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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Big Fish - 어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김정환( icomn@icomn.net) 2020.02.03 10:58

(빅피쉬 원작과 영화와 뮤지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안보셨으면 계속 안보실 확률이 높으니 괜찮고 또 이 이야기는 조금 내용을 알고 봐도 괜찮습니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다’와 같은 반전은 없으니까요.)

 

사람은 이야기를 만듭니다. 바위가 두 개 나란히 있으면 이를 형제바위라고 불러봅니다. 사실 그 바위는 그냥 바위일 뿐입니다. 화강암이거나 현무암이라는 바위의 속성을 이야기 하면 더욱 바위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름을 달리 붙인 바위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고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줍니다. 내리는 비가 특별할리 없습니다. 그냥 물이지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비는 슬픔의 상징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씻기는 기쁨의 의미가 됩니다. ‘추적추적’이라는 유명한 의태어는 그 자체로 비를 수식하며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삶의 많은 이야기들이 거짓말이자 진실입니다. 아니 사실 진실이라는 것도 어떤 현상의 일부분을 본 것일 뿐이지요. 저 바위는 현무암일 뿐이고 바위는 형제일 수 없으니 형제바위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누군가 이야기 한다면 그 사람이 너무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겠지요. 객관적 성상에 비추어서 거짓인 많은 것들이 마음 쓰임에 따라 진실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이고 우리 삶을 채워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야기는 사람을 만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에 하나의 우주입니다. 한 날 한 시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더라도 그 둘이 겪을 이야기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둘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똑같은 일을 겪어도 그 일은 각자에게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한사람의 하나의 행동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술로서 풍부해 진다는 것은 그 예술이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기 때문이고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에 새로운 감정을 더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빅피쉬_황수선화.jpg

 

 

여기 자신의 삶을 아들에게 이야기 해주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난 장면을 표현하며 주인공은 “시간이 멈추었어.”라고 합니다. 시간은 멈출 수 없습니다. 시간은 인간이 가진 모든 한계의 근원입니다. 하지만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에게 그 어떤 한 순간은 멈추었던 것이 진실입니다. 아이에게 너희 엄마를 처음 만난 순간을 설명하며 그 때 시간이 멈추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진부하고 뻔한 거짓말이지만 돌이켜 과거를 회상하는 에드워드 블룸에게는 진실인 순간입니다. 빅피쉬 이야기의 매력은 ‘시간이 멈춘 것’이 진실이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황수선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에드워드 블룸은 큰 황수선화 꽃다발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아이에게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 엄마가 볼 수 있는 그 모든 곳에 황수선화를 심어두었단다. 그녀와 나는 그 넓은 황수선화 꽃밭에서 이야기 나누고 황수선화 꽃밭을 뒹굴었지. 모든 곳에 황수선화가 있었어.” 빅피쉬의 그 유명한 황수선화 장면은 허풍이며 거짓임이 분명하지만, 황수선화를 좋아하던 누군가에게 그리고 그 이야기를 십수년 뒤 자기 아이에게 전해주는 에드워드 블룸 스스로의 입장에서도 진실인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황수선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빅피쉬 이야기는 책에서, 영화에서, 뮤지컬에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결국 허풍에 대한 이야기니 사실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아들이 태어나는 날에 대해서 원작인 책은 오번과 앨라배마 대학의 풋볼 경기에 대해 쓰고 있고 영화에서는 큰 물고기와 반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 어떤 이야기라도 좋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에드워드 블룸 입장에서 아들의 출산을 직접 곁에서 지키지 못한 미안함이 정말 컸겠지요. “네가 태어나는 날은 다른 날과 달리 특별했단다.”를 이야기 하는 버전이 달라질 뿐입니다. 영화에서 실제 아들의 출산을 도왔던 의사 선생님은 이야기 합니다. “네가 태어나는 날은 그냥 평범한 날이었고 너는 그냥 평범하게 태어났어. 그런데 나같아도 너희 아빠 이야기를 더 좋아할 것 같아.”라고 말이지요. 사실 모든 탄생은 특별하지만 또 특별하지 않습니다. 인연이 닿은 누군가에게는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세상에 아이들은 매일 태어나고 있습니다. ‘인연’이 닿으면 평범이 특별해지고 에드워드 블룸은 그 특별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블룸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인연에 이야기를 불어넣지요. “아들아 너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이고 네가 저 큰 세상에서 많은 일을 하길 바란다.”라는 이야기는 잔소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되면 달라집니다. “네가 태어나는 날은 처음으로 오번이 앨라배마를 이긴 날이고 네가 태어나는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를 잡고 있었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지요. 내가 얼마나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는지를. 빅피쉬 이야기는 가족과 인연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노년의 에드워드 블룸은 사실 자신이 바랐던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한 초라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때로는 가족에게 소홀하며 바깥 일을 챙기다가 후회를 하는 평범한 남편이었으며, 가까운 인연에 배신을 당해 젊은 날의 귀한 시간을 허송해 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노인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블룸은 자신만의 이야기로 자신이 마음을 쏟고 애정을 가졌던 인연에 대해 설명하며 하나뿐인 자신의 삶의 시간을 스스로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블룸이 진짜 마을의 영웅이었다는 것만큼은 에드워드 블룸이 직접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애쉬톤 시골 마을을 지키던 에드워드 블룸의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이 이야기 해주지요. ‘너희 아버지는 영웅이었어’지금까지의 모든 허풍스런 이야기가 영웅의 진실된 이야기가 되는 순간입니다.

 

결국 그의 장례식장에는 그가 소중하게 챙겼던 인연들이 모두 모이게 됩니다.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고 아들은 그제서야 알게 됩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큰 물고기였는지를. 빅피쉬 이야기는 장례식장에서 결국 빛을 발하지요. 결국 모든 끝은 죽음입니다. 빅피쉬 이야기는 시작부터 사실 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마녀의 눈에 비친 마지막 죽음의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과정이지요. 결국 에드워드 블룸의 죽음의 모습에 대한 것은 그의 아들의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모든 사람은 이야기로 남습니다. 존재가 부재하더라도 그 부재에 대한 이야기가 존재하며 사람이 세상에 남습니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고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연과 성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죽음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빅피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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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법학박사,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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