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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나의 국가보안법 이야기 1

황의선( icomn@icomn.net) 2020.05.18 10:53

나는 지금도 대우자동차의 에스페로 디자인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 에스페로는 생산되었는데 한번도 운전을 해보거나 옆자리에 얻어타 볼 기회가 없었다.

드디어 좋아하던 에스페로를 타 볼 기회가 왔는데 그게 기무사에 끌려가던 날이었다

제대 한달 남겨두고 말년 휴가 가기 전 마지막 정기 외박을 나가던 날.

중대장에게 신고하려고 중대본부에 갔는데 근무지원단장실로 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왜지? 싶었지만 일단 가야지 별 수 있나

단장실에 들어가 경례를 하니 사복 차림의 한 아저씨가 "이제부터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불리한 증언을 안할 수 있어" 라는 말을 사무적으로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대령인 지원단장이 "쟤야?" 그랬다.

다른 아저씨가 "그럼 데려가겠습니다" 그러더니 다가와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대기중이던 에스페로(희망) 뒷자리에 태웠다.

흔히 TV에 보던 그 모습 - 양 옆에 수사관이 타고 나는 수갑을 찬 채 가운데 앉은 - 으로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한 5분 쯤 가니 머리에 검은 두건을 씌웠다.

나중에 알았지만 지금 용산우체국 뒤 602 즉 서울지역 기무대로 가게 되었다.

외박 날이어서 그날 점심 약속도 있었고 저녁에는 남동생도 만나기로 했었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다들 왜 내가 안 올까하며 기다리다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검은 두건을 머리에 덮힌 채 끌려가고 있지만 바깥 세상은 평온했다.

나는 지금 어둠 속에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겠는데 신호 대기중에 옆 차로 버스는 일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저 웃고 이야기하며 편안한 표정으로 제 볼일을 볼 것이었다.

 

기무대 조사실로 들어가니

내가 상상하던 딱 그모습이었다.

 

욕조가 있고 수세식 좌변기가 있고 가운데 두명이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책상과 그 위를 비추는 둥근 갓의 전등.

첫 느낌은 '무섭다!'

 

그리고 명령이 떨어졌다.

 

"옷 전부 탈의한다."

 

런닝과 팬티만 남기고 다 벗자. 수사관 3명은 코웃음을 치고는 "이 자식봐라. 다 벗어"

결국 다 벗었다.

 

그리고는 얼차려....

한 20분 지났을까 옷을 입으라고 하고 책상에 앉으라고 하고서는 수사관  모두 나갔다.

 

그리고 몇시간째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중간에 식판에 밥이 들어왔었을 뿐.

지금이 몇시인지 밖의 풍경이 어떠한 지 알 수 없었다.

 

얼추 밤이 되었다 싶을 때 모나미 볼펜과 갱지를 주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것들을 물었다. 이름 본적 등등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구속 1일차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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