 쓰려고 하세요?”

 

책을 펴내고 싶다는 대단한 목표를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신중년 수강생들은 이렇게 답한다. “저의 인생을 돌아보고 싶어서요”, “소원해진 가족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요”,“관계를 위한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서요”라고.

 

글쓰기로 돌아보는 삶

 

신중년은 어떤 세대일까.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의 책임으로, 가족을 돌보는 희생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수십 년을 달려온 세대다. 그게 인생의 미덕이고 지침인 줄 알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앞만 보고 왔다. 그런데 문득 40대 후반이 되고 꺾어진 50대가 되고 황혼을 바라보는 60대가 되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이게 과연 맞는 인생인가?”,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도 되는 것일까?”, “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등 달려온 인생이 허무하고 별거 아닌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다행히도 코로나 시대가 열리면서 고민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딘가에 털어낼 곳을 찾는 분들이 늘었다. 집에 있는 시간, 사색하는 시간이 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그게 바로 글쓰기다.

 

나와 가족에게 전하는 따뜻한 편지

 

60대의 남자 수강생은 아내와 자식에게 전하는 따뜻한 수필을 쓰고 싶어 하셨다. 외국에서 힘들게 결혼 준비하는 딸의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장문의 편지를 준비하는 어머니도 계셨다. 도시 개발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서울 어느 골목을 그리워하는 스스로에게 동심으로 돌아가 글을 건네고 싶어 하는 분도 계셨다.

 

그분들이 새벽잠을 이겨내며 쓰신 글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웃음이 나고 감동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켜켜이 쌓인 지난 삶이 단순하고 어설픈 문장 하나에 콕 박혀 있다. 명문이 따로 없다. 오탈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띄어쓰기 좀 어설프면 어떠랴. 글을 본 순간, 낮은 탄식이 쏟아져 나오면 그만이다.

 

글을 가르친다는 표현조차 송구할 정도로 이미 잘 쓰고 계신다. 내가 독려하는 것은 다만 꾸준히 쓰실 것을 권해드리는 정도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했던가. 각기 다른 모양새로,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분들의 인생 글을 엿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기꺼이 삶을 내어 보여주시는 그분들의 용기에 감사함을 느낀다. 인생의 그래프가 올라가다가 꺾어질 때 즈음에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 글쓰기로 새로운 인생길을 찾는 모든 분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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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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