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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망신’을 아시나요?

오길영( icomn@icomn.net) 2019.12.05 18:51

‘개망신’이라는 용어를 사전으로 찾아보았더니 “명예나 위신을 아주 크게 망침”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망신’은 몰라도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별달리 떠올릴 만한 것이 없다. 이만하면 잘 살아온 것일까? 쉬이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적당히 상황을 얼버무리거나 그 이유를 합리화해버렸던 상황들도 따지고 보면 내심 개망신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망신에 ‘개’라는 접두어가 붙기 전에, 우리는 대체로 일찌감치 양념을 쳐서 대응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우까지 포함하여 고려하자면, 최근 몇 년 동안 필자는 지속적인 ‘개망신’ 상태이었던 셈이 된다. 요즘 한창 회자되고 있는 소위 ‘개망신법’ 때문이다.

 

개망신법이란 ‘개’인정보보호법(정식 법률명은 ‘법률 제14839호, 개인정보 보호법’이다), 정보통신‘망’법(정식 법률명은 ‘법률 제16021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신’용정보보호법(정식 법률명은 ‘법률 제16188호,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이 세 가지의 법률을 일컫는 말이다. 소위 ‘데이터3법’이라 칭해지는 이 법들은 ICT 영역에서는 매우 중요한 법들로 서로의 공백을 보완해주는 매우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현재 국회의 뜨거운 도마 위에 올라가 있다. 그 이유를 쉽게 설명하자면, 네 번째의 산업혁명을 하기위해서 많은 데이터들을 사용해야하는데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낡은 법 때문에 데이터를 맘대로 긁어모을 수가 없어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3법의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개망신이라고 하여 개망신법이라 부른다고들 한다. 전공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불쾌하기 그지없다. 개망신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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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무상의료운동본부,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가 12일 오전 10시 20분 국회 정론관에서 '데이터 3법 개악 중단! 사회적 논의 촉구!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하고있다. 박원석 정의당 정책위 의장과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동참했다. ⓒ참여연대 제공2019.11.13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개정하려고 하는가? 이 담론의 초창기에 그들은 개인정보의 정의를 바꾸고자 했었다. 보호대상인 개인정보의 범주가 너무 넓으니 이를 대폭 줄이자는 것인데, 이는 결국 법률의 취지 자체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소위 ‘보호론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자, 그들은 일보후퇴한 뒤 이내 공격방식을 전환하였다. 법률상 보호대상이 되는 개인정보란 당사자가 누구인지 식별이 가능한 정보들인데, 그 식별성을 흐리면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오길영’의 구매목록에 관한 정보를 바로 넘겨줄 수는 없고, 오길영이라고 적혀있는 부분을 모조리 ‘오○○’이나 ‘A씨’ 등 식별가능성을 낮추는 형태로 제공하는 ‘우회술’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가명화’ 기법이라고 한다. 치열한 법리전투를 해오던 필자에게 이러한 방식의 공격은 허를 찔리는 공격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문과서를 덥고 이과 논문을 펼쳐야 했다. 아무리 잡법 전공이라 하더라도 법학자가 이런 공부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으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뚜껑을 열고 보니, 그쪽 동네에서는 이러한 이슈를 ‘대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로 데이터베이스학이나 통계학에서 이를 주목해왔는데, 그 분야에서야 새로운 지평이 열린 셈이니 환영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이미 이론의 수준도 상당한 단계에 올라 있어, 이를 법리로 방어를 해내기란 난감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전선의 양상이 바뀌게 된다. 식별성을 흐리는 가공의 정도, 즉 가명화이냐 익명화이냐 하는 데이터 세탁의 수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이에 더하여 EU차원의 개인정보보호법령이라고 할 수 있는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이 시행되어 가명화된 데이터의 활용이 유럽에서 본격 허가되면서부터는, 그 누구도 이러한 전선에서의 논의동향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즉 그 시점 이후부터 우리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논의가 아니라 개인정보 활용을 위한 담론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족히 3-4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밀고 당기기를 했을 뿐 담론은 결론을 내지 못하였다. ‘창조경제’라는 포장을 덮어 쓰고 탄력을 한껏 받은 그들에 열심히 맞서 싸워왔고,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다행히 정권이 바뀌었다. 이제는 좀 휴전이라도 될까 했더니만, 이번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모자를 덮어쓰고 나타났다. 그들의 변신술이 신통하기도 했지만, 정치판이라는 것이 참으로 기가 찬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치를 너무 몰라서일까? 지금의 시점에 비추어 말하자면, 지난번에 자한당이 줄기차게 밀어붙이던 개인정보 상업화 정책을 이번에는 민주당이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개망신’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개정을 못하면 개망신이라고 말이다. 필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자괴감이 밀려왔고, 결국 마음을 닫아버리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일절 논문도 발제도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재미나는 자동차 이야기로 외도를 해왔고 그러기를 몇 년 만인 오늘, 개망신법 모두가 상임위를 통과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아무리 한숨을 깊이 쉬어보아도 무거운 마음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그 간 이렇듯 양념을 쳐왔으나, 지금의 이 상황이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개망신임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인가 보다.

 

이렇듯 무거운 마음으로, 전공자로서 오랜만에 몇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개정안의 시대, 즉 앞으로의 우리는 개인정보가 ‘당연히’ 보호된다는 상정을 해서는 곤란하다. ‘당연히’를 ‘어쩌면’이나 ‘잘하면’으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국제수준으로 보호된다고들 하나, 이는 때깔 좋은 거짓말이다. 여기서의 국제수준이란 ‘GDPR'을 말하는데 개정안은 그 수준의 보호조차 담아내지 않고 있고, 기실 ‘GDPR'이 정보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입법된 것도 아니다. ‘GDPR' 또한 보호와 활용을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해서 도출해낸 타협의 결과일 뿐, 정보보호의 바이블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럽과 우리는 처해있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럽은 워낙에 익명기반의 사회이다. 그러나 우리는 간첩색출을 목적으로 철저한 실명사회를 구축해 오지 않았던가? 주민등록번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보보호의 수준이, 어찌하여 우리사회의 교과서가 될 수 있단 말인지 필자는 아직도 모르겠다.

 

필자가 마음을 닫기로 할 때, 상의를 드리러 찾아뵈었던 은사님이 한 분 계신다. 말씀하시길, “자네는 강 하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어도 좋을 듯 하네. 아마 시간이 좀 지나면 지네들끼리 쌈박질을 해서 자네 낚싯대 앞으로 모가지 잘린 머리들이 둥둥 떠내려 올껄세”라고 하셨다. 연말이고 하니 은사님께 전화를 한번 드리려고 한다. 다시 만나 뵈면 “낚싯대 앞으로 기다리던 잘린 머리들은 안 오고, 백성들의 시신들이 떠내려 옵니다”라고 여쭈어 보고자 한다. 무어라 답하실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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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영 :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부교수, 정보통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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