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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돈줄이 말랐다" 범죄조직도 못 피한 코로나 '뉴노멀'

[멕시코의 코로나 그후] 수도 경찰청장까지 피습하며 건재 과시하는 카르텔

림수진( icomn@icomn.net) 2020.07.05 16:53

6월 22일 월요일
마약 카르텔 두목의 선전포고


위협으로 시작된 한 주였다. 6월 22일 월요일, 멕시코 과나후아토 주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산타 로사 데 리마'라는 이름의 범죄조직 카르텔 두목인 엘 마로(본명 호세 안토니오 예페즈)의 메시지가 공중파 뉴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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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멕시코 과나후아토 주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산타 로사 데 리마" 카르텔 두목인 엘 마로.)


내용인 즉, 지난 주말 멕시코 육군, 국가방위군, 경찰이 연합해 실시한 작전 중 체포된 자신의 가족을 반드시 구출하겠다는 것과 정부에 대한 협박이었다. 카르텔 두목이 직접 동영상에 출현해 눈물까지 보이면서 정부에 보복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을 향해 "당신 신발 속의 돌이 되겠다"는 협박이 공개됨과 동시에 거점 도시 셀라야를 중심으로 시내 곳곳에서 차량과 상점 방화가 잇따랐다.

 

작은 돌이라도 막상 신발 속에서는 매우 거슬리고 고통까지 줄 수 있기에, 멕시코에서는 주로 해결되지 않는 골칫거리를 이를 때 쓰는 표현이다. 셀라야 인근 지역은 멕시코 국영 석유공사의 정유 플랜트가 들어선 곳으로 정부는 즉각 군 병력을 증원 투입하고 주변의 정유산업 시설 보호에 나섰다. 단지의 모든 출구가 봉쇄되었고, 군병력 감시 하에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이날 역시 멕시코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와 그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여전히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이 비극은 엘 마로가 공개한 동영상과 과나후아토 주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발생한 테러, 그리고 팽팽한 긴장이 감지되는 군사작전 속에 묻혀버렸다.

카르텔 조직과 정부군이 무력 충돌하는 장면이 멕시코에서 일상이듯, 코로나바이러스 감염과 사망 소식 또한 이젠 일상의 범주에 들어와 늦은 밤 뉴스 한 켠에 있는 듯 없는 듯 소개되었다. 이 날 하루, 멕시코에서는 5077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759명이 사망했다.

6월 23일 화요일
진도 7.5의 강진이 덮치다

 

오전 10시 29분, 모든 것이 흔들렸다.

리히터 규모 7.5의 강진. 진앙지는 멕시코 서부 오아하카 주 해상으로부터 12km 지점이었다. 수도 멕시코시티 거리 곳곳에 설치된 지진 경보기에서는 100데시벨의 굉음이 울려댔다. 거리의 나무들과 전봇대들이 춤을 췄으며 좌우로 흔들리던 건물에서는 외벽이 마치 종이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곳곳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이들이 목격되었다. 이미 여러 차례 지진을 겪어 본 사람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공포였다. 채 1분이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막상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그 흔들림이 영원할 것 같은 극심한 절망과 공포, 그런 감정들이 순식간에 밀려온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보건당국의 당부에 따라 '자택 대피'를 하던 중 발생한 재해였다. 급하게 뛰어나오는 사람들 상당수가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속보를 전하면서도 병원을 걱정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 병원이란 곳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야 하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진이라면, 모두가 다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하는 지진이라면, 꽁꽁 차단된 병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먼저 일었다.

2008년 만들어진 '지진 시 병원 대피 프로토콜'에 따르면, 지진이라도 환자와 의료진은 병원에 머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제외한 곳의 의료진과 환자는 늘 대피가 우선이었다. 이날도 환자들은 침대에 실린 채로, 혹은 휠체어에 태워진 채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병원 건물을 빠져나왔다. 신생아들도 대피 대열에 합류했다.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들, 그리고 이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이었다.

멕시코에서 코로나19로 병원에 입원할 정도면 상당한 중환자다. 때문에 이들이 대피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막상 지진이 발생하자 병원마다 서로 다른 대피 양상을 보였다. 환자는 병원에 둔 채 일단 의료진만이라도 대피가 이루어진 곳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병원에서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 대피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병원에 머무르기도 했다. 반대로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와 의료진이 함께 병원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주로 사설병원들이 코로나 환자를 적극 대피시켰다. 멕시코시티와 접한 멕시코 주의 한 병원에서는 밖으로 대피한 의료진과 환자들이 코로나 환자와 함께 병원 안에 남은 의료진을 향해 밖에서 박수로 응원하기도 했다. 혹여 지진이 계속되거나 강한 여진이 올 경우 건물이 붕괴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환자들 곁에 남은 의료진을 향한 박수였다. 건물 외벽이 터지고 갈라지는 지진 와중에 환자 곁에 남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였을 것이다. 

