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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잔나비 엄마의 변신

시댁과의 불화와 남편 일이 어떻더라 논하기 바빴던 엄마들이 이제는 ‘자기 자유’와 ‘자기 행복’을 이야기한다.

김수연( icomn@icomn.net) 2019.06.08 11:00

모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현재 얼굴을 내비치는 모임은 딱 두 개다. 하나는 사회적 기업을 돕는 자발적 출자 모임이고 하나는 아이의 유치원 때 엄마들 모임이다. 아이들 태어난 해가 2004년. 12간지로 원숭이해라 ‘잔나비회’로 이름 지어진 이 모임은 나까지 포함하여 총 다섯 명이 모이는 비정기적인 브런치 모임이다. 원래 둘이 더 있었는데 한 엄마는 미국으로 이민을, 또 다른 엄마는 남편의 직장 따라 독일에 잠시 체류 중이다. 멀리 있어 참석하지 못하는 두 엄마들은 잔나비회 단톡방이나 각자의 인스타에서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해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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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만나 올 5월 말에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전에 잘 올리지 않던 ‘나이듦’과 ‘늙음’을 주로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생일 때인 30대 초반에 만나 지금은 중3 아이들의 사십 대 학부형이 된 그녀들은 곧 있을 갱년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준비란, 이제 여자로서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외모와 아이들에 대한 식은 교육열, 남편과의 따로 또 같이 결혼생활을 직시하는 것, 한참을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다 모임 장소인 한정식집의 시원치 않은 음식으로 잠깐의 위로를 받는 것. 그게 준비였다.

 

엄마들 중에서 교육열이 유난히 드높았던 한 엄마는 몇 년 전 집안이 폭삭 망했다.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극심한 불화와 인생의 업다운을 경험하자 그녀는 각자 인생 각자 살아야 한다며 시니컬한 엄마로 변했다. 지금은 아이들 교육보다 자기 커리어와 행복이 우선이라고 했다. 제일 나이 어린 사십 대 초반의 엄마는 집안 살림과 아이들에만 관심 있었던 엄마인데 지금은 뛰어난 뜨개 솜씨로 직접 만든 가방을 백화점 팝업스토어에까지 납품하는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수수한 옷차림과 담백한 화장을 즐기던 한 엄마는 이날 핫핑크의 화려한 귀고리를 하고 나타나 우리 눈을 즐겁게 했다.

 

애들 학원 어디 보내느냐, 어느 학교에 사건이 터졌더라, 시댁과의 불화와 남편 일이 어떻더라 논하기 바빴던 엄마들이 이제는 ‘자기 자유’와 ‘자기 행복’을 이야기한다. 오랜 결혼생활의 지겨움,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갈망, 어느 시기가 되면 다들 졸혼 또는 이혼하고 살 사회의 변화, 섹스로봇의 출현, 굳이 대학 힘겹게 가지 않아도 아이들만 행복하면 만족한다는 이야기들이 담백하게 오고 간다.

 

난 묵묵히 듣고 맞장구치고 웃다가 돌아왔다. 이 보수적인 엄마들 입에서 이런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는구나 하고 사뭇 놀라면서도 담담하기도 했다. 하나 오래도록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엄마들의 커피 취향은 여전히 뜨거운 아메리카노, 나만 차갑고 달달한 라떼라는 것! 백세 시대가 되다 보니 그 커피 취향도 어느 시기에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녀들의 변신을 언제나 응원한다. 오십, 육십, 칠십에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눌 그녀들의 인생을 기대한다. 잔나비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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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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