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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애인도 놀이기구 타고 싶소

어떤 준비서면의 서론

김정환( icomn@icomn.net) 2019.06.04 16:21

장애인은 더 위험한 존재가 아니며 남에게 더 큰 위험을 가져오는 존재도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이 당연함을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데 거부당했다며 장애인차별상담전화(1577-1330)의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2013년이었다. 오랜 기간의 다툼 끝에 2018년 제1심 법원은 에버랜드 측에 시각장애인 탑승 제한을 규정한 자체 가이드북 내용을 시정하라고 명령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적극적 구제조치였다. 그러나 에버랜드는 이에 항소하여 2019년 5월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삼성물산 에버랜드와 장애인들의 놀이기구 탑승 소송 항소심 제1회 변론기일이 다시 열렸다.

 

필자는 시각장애인분들의 항소심 대리인으로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1심에서 활약하신 김재왕, 최현정 변호사님과 장애인 인권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는 김예원 변호사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 소송의 구체적 요건사실에 대해 변호사님들의 서면을 보고 정말 많이 배웠다.

 

소송대리인단 회의에서 필자에게 에버랜드의 항소이유서에 대한 답변이자 준비서면(변론에서 하고자 하는 진술사항을 기일 전에 예고적으로 기재해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의 서론을 맡겨주셔서 아래와 같이 작성해 보았다.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사람이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권리. 이것은 장애를 이유로 거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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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에버랜드가 사회복지인을 초청하는 이벤트를 한 적도 있었다. 사진은 에버랜드에서 이솝빌리지(좌), 동물테마파크(가운데), 눈썰매장(오른쪽), 출처 : 오마이뉴스)

 

준 비 서 면

 

사 건 2018나000000

원고(피항소인) 김00 외 2

피고(항 소 인) 삼성물산 주식회사

 

위 사건에 관하여 원고 소송대리인은 다음과 같이 변론을 준비합니다.

 

다 음

 

1. 들어가며

 

차별이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연하게 인정되는 권리들도 역사적으로는 오랜 시간 편견에 맞서 싸워 이루어낸 것들입니다. 법의 발전은 “권리 확장의 역사”였으며,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며 사람과 사람이 공존하도록 하는 역사였습니다.

 

누구나 여성의 몸에서 태어나지만 남성은 여성을 차별해 왔습니다. 누구나 아동기를 거치지만 아동을 차별하고 학대했었습니다. 여성이 열등하기에 투표권을 줄 수 없다는 논쟁이 있었던 것이 불과 70여년 전 입니다(1944년 프랑스 여성 투표권 인정). 가정에서 아동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학대로 인정된 것은 더 짧은 역사를 가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도 여성이 열등하다고 하지 않으며 아동을 학대하여도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한 사회의 문명의 성숙은 늘 그러한 편견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편견을 고수하는 사람들에 대항하고 평등과 공존의 원칙을 천명하기 위하여 국가는 ‘법’을 만들어 왔습니다.

 

‘장애’도 많은 편견과 싸워 온 분야입니다. 장애인은 열등하다는 편견, 위험하다는 편견 등 수많은 편견에 맞서 싸워온 분야입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지만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편견으로 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사회는 장애분야에서도 많은 성숙을 이루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2008년 4월에는 드디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이라 합니다)이 시행됩니다.

 

원고들 (피항소인들, 이하 ‘원고들’이라 합니다)은 시각장애인들입니다. 원고들은 피고가 운영하는 놀이시설의 놀이기구를 타고자 했다가 거부당한 당사자인 장애인들입니다. 원고들은 피고의 행위가 차별이라는 점을 주장하였고 오랜 기간의 다툼 끝에 2018. 10. 11.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7민사부 2015가합553445 판결(이하 ‘원심’이라 합니다)을 통하여 그 행위가 차별임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원고들은 또 다시 ‘장애인 차별’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우리가 약속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피고가 항소하였기 때문이며 피고가 다시금 피고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위험’과 ‘안전’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이기구는 본질이 ‘위험을 즐기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회전목마도 위험하다 여겨 회피하지만 누군가는 티익스프레스의 위험도 즐거움의 대상이라 여깁니다. 이 차이는 장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개인적 선호에서 오는 것입니다. 놀이기구는 본질이 ‘위험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위험을 느끼지만 탑승자가 진짜 위험에 처하여서는 안됩니다. 이는 놀이기구의 설계와 운영에 있어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안전해야 합니다. 어떤 놀이기구가 장애인 탑승자에게 위험하다면 그것은 비장애인 탑승자에게도 위험합니다.

 

원고는 장애인이 더 위험할 것이라는, 장애인이 타인에게 위험을 가져올 것이라는 피고의 편견이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 따른 ‘벗어나지 못한 편견’일 뿐이라는 것도 압니다. 아무쪼록 원고들은 본 항소심을 통하여 우리 사회가 합의한 장애인차별금지에 대한 원론적 내용이 다시 한 번 확인받기를 바랍니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이 판결을 통해 더욱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장애인은 더 위험한 존재가 아니며 남에게 더 큰 위험을 가져오는 존재도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이 당연함을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2. 피고주장의 요지 :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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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 법학박사,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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