사망자는 총 7명. 이날 지진이 리히터 규모 7.5도였음을 감안하면, 다행히 피해는 적은 편이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여진이었다. 1985년 대지진으로 1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바 있고, 최근 2017년에도 500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멕시코시티에서 지진은 여전히 불가항력의 트라우마다. 다행히 큰 여진은 없었지만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쉽게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거리로 나선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여진을 대비해서 시민들에게 집 밖에 머물 것을 당부했고, 클라우디아 쉐인바움 멕시코시티 시장은 가장 먼저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병원은 없다"는 사실을 발표해 불안을 잠재웠다. 멕시코시티 경찰청장 오마르 가르시아는 헬기와 드론을 띄워 피해 상황을 접수했다. 또 63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거리 질서를 유지하고 방송을 통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에 있는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이날 하루 동안 6288명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자와 79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지진 뉴스에 묻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갔다.

6월 24일 수요일~25일 목요일
코로나 치명률 12%와 5.5도의 여진 사이

 

6월 25일 이날, 멕시코 코로나바이러스 누적 확진자 수는 20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 수는 2만5060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치명률은 12%를 넘어섰다. 보건당국은 재래시장이나 슈퍼마켓에는 가족 중 한 명만 갈 것을 당부했고, 다시 한번 안전한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그리고 자정이 되기 전, 이날 하루 3184회의 여진이 발생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 중 강도가 가장 센 여진은 리히터 규모 5.5도였다.

6월 26일 금요일
마약 카르텔의 습격 1부


금요일 아침은 뉴스 속보로 시작됐다. 바로 멕시코시티 치안장관(경찰청장) 오마르 가르시아의 피습 소식이었다.

이날 아침 여섯시 반 오마르 경찰청장이 탄 차량을 3.5톤 트럭이 막아섰고, 동시에 차량 네 대가 경찰청장 차량을 둘러싸고 무차별 총격을 해댔다. 경찰청장 차 뒤로 경호차량 한 대가 따랐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알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괴한들이 사용한 화기 중에는 최고 살상력을 가진 50구경 대물저격총(Barret-50)이 포함돼 있었고 이들은 모두 자동 연발 화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채 1분이 되지 않아 경찰청장 경호팀의 긴급 지원요청을 받은 무장경찰이 도착했고, 이들 간의 총격전이 2분여 계속되었다. 이후 새로운 무장경찰 지원팀이 도착하고 나서야 괴한들은 퇴각했고 그렇게 3분여의 총격전은 소강됐다. 경찰청장은 총알 세 발을 맞긴 했지만, 병원으로 이송돼 목숨을 건졌다. 다만, 경호실장과 경호원 한 명, 그리고 마침 현장을 지나던 시민 한 명이 사망했다. 부상 당한 경찰도 속출했지만 괴한들 가운데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

괴한 28명 중 12명이 현장 주변에서 체포되었다. 더불어 그들이 버리고 간 차량에서 5정의 대물저격총과 40정의 자동 연발 소총, 그리고 대전차 로켓포가 수거되었다. 이 외에도 39개의 방탄조끼와 7개의 수류탄, 96개의 탄창과 3000여 발에 가까운 탄환이 압수되었다. 현장 바닥에서 발견된 탄피만 해도 414개에 달했다. 현장으로부터 수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유탄이 날아들었다. 가정집뿐 아니라 식당이나 기숙사에도 쏟아져 들어와 유리나 벽에 박혔다.

사실, 괴한들이 사용한 무기의 살상력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기는 하나, 멕시코 시민들이라면 이 정도 수준의 화기에 어지간히 익숙해져 있다. 마약 원료나 완성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대륙간 잠수정을 이용하기도 하고 대전차 로켓포(RPG-7)로 정부군 헬기를 격추시키는 일이 이미 수년 전부터 공공연했다. 때문에 이번 경찰청장을 피습하는 데 사용된 무기가 가공할 만한 수준일 수는 있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런 멕시코인들이 이번 사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이유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 때문이었다. 경찰청장이 피습을 당한 '로마 데 챠풀테펙(Loma de Chapultepec)'은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도 가장 부유한 거주지이면서 각국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다. 게다가 괴한들의 트럭이 경찰청장의 차를 막아선 곳은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중심 도로인 '개혁의 거리(Avenida Paseo de la Reforma)'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 앞 세종로 정도에 해당한다.

