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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북발 보육예산 전쟁, 법대로 하면 대통령 탄핵도

[칼럼]상위법 거스르는 대통령 시행령... '삼권분립' 훼손

정은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jbchamsori@gmail.com) 2015.05.11 15:19

작년 12월 12일,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은 전라북도의회에서 도의회의장, 전북어린이집연합회장, 도의회예산결산위원장, 도의회교육위원장과 함께 전북교육청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 '1'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시·도교육청 책임이 아니라 정부 책임임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2'에는 어린이집과 시·도교육청이 법률상 어떠한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기되었다. '7'에서는 향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완전한 지원을 받기 위하여 전북도의회, 전북교육청, 전북어린이집연합회가 대정부 관계에서 공동 대응한다고 하였다.


5개월이 지난 지금 합의문은 파기되었다. 누리과정 예산 투쟁에서 대정부 공동 대응을 약속한 전북어린이집연합회는 김 교육감을 상대로 주민소환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누리과정 운영비 3개월분이 바닥 나면서 김 교육감이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초부터 전북교육청 광장은 이들이 내는 성난 구호 소리로 조용할 날이 없다. 이들은 강원도에서처럼 전북교육청이 정부 보증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예산을 지원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누리과정 운영비 미편성으로 '보육대란'이 예고되었던 강원도는 지난 5일 민병희 강원교육감의 지시로 애초의 지원 거부 입장을 철회한 바 있다. 김 교육감만 고립무원 처지다. 그의 '몽니' 때문일까.


지난 6일,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누리과정 예산 편성과 관련된 입장을 바꾸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 교육감은 이 자리에서 "열악한 강원도 교육재정으로 매년 1000억 원 가까이 빚을 내 보건복지부 소관인 어린이집을 지원하는 것은 미봉책이다"라고 말했다. 어린이집과 관련된 법적 문제가 현재 펼쳐지고 있는 전북발 '보육예산 전쟁'의 핵심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복지부) 관할이다. 설립·인가, 관리·감독 등 어린이집 업무의 권한과 책임은 복지부를 통해 시·도지사로 연결된다. 유치원은 교육부 책임이다. 유치원 관련 업무의 권한과 책임은 교육부를 통해 시·도교육감으로 연결된다.


시도지사 권한인 어린이집 예산, 대통령령으로 교육감에게


실제 법률상으로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구별된다. 어린이집 설치는 영·유아보육법에 근거한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의 적용을 받는다. 업무 계통이나 법률상 어린이집과 교육청이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지방재정법) 제1조에는 "이 법은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그 소속기관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을 설치 경영함에 따라 필요한 재원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가가 교부"한다는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어린이집 설치 경영에 아무런 권한이나 책임이 없는 김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법적 근거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상 어린이집 예산 편성권은 시·도지사에게 있다. 그런데 작년 정부는 영·유아보육법의 하위 법률로서 일종의 대통령령인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통해 누리과정 예산 편성 주체를 시·도교육청으로 일방적으로 전환해 버렸다. 국회 입법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법률을 하위법인 대통령령이 거스르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는 헌법적 가치의 하나인 삼권분립이 훼손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헌법 제40조는 법률 제정이 국회의 고유 권한임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령은 그 상위법인 법률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위임'한 사항에 대해서만 규정할 수 있을 뿐이다.


영·유아보육법 시행령과 관련되는 상위법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이나 유아교육법에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에 관해 한 마디도 씌어 있지 않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시·도교육감 책임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위임 조항 역시 규정해 놓지 않고 있다. 시행령상의 규정으로 누리과정 예산 편성 책임을 시·도교육청에 전가한 정부가 정면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담긴 시행령이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고,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배치되는 시행령을 내리는 것은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헌법 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다. 이는 헌법 제65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한다.


심각한 문제가 또 있다. 작년 11월 김 교육감은 팟캐스트 <시사통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김 교육감은 누리과정 예산 편성 문제가 불거지게 된 '정치적' 배경을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보육대란의 단초를 제공한 이유를 의도적인 '진보교육감 죽이기' 차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왜 그런가.


교육청-어린이집 싸움 붙이고 구경만 하는 정부


전북교육청 전체적으로 인건비와 같은 경직성 경비는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이를 제외하고 김 교육감이 재량으로 집행할 수 있는 예산 비중은 2010년 첫 취임 당시 14퍼센트 정도였다가 현재 5퍼센트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정책들을 한시적인 특별교부금 명목의 예산으로 집행하는 중에 만들어진 결과라고 한다.


전북 지역의 전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800억 원이 넘는다. 전북교육청이 이 돈을 모두 책임지게 되면 김 교육감이 재량으로 정책적 판단을 한 뒤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비중이 더욱 줄어 4퍼센트가 된다고 한다. 김 교육감이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편성 문제를 빌미로 지방교육 자치를 훼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작년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13명의 진보교육감은 박근혜 정부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김 교육감은 현 정부가 이들 진보교육감을 염두에 두고 교육감직선제 폐지나 시·도지사 런닝메이트제와 같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육대란'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사업 중 하나였던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현재 아무런 법적 책임이나 권한이 없는 시·도교육청 사업이 돼버렸다. 하위법인 시행령상의 조항 하나로 상위법을 무력화시키고, 이를 통해 시·도교육청과 어린이집·학부모 간 싸움을 붙여놓은 정부는 뒷짐 지고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지켜만 보고 있다. 비겁한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지난 6일 회견에서 "누리과정 관련 법령 정비와 국비 지원, 교육예산 확충만이 대안"이라고 말했다. 지방교육 자치를 위축시키고, 말 안 듣는 진보교육감들을 길들이려는 정부가 순순히 들어줄 사항들이 아니다.


홀로 거대한 정부를 맞서던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사면초가다. 병가를 내고 며칠째 병상에 누워 있는 그는 대정부 투쟁에서 공동 대응을 합의했던 전북어린이집연합회로부터 주민소환 압박을 받고 있다. 심정적 '동지'들일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조차 정부의 교묘한 전술에 말려들어 모두가 두 손을 든 상태다.


김 교육감의 '패배'는 길고 깊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당장 진보 교육과 복지 담론이 위축될 것이다. 김 교육감을 '과녁'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이행을 누가 약속했으며, 누가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가. 하위법으로 상위법을 유린하여 헌법 정신을 훼손하고, 지방교육 자치를 말살하려고 기도하는 세력을 이대로 놔두어도 되는가.


[편집자 주] 이 글은 정은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오마이뉴스에 보낸 글입니다. 정은균 시민기자의 동의 아래 참소리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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