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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슬기로운 대화 생활

김수연( icomn@icomn.net) 2020.05.02 13:56

며칠 전, 온라인개학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고1 아들을 달래기 위해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블루투스로 아들의 스마트폰과 연결된 차 안에서는 모노의 ‘넌 언제나’가 첫 곡으로 흘러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대뜸 물었다. “어?! 너 이 노래 어떻게 알아?” 하니, 아들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나와.” 라며 알려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제목이다.  

 

세대 차이를 느낀 잠깐의 드라이브 

 

이어서 나온 드라마 삽입곡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원래 부른 가수가 누구냐 한참을 헤맸다. 조이, 럼블피쉬, 고호경에서 추억의 베이시스까지! 베이시스의 원곡이 나오자 “역시 원곡자의 노래가 최고지~!”하며 만족한 흥얼거림이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조수석에 앉은 아들은 “음~ 그렇긴 하네. 뭔가 그때 그 시절 특유의 맛이 있어.” 라며 수긍했다. 8090 노래 찾기가 재미있었는지 아들은 이어서 질문했다. “엄만 옛날에 무슨 노래 좋아했어?” 

 

우선 김건모의 ‘핑계’를 틀어보라고 했다. “오~ 김건모만이 낼 수 있는 음색!” 우린 서로 감탄했다. 그다음에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의 ‘처음 그 느낌처럼’을 말했다. 아들은 ‘핑계’는 알지만 ‘처음 그 느낌처럼’은 처음 들어보는 노래라고 했다. “너 그러면 공일오비 알아?” 라고 물었다. “공일오비? 그게 뭔데?” 아, 내가 학창시절 푹 빠졌던 공일오비를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구나. 당연했다. “윤종신이 객원으로 참여했던 그룹이야.” 공일오비의 여러 노래와 신해철, 장호일이 튀어나왔다.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 들어봐. 명곡이야.” 아들은 “그거 결혼식 축가야?” 음... 그랬다간 정말 큰일이다.  

 

윤종신으로 이어진 가수 찾기 릴레이는 패닉의 이적으로 이어졌다. “이적이라고 하면 ‘달팽이’지. 하지만 엄마는 ‘태엽장치 돌고래’를 더 좋아했어.” 하자, 아들은 “달팽이? 골뱅이? 그거 ‘처진 달팽이’ 맞지? 무한도전에 나왔던 그거.” 각자 이적을 기억하는 시점이 달랐다. 아들은 이어서 패닉의 김진표를 검색한다. “엄마, 김진표 하니까 국회의원이 나오는데? 누구야?”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세대 차이를 느꼈다. 아들과 십 년을 세 번 돌은 서른 살 차이니까 당연하겠다. 그럼에도 그 시간은 정말 재미있었다. 난 지난 추억에 잠기고 아들은 과거의 신문물(?)을 접하고. 그걸 왜 모르냐고 면박 주지 않고 내 말이 맞다고 우기지 않고 잘 모르면 물어보고 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선거 후의 지겹고 시끄러운 막말들 

 

선거가 끝났다. 각자의 입장이 어찌했든 결과는 명확하다. 내 주변 사람들 중 몇몇은 꼭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여당이 180석이나 차지했는지 모르겠다며 음모론을 대며 짜증을 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대구경북 아직 정신 못 차렸다며 멸시하고 조롱했다. 서로의 입장 차이, 시점 차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알아도 인정하기 싫고 반대의견은 듣기도 싫어한다. 그냥 자신의 말만 맞다고 큰소리 내서 우긴다. 듣기 거북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난무하는 게 정치고 사회라고 생각하면 뭐 그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싶다.  

 

요즘 자기 말만 늘어놓는 사람을 일부러 기피하고 있다. 대화라는 게 서로 듣고 말하고 핑퐁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 자리에 가나 자기 말만 하기 바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굳이 애써 내 시간과 노력을 써가며 그 자리에 있고 싶지는 않더라. 나와 다른 타인의 시점을 뭉개고 약 올리는 것을 ‘농담’과 ‘유머’라는 포장으로 센스있는 척하는 사람도 싫다. 진득한 존중과 묵묵한 경청이 있는 자리를 좋아한다. 아들이 즐겨보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슬기로운 대화 생활’이 점점 많아지는 사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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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슬기로운 의사생활,tv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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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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