그간 주지사나 국회의원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과 사회 주요 인사들이 마약 카르텔과의 갈등 속에서 피살되었지만, 대부분 지방 도시에 해당되는 사건들이었다. 멕시코에서 수도가 아닌 지역에서는 공권력과 마약 카르텔이 늘 첨예하게 대립했고 상당수 경우 마약 카르텔이 공권력에 우선해 패권을 점하는 게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마약 카르텔과 충돌 속에서 오히려 공권력이 밀려 퇴각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양 측의 충돌 과정이 실시간 중계되고 공권력이 퇴각하거나 밀리는 상황을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이 동영상으로 찍어 공개해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면서 공권력에 이미 심각한 손상이 있던 참이었다. 반면 군 병력의 화기를 능가하는 무장력에 기반한 마약 카르텔의 잔인함과 파괴력은 갈수록 거세졌다. 물론 이런 일들은 대부분 지방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지방이 아닌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일어났고, 피습 상대가 멕시코시티의 경찰 수장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수도 멕시코시티는 멕시코에서도 가장 치밀하게 공권력 배치가 이루어지고 CCTV 같은 감시 시스템이 비교적 철저한 곳이다. 때문에 마약 카르텔 조직들도 섣불리 멕시코시티에서는 공권력과 무력 충돌하는 작전을 감행하기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 도시가 워낙 방대해 작전 후 탈출과 은신 또한 쉽지 않아, 멕시코 전역에서 그토록 많은 폭력이 자행되는 동안에도 멕시코시티는 지금까지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다. 지방에서 흔히 발생하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수십 구의 시체가 발견되거나 최고 살상무기가 동원된 무력 충돌이 멕시코시티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난 금요일 새벽에 발생한 멕시코시티에서의 총격전은 가히 놀라울 만한 일이었다.

마약 카르텔의 습격 2부

 

보도에 따르면, 괴한들은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artel de Jalisco Nueva Generación, 아래 CJNG) 소속이었다. CJNG는 멕시코 서부 지역에 근거지를 둔 마약 카르텔로, 신생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멕시코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갖추고 있다. 이미 그 시작부터 고전적 마약이라 할 수 있는 코카인의 제조와 판매를 장악했고, 원료를 공급하는 남미의 콜롬비아, 볼리비아, 페루 등의 코카인 생산 조직도 통제해왔다. 또 2013년 이후에는 중국 조직과 긴밀히 연결돼 코카인이나 헤로인에 비해 훨씬 강력하고 파괴력 또한 강한 인공 아편(Fentanyl, 펜타닐)의 생산과 유통에도 관여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시장은 미국으로 뉴욕, 시카고, LA 등 대도시를 거점으로 미국 전역에 조직이 뻗어 있다. 미국 법무부 산하 마약단속국도 이미 CJNG에 대해 중동의 어느 테러 조직보다 훨씬 더 위험한 폭력집단으로 규정하고 두목인 엘 멘초(본명 네메시오 오세게라 세르반테스)에 대해서는 미화 1천만 달러에 달하는 현상금을 걸었다.

신생 조직으로 멕시코 내 마약 카르텔의 우두머리에 오르기까지 행사된 폭력의 잔인함으로 이미 멕시코 정부와는 대립 관계가 된 지 오래다. 양측의 갈등이 첨예화된 것은 멕시코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엘 멘초의 아들이 미국으로 송환되면서부터다.

 

엘 멘초의 아들 엘 멘치토(본명 루벤 오세구에라 곤잘레스)는 살인, 인신매매, 대량 살상 무기 소지, 마약 유통, 돈세탁 등의 죄목으로 2015년 멕시코에서 체포돼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2020년 2월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따라 미국에 넘겨졌다. 지난 5년간 CJNG 측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엘 멘치토의 미국 송환을 막기 위해 항소했지만 멕시코연방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실제로 지난 2월 엘 멘치토가 미국으로 인도된 이후 CJNG의 대정부 폭력 양상은 더욱 잔인해졌다.

지난 금요일 멕시코시티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 열흘 전, 6월 16일 멕시코 서부 콜리마 주에서 엘 멘초 아들의 항소 기각에 참여한 연방판사가 대낮 시내 한복판에서 부인과 함께 총에 맞아 피살되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 판결 이후 신변 보호를 위해 다른 주로 근무지를 바꿨지만 비극을 막을 수 없었다. CJNG는 즉각적으로 자기들의 소행임을 밝혔다. 멕시코시티 경찰청장을 필두로 멕시코 연방 치안장관, 금융정보분석원장, 외교부장관에게 CJNG의 살해 위협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피습에 대해 CJNG의 멕시코 최고 공권력, 즉 대통령에 대한 위협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피습 후 수술을 마치고 나온 경찰청장은 CJNG를 향해 그들의 비겁한 공격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의 테러 또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대통령도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자를 끝까지 추적해 응징하겠다고 공언했다. 

