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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권과 시민성 배제한 인성교육진흥법이 수상하다"

[기고] 정부와 보수단체의 인성교육 프레임이 담긴 법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벽바다 시골잡학덕후( jbchamsori@gmail.com) 2015.03.26 17:12

학교폭력이 일상화되고, 분노 범죄가 끊이지 않는 요즘, 인성교육이 대안이라는 말은 일리 있어 보인다. 인성교육진흥법이 강조하는 효, 예, 배려 등의 가치는 공동체 의식에 필수적이며 사회 내 갈등을 줄이고 보다 평화로운 사회를 지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해 7월에 시행될 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법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걱정이 앞선다.


“정부가 말하는 인성교육의 핵심 가치는 피지배계층에 복종을 강조하는 것”


먼저, 인성교육진흥법에서는 인성교육의 핵심 가치덕목을 “인성교육의 목표가 되는 것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으로 정의하고 있다. “등”이라는 말로 일단 여지를 남기기는 했지만 사실 의심 가는 부분이 있다.


위에서 열거한 가치들은 인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지만, 과연 열거된 가치 이외의 것들 중에는 인성교육의 핵심가치덕목으로 열거될 만한 것은 없는가? 가령, 정의, 인권의식, 공동체의식, 시민성, 용기, 자율 등과 같은 가치는 열거될 필요가 적은 요소들인가? 좀 더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은 산업사회에서 또는 전통사회에서 주로 노동자 또는 피지배계층에 요구되는 덕목인 것 같다.


왜 인성교육에서 용기나 자율과 같은 가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가? 민주주의 사회라면 주인으로서의 시민에게 필요한 덕성이 인성일 것이고 이를 인성교육에서 분명 강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용기와 정의, 자율 등의 가치가 왜 강조되어 다뤄지지 않는가? 혹자는 말할 것이다. 이런 가치들을 강조하다보면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서로 배려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용기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이라는 말처럼 만용으로 흐를 것을 경계하여 용기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것과 같다. 


“순응적 인간 기르려는 정부, 시민은 불편한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보면, 인성교육진흥법 시행령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시민”이라는 용어를 “국민”으로 고쳤다는 점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물론 헌법에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국민”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를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도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면 굳이 수정할 필요는 없었고(교육기본법에는 “민주시민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법안의 발의자들 및 공청회 참가자들이 “시민”이 함축하는 의미보다는 “국민”이 함축하는 의미를 선호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국민”은 국가주의적 색채가 강하고,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는 순응적 인간을 기르는 교육을 인성교육이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반면 “시민”은 민주사회의 형성과정에서 생겨난 개념으로 국민보다 포괄적 개념이어서, 자율적이고 저항적인 성격까지 지닐 수 있고, 국가를 넘어 인류공동체 그리고 지구공동체를 생각하는 인성교육에 보다 적절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세계시민”이란 말은 어색함이 없지만 “세계국민”이라는 말은 생소하기 이를 데 없다).


“정부의 인성교육진흥법, 보수적 인성교육의 틀 마련 위한 것”


인성교육진흥법은 그간의 인성교육을 위한 시도들에 대한 강한 부정인 동시에 교육부가 주도하는 새로운 인성교육의 프레임을 짜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교육부는 창의․인성교육이라는 정책을 통해 인성교육을 추진해왔지만 인성보다는 창의에 방점이 찍히면서 인성교육이 다소 소홀해진 측면이 있었고, 학생인권, 혁신학교, 민주시민 교육, 인권교육, 참학력 등의 민선교육감들의 교육의제들이 모두 입시 위주의 절음발이 교육을 지양하고 인성이 겸비된 전인교육을 지향하면서 교육부의 인성교육을 넘어서는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경기도교육청은 민주시민 교육에 강조점을 두고 교과서를 개발했고, 서울, 충남, 전북, 광주 등에서는 이를 교육과정에서 사용하여 효과를 거두고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즉, 교육부 및 보수진영은 학교폭력 예방 차원에서 논의되던 인성교육을 법제화하여, 진보 및 민선교육감에게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으려 하고 있고 내친김에 보수적 인성교육의 틀까지 마련하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의심을 더욱 강화해주는 것은 인성교육진흥법 발의를 위한 논의(인성교육 진흥을 위한 추진 방향과 과제 - 서정화)가 주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부,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하 인실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 한국학교교육연구원 등 주로 보수적 성향을 지닌 연구단체의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을 발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단체는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이며, 이 단체가 결성되고 또 활동에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공한 단체는 인실련, 중앙일보, CJ 도너스캠프라는 점이 문제다. 물론 이 단체 자체가 문제라는 말은 아니다.


이 단체들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인성교육 실천 사례가 집적되어 있고, 역량 또한 많이 축적되어 있다. 또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이 새누리당 의원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신학용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법안 마련 및 인성교육실천포럼 행사 진행에 중심적 역할을 했던 것은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 및 인실련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인실련이라는 단체의 상임대표는 교총 회장이며, 상임고문 4인 중 손병두씨는 삼성꿈장학재단이사장이며 박정희기념재단이사장이었고, 심대평씨는 보수정치인이자 자유선진당 대표였고, 이경숙씨는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하며 영어몰입교육을 강행하려 하면서 이른바“어륀쥐”사건을 일으켰고, 마지막으로 최성규씨는 인천순복음교회 목사로 박정희를 아버지로 생각한다고 하며, 효실천 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5.16을 역사적 필연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이다. 중앙일보는 인성을 경쟁력이라고 하며, 인성을 경제적 용도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인신공격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말하는 인성교육은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성교육진흥법 시행령은 국가주의, 보수 편향에서 벗어나야"


인성교육진흥법은 이미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시행령을 마련 중이다. 인성교육은 이미 실천되고 있으나 아직도 입시교육에 밀려 그 힘을 발휘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어떤 의도로 인성교육진흥법이 만들어졌건 간에 중요한 것은 시행령에 보수적 가치 못지않게 진보적 가치가 인성교육에 필요한 것이라면 반드시 담겨야 한다.


치열한 논의와 의견조정을 거쳐서 균형 잡힌 인성교육진흥법 시행령을 만들어야 한다. 여러 사안들에 밀려 인성교육은 교육단체, 지자체 등의 관심권 밖에 있는 형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인성교육을 진흥한다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인성교육진흥법이 인성교육을 편향된 가치관을 주입하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 기구로 전락시키는 신호탄이 되게 하지는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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