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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고장 사월은 <분노의 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새벽바다의 영화읽기] 서부영화 전설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

새벽바다 시골잡학덕후( jbchamsori@gmail.com) 2015.04.16 11:01

어렸을 적 서부영화 보고 좋아했던 남자들이 제법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아마도 서부영화 장르의 공식이 우리나라의 남성적 가부장 문화에 가깝기 때문이었을까? 선의를 가진 백인들이 서부를 개척하고, 이를 위협하는 무법자들이나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들의 위협이 이어지고, 이에 맞서 법 또는 정의를 지키는 용감한 백인 주인공이 활약하고, 마을에 평화를 선사하고 고독하게 떠나는 그의 뒷모습으로 끝나는 이 공식 때문에 이었으리라.


아무튼 이 백인 남성 중심의 장르는 미국의 상징이라고도 불린다는 것에 그리고 그 대표적 감독은 존 포드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존 포드는 엄청난 마초에, 사디스트, 그리고 싸이코로 유명했다고 한다. 대표적 일화 중에 남성성의 대명사 존 웨인이 존 포드 영화 촬영 중에 하도 욕을 먹어서 자주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돈 빌리러 온 배우에게 면박 주고 싸워 놓고, 나중에 따로 돈을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영화의 내용도 마초고, 실제 그의 삶도 마초 그 자체였다. 전쟁을 좋아해서 직접 전쟁터에 갔고, 또 전쟁이 좋아서 전쟁 영화를 찍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의 영화에서는 당대의 최고 배우였던 존 웨인, 헨리 폰다와 같은 백인 남성 배우가 주로 주연을 맡는 게 당연했고, 그가 주류 영화계의 상징인 아카데미 감독상을 4회나 수상했다는 점은 영화계에서 그의 위상을 바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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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 포스터


마초 존 포드 감독이 만든 미생, <분노의 포도>


그런 그가 <수색자>를 내놓았을 때 반응은 어땠을까? 이 영화는 원주민이 데려간 조카를 찾으러 떠나는 백인 주인공이 원주민과 동화된 조카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백인의 배타적 분노와 그 분노에 상응하는 원주민들의 분노가 비슷해 보이게 하고, 복수 후에 남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에 초라해진 뒷모습만을 보여준다. 이런 내용은 과거 자신의 작품을 비판하고 수정하며 백인 남성들의 시각 전환을 의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어떻게 “싸이코 사디스트 마초 존 포드”가 이런 용기 있는 또는 진보적 결단을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었을까? 대답을 고민하던 중 떠오른 영화가 <분노의 포도>였다.


1942년 작품인 이 영화는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아카데미 감독상과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 농촌의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날카롭게 그 원인을 고발하는 대담함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희망을 찾아 트럭 한 대에 살림살이를 싣고 서부로 이동하는 톰 조우드 일가족의 여정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과 양극화 등의 문제를 드러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목사로 목회 활동을 관두고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케이시, 그에게 영향을 받고 민중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는 전과자 톰 조우드 그리고 강한 모성애와 생활력을 지닌 어머니 등의 캐릭터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면서 감동을 전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감동을 주는 대사 중 딱 2개만 소개한다. 첫 번째, 영화의 거의 끝 부분에 경찰에 쫓기는 톰 조우드가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몰래 도망치려 할 때, 아직 잠들지 않았던 어머니에게 들키는 장면이 있다. 어머니가 어디로 가느냐고, 소식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이에 답하는 톰의 대사는 정말 가슴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톰: “음, 어쩌면 케이시가 말한 거랑 비슷해. 어떤 사람은 그 자신만의 영혼을 가질 수 없고 큰 영혼의 일부만 가진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큰 하나의 영혼 말이야. 그리고.”
엄마: “그리고 뭐, 톰?”
톰: “그러면 아무 상관없어. 그렇게 되면 난 모든 어둠 속에 있을 거야. 난 어디나, 엄마가 쳐다보는 어디나 있을 거야.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싸우는 곳에, 난 있을 거야. 경찰들이 사람들을 때리는 곳에도 난 있을 거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화가 나서 함성을 지르는 곳에 있을 거야. 우리 사람들이 기른 것을 먹을 때, 그 사람들이 지은 집에서 살 때, 난 거기에도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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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 한 장면


두 번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톰 조우드는 경찰에 쫓겨 도망가고,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은 톰에서 어머니로 바뀌고 어머니는 긴 여정 속에서 절망에 빠져 힘을 잃고 조수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강한 거여. 부자 놈들은 태어나고 또 죽고 하잖아, 부자 자식 놈들도 다를 거 없어. 걔들도 다 죽어 없어져. 근데 우리는 계속 나오는 거여. 우리가 살아있는 사람들이랑께. 아무도 우리를 없앨 순 없는 거여. 아무도 우릴 이길 순 없다고. 우린 영원히 계속 이어진다 그 말이여, 애들 아버지. 우리가 진짜 사람인 것이여.”