카르텔의 '뉴노멀'

 

또 다른 일각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등장 이후 마약 재료의 유통과 판매가 어려워진 CJNG의 폭력성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펜타닐의 경우 상당량이 중국에서 만들어져 들어오고 CJNG가 멕시코와 미국 유통을 담당하는 식이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중국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그곳으로부터의 '물자' 수급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콜롬비아, 볼리비아, 페루 등에서 원료를 받고 멕시코에서 제조돼 미국으로 올라가는 헤로인이나 코카인도 미국이 멕시코 접경 국경을 폐쇄하면서 접근이 차단됐다. 게다가 멕시코 자국내 소비지였던 나이트클럽 같은 유흥업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임시폐쇄돼 국내 유통도 여의치 않아졌다. 

굳이 마약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자금 조달 방식으로 횡행했던 불법 상품의 대규모 밀수도 세계 각국의 국경 폐쇄와 함께 들고 나는 길이 막힌 상황이니 이 또한 코로나 시대 멕시코 카르텔이 직면한, 결코 쉽지 않은 '뉴노멀'의 한 단면이다. 마약 운반에 자체적으로 잠수정이나 항공기를 이용하고 이를 방해하는 정부군 항공기는 가차없이 대전차 로켓포를 쏘아 격추해 버리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맹위도 전대미문의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는 주춤하는 형세다.

경찰청장이 피습된 날, 멕시코 중부 내륙 사카테카스 주의 연방 국도에서 14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국도나 고속도로 주변에서 발견되는 십여 구 이상의 시체들은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단골 뉴스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때로는 도심 한 복판 고가도로 아래에 여러 구의 시체가 내걸리는, 잔인하다 못해 차라리 참담한 뉴스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는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상대 조직에게 세력을 과시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토록 잔인한 폭력을 끊임없이 행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국가 공권력에 대한 조롱이라고 할 수 있다. 고속도로 주변에 십여 구 이상의 시체를 유기하거나 도심 한복판 고가도로 아래 시체를 매다는 그 일은 매수 혹은 협박에 의한 공권력의 조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당신들이 행하는 작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정부를 향한 멸시이자 조롱이다.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범인을 잡긴 어렵겠지만, 그 주 월요일 경찰과 군인들의 합동작전 와중에 잡혀간 가족들에 대해 눈물을 흘려가며 분노를 표하던 산타 로사 데 리마 카르텔의 두목 엘 마로의 소행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멕시코 대통령에게 '당신 신발 속의 돌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끝까지 괴롭히겠다는 뜻을 피력했고 불과 며칠 후 그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14구의 시체가 국도변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극악무도한 범죄도 같은날 벌어진 멕시코시티 경찰청장 피습 건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잠깐 뉴스에 머물다 사라졌을 뿐이다.

그렇게, 지난 한 주는 코로나바이러스 뉴스 또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들이 많았다. 경찰청장이 피습 당하고 14구의 시체가 발견된 지난 금요일 하루 멕시코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5441명 늘었고, 사망자는 719명 증가했다.

*** 오마이뉴스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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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Lim, Su Jin),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

(Facultad de Ciencias Políticas y Sociales, Universidad de Colima)

 

일곱 살 먹던 해 겨울, 할머니를 따라 서울에 갔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역 광장에 단아하게 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울역사 앞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각인이었습니다. 이후 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였습니다. 결국, 이다음에 크면 반드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진 못하였습니다. 대신, 지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핑계 삼아 원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 서른 살이 되던 2001년, 코스타리카로 갔습니다. 19세기 말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의 증손자 쯤으로 신분을 둘러대고 커피밭에 ‘위장취업’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커피를 따면서 3년을 보냈습니다.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는 저 ‘불량노동자’를 걱정하며 자신들이 딴 커피와 음식과 마음을 나눠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이 니카라과에서 건너온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의 삶을 좇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이후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주’, ‘국제분쟁’, ‘지정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0년 이후 멕시코 연방정부 고등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가연구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 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21세기 중앙아메리카의 단면들:내전과 독재의 상흔>, <세계의 분쟁(공저)>, <디코딩라틴아메리카: 20개의 코드(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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