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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997년 <초·중등교육법>의 기구로 설치되기 시작한 국·공립·특수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라고 함)가 2년 뒤부터는 사립학교에도 설치되기 시작하여 현재 유치원을 비롯한 모든 학교에 설치되었다. 그 구성은 학교급마다 다소 차이를 두고 있지만 20여 년 넘게 이어온 학운위의 역사는 이제 한국교육의 제도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래에서는 주로 공립학교의 경우를 중심으로 언급하겠지만 학운위는 <초·중등교육법>에 의거하여 △학교헌장과 학칙의 제정 또는 개정, △학교의 예산안과 결산, △학교교육과정의 운영방법, △교과용 도서와 교육 자료의 선정, △교복ㆍ체육복ㆍ졸업앨범 등 학부모 경비 부담 사항, △정규학습시간 종료 후 또는 방학기간 중의 교육활동 및 수련활동, △학교운영지원비의 조성ㆍ운용 및 사용, △학교급식, △대학입학 특별전형 중 학교장 추천, △학교운영에 대한 제안 및 건의 사항, △그 밖에 대통령령이나 시ㆍ도의 조례로 정하는 사항 등을 심의한다. 특히 학운위는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인데 학교발전기금의 조성ㆍ운용 및 사용에 관한 사항도 심의·의결할 수 있다. 실로 대단한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학운위는 사실상 참여의 기회만 보장할 뿐 학교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옹호에 어떠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지는 않는다. 어떤 제도적 한계가 놓여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 제도의 도입 당시 논쟁이었던 내용들, 예를 들어 교원들이 구축하던 학교민주주의를 학부모의 소비자권리로 해체하려는 신자유의주의의 학교 전략 등을 여기에서 다시 곱씹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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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의 법정기구인 대학평의원회와는 달리 학운위에는 학교의 장이 교원으로 참여한다. 선출의 대상도 아니다. 교원위원은 교직원전체회의에서 무기명투표로 선출하도록 요구하면서도 교장은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운위의 당연직 교원위원이 된다. 그 여파는 교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함으로써 교원위원의 수가 한 명 축소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성 주류화 조치를 취하여 학칙이나 여러 규정을 비롯하여 학교정책 등에 성평등의 관점을 통합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가급적 교원위원이 대폭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다양해진 교원들의 가치가 학교 운영에 반영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교장이 당연직 위원이 됨으로써 그만큼의 수가 부족하게 된다. 더욱이 대체로 학운위의 안건을 사실상 발의하는 교장이 참여하여 개의 전 인사말을 비롯하여 안건마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피력하다 보면 교원위원의 자주적 입장을 보장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내가 초등 4년 동안 학부모위원과 지역위원, 고등학교 학운위 4년 동안 지역위원을 경험하면서 여러 차례 겪었던 일상이다. 무엇보다도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는, 다시 말해서 학교 행정의 집행자가 자신이 참여한 학운위의 심의사항을 스스로 집행하는 셈이다. 학운위가 의결기관이 아닌 한, 도저히 논리적이지도 않고 교육정치적으로도 옳지 않다. 교장과 교감이 법률상 교원의 분류에 포함되긴 하지만 심의기구로서의 학운위를 고러할 때 교장이 학운위의 당연직 교원위원이 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관련 규정을 개정하여 평교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현재 학운위에서 학생은 구성원이 아니다. 그저 참관하거나 의견수렴의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학운위에서도 학생을 구성원으로 하는 입법을 개정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운영위의 의결에 의거하여 ‘학생대표 등’이 참석할 수 있을 뿐이며 학운위의 안건에 관심 많은 개별 학생이 임의로 참석할 수 있도록 보장된 것이 아니다. 더욱이 의견청취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초·중등교육법>이 허용하는 의견의 대상은 △학교헌장과 학칙의 제정 또는 개정, △정규학습시간 종료 후 또는 방학기간 중의 교육활동 및 수련활동, △학교급식을 비롯하여 학생의 학교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사항으로 제한되어 있다. 또한 공립학교의 경우 시·도의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 대표가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련된 사항에 관하여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운영위원회에 제안하게 할 수 있는데, <경상남도립학교 운영위원회 운영 조례>를 보더라도 학생대표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건의하는 통로는 학생 설문조사, 학생회(대의원회), 그리고 학운위의 의결로써 정해놓은 방법에 한정된다. 도대체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방법으로써 자신들의 의견과 혜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학교자치의 정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초·중등교육법>이 학운위의 구성과 운영을 시·도의 조례에 위임하고 있으므로 교육감은 선제적으로 이를 활용하여 학운위를 학교민주주의의 기틀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공직선거법>이 선거권 보유연령을 18세로 조정하는 시대의 추세를 고려하면 만시지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한편 최근 조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대학평의원회도 그 구성단위를 확대하면서 대학민주화에 조금씩 기여하고 있는 만큼 행정실직원이나 공무직도 학운위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이제 모두가 학교의 주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여전히 교원이 그 중심이지만 그 공간의 전부를 차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공립학교에 두는 학운위의 구성과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시·도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되어 있으므로 학운위의 운영 등에 관해서는 교육감의 교육철학을 적절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어느 학운위도 학생의 인권과 그 옹호를 위한 조치를 규범화하는 데 어둡거나 매우 소극적이라는 데 있다. 물론 학교 자체의 생활규정이나 인권규정을 두고 그 개별 사안에서 매우 혁신적인 생활문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내 욕심이 이르는 곳은 <초·중등교육법>의 관련 규정이나 시·도 조례가 최고의 수준에서 학운위를 통제함으로써 각 지역에 걸맞는 학생인권의 규범을 형성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하였으면 하는 데 있다. 비록 벽에 막히더라도 그 고민이 깊어진다면 그 벽은 허물어질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새해의 소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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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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