이제 다시 물어보자. 엄청난 마초에 백인 우월주의 의식이 박혀있는 인물이, 어떻게, <분노의 포도>와 같은 작품, 다시 말해 여성과 소외된 민중의 정체성에 대해 대담하게 선언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로는 “빨갱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또 어떻게 자신의 과거 작품을 비판한 수정주의 서부극의 걸작 <수색자>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영화의 대담함은 존 스타인벡의 원작소설의 힘에 기댄 측면이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제작자의 권유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하지만 소설과는 다른 느낌의 육체성을 가진 헨리 폰다의 입에서 나오는 그 대사, 제인 다웰이 분한 엄마의 그 대사는 좀 더 날 것의 힘이 있다. 약간 마초적인 그 무엇이 뭔가 다른 방식으로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전복적 힘은 아마도 자신만의 조그만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에 나온 것 같다.


매카시즘 광풍 앞에서 쫄지 않았던 존 포드 감독


진짜 마초는 맞을지언정 힘센 놈에게도 센 척한다. 힘이 없어도 여자 앞에서, 자식들 앞에서 센 척한다. 그러나 이 원칙을 지키면 진짜 마초를 넘어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센 척이 진짜 센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사기꾼이 사기를 치려면 진정성 있게 보이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 진정성을 추구하다 보면 사기꾼이 더는 사기 칠 수 없게 되는, 진짜 진정성을 알게 되는 그런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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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 한 장면



아마도 존 포드는 그 원칙을 지킨 마초가 아닐까 싶다. 존 포드의 관점에서 말해보면, 센 척하면서 약자를 보호하는 영웅을 그리고 싶었고 자신도 그런 영웅이 되고 싶었는데, 영화를 찍다 보니 백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다는 걸 또 그렇게 문명화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라도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주류와 대결까지 하게 되는 형국에 이른다. 결국, 그는 주류 백인들에게 비판의 시선을 들이댔다. 일례로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존 포드의 스태프 중에서 공산주의자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배제, 고발하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그는 거절하고, 심지어 “개소리들 하지 마”라고 했다. 그는 영웅은 아니었지만 제법 괜찮았던 아저씨였다.


기만적인 권력에 “개소리 하지 마” 한 마디 할 수 있는 용기


4월이다. 4.3사건, 4.16 참사, 4.19 혁명이 있었던 달이다. 이 모든 역사에는 민중의 아픔이 새겨져 있다. 이 역사를 외면해 온 많은 사람 중에 나도 있다.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서 분노한척 했고, 센 척하면서 목소리를 높여봤지만, 실제로는 먹고사니즘(먹고 사는 게 바빠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이르는 속어)을 이유로 진짜 분노한 적이 없는 소시민 아저씨다. 그런데 아는 척하고 또 센 척하려다 보니 조금씩 알게 되었다.


주류 사회의 기만을. 먹고사니즘이 진짜 먹고 사는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경쟁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능력주의에 담긴 불평등을, 안전을 위해 가만히 있으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복지를 가장해 가난함을 죄로 만든다는 것을 나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작은 원칙을 가지고 조금 용기를 내면, 민주주의는 몰라도 먹고사는 문제는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소심한(?) 용기가 생긴다. 나와 같은 소시민 아저씨도 존 포드처럼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일에 세심하게 진보적일 수 없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자식새끼”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또 가난을 증명하지 않고서도 밥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일에는 센 척할 수 있겠다. 그리고 기만적인 주류 질서에 “개소리들 하지 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김수영 시인은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라는 시에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중략)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라고 자조했다. 나는 김수영 시인의 성찰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이 정도는 말하고 싶다. 조그만 내 가족 일에도 분노하지 못하는 내가 진짜 아저씨냐고.


이 글은 내 작은 분노의 발로다. 이 말에 동의하는 아저씨들은 “내 고장 사월은 <분노의 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을 주변에 퍼드려 주시라. 영화 <분노의 포도>를 한 번 보시고 조금이라도 분노하시면 댓글 달아 주시고 이 글을 막 퍼뜨려 주시라 부탁드린다.


아니면 이 말도 좋다. “개소리들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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