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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셀프가 가능한 나이

인생은 그냥 시간과 함께 직진이다

김수연( icomn@icomn.net) 2019.07.06 18:20

그 편리했던 음식이 언제부터인가 불편한 음식이 되었다

 

햄버거를 좋아한다. 음식을 주문하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 좋고 먹을 때도 간편하다. 이것저것 고민하지 말라고 세트 구성까지 있지 않은가. 그 편리했던 음식이 언제부터인가 불편한 음식이 되었다. 이제 서울 어디, 지방 어디를 가도 셀프 주문을 해야 하는 키오스크 매장이다. 현금, 상품권, 할인권 손님은 카운터 주문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음식 만들랴, 매장 정리하랴 바쁜 직원들 보면 선뜻 나서게 되지 않는다. 햄버거 브랜드마다 조금씩 다른 키오스크 앞에 설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이전 단계’, ‘취소’가 있지만 혹시 버튼을 잘못 누를까, 내가 원하는 햄버거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마흔 중반인 나도 이런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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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 중반의 집안 친척 어른이 언젠가부터 운전이 어렵다고 하시며 장거리를 뛸 때 나를 부르신다. 친척의 승용차를 운전해야 하니 일일 운전자보험을 인터넷으로 즉석에서 가입한다. 차량의 앞모습, 뒷모습, 좌우 옆모습의 사진을 등록하고 운전석에 앉으니 조수석에 앉은 친척 어른이 신기하다며 연신 감탄하신다. 그런 것도 다 있냐며, 세상 참 좋고 편리해졌다고 한다. 용인에서 강원도 화진포 해수욕장을 가는 세 시간 내내 네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며 너무 좋아하셨다.

 

얼마 전, 역시나 육십 중반의 어머니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간 일이 있었다. 대학병원이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대기’의 연속이다. 어머니의 순번을 받아들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사이 다른 대기 환자들의 모습을 자연스레 관찰했다. 제일 좋아 보인 모습은 나이 든 부부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챙겨주는 모습이었고, 그 다음으로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온 모습이었으며, 제일 안타깝고 쓸쓸했던 것은 혼자 병원을 배회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복도에 서 있던 한 할아버지는 약을 언제 드셨냐는 의사의 반복된 질문에 계속 딴말을 반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청기를 끼고 오지 않아 귀가 안 들리셨던 거다. 그래도 그 의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정말 친절하게 할아버지를 챙겼다.

 

인생은 그냥 시간과 함께 직진이다

 

키오스크에 ‘이전 단계’와 ‘취소’가 있지만 인생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냥 시간과 함께 직진이다. 내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당연히 주변도 나이가 들어간다. 마땅히 챙기고 살펴야 할 어른들이 많아진다. 그들의 셀프가 어려워짐을 느끼면서 내가 셀프가 가능한 나이가 언제까지인지 궁금해졌다. 친척 어른과 화진포를 다녀오며 중간에 휴게소에서도 쉬고 고갯길에서도 쉬고 내리막에서도 쉬니 마음이 한결 나아지기도 했다. 게다가 건강식인 황태국을 든든히 챙겨 먹으니 고민이 좀 덜어지기도 했다. 세상이 조금 천천히 변했으면 하는 건 내 욕심일까. 지금은 꾸역꾸역 시간을 따라가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 시간도 손 놓을 시기가 분명 오겠다 싶다. 그때까지 우선은 못 먹어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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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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