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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존댓말_안녕하세요 담임입니다.

김현규( icomn@icomn.net) 2020.08.30 17:43

학생에게 가급적이면 존댓말을 쓰려고 한다. 공식적인 수업 시간에는 물론 복도나 교무실 등에서 개인적으로 만날 때, 학생과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낼 때도 그렇다. 이번에 코로나로 등교가 계속 미뤄지는 가운데 얼굴도 모르는 우리 반 학생들에게 문자를 보낼 때도 그랬다.

 

담임입니다. 원격 수업 듣느라 고생 많습니다. 출석 확인 꼭 하시기 바랍니다. 주말 잘 보내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오늘 출석 확인 1등입니다. 축하해요. 내일도 1등으로 출석하길 바랄게요. 응원합니다.

(학생 질문에 답을 하며) 원격 수업 플랫폼 서버 문제로 보입니다. 출결에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가 있을 것입니다.

 

학생: 선생님, 선생님은 왜 저희에게 존댓말을 쓰세요? 반말로 친근하게 말씀하시지 않고 존댓말을 쓰시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가깝게 느껴지지 않아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요

나: 수업 시간에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니까 지난 번 수업에서 배웠듯이 존댓말을 쓰는 게 맞아요.

학생: 그런데 선생님은 전화 통화를 할 때나 문자를 보낼 때, 교무실에서 말씀하실 때, 개인적으로 지시하거나 부탁하거나 아무튼 거의 대부분 존댓말을 쓰시잖아요? 그건 왜 그런 거예요?

나: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지 교사보다 아랫사람이 아니지요. (그래요? 저희는 선생님보다 나이가 어린데요.) 그렇긴 하지만 교사와 학생으로 만난 거지 어른과 아이로 만난 건 아니니까 아이가 아니라 학생으로 대하는 게 맞아요. (아하!) 존댓말을 쓰는 건 나와 대등한 상대로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학생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격식을 갖춰 정중하게 대하겠다는 다짐이자 그러기 위한 노력이기도 해요. 물론 반말을 쓰면 친근감이 높아진다는 걸 알지요. 하지만 친하게 느끼면서도 지켜야 할 거리를 지키는 게 쉽지 않아서 조심하고 있어요. 사실 존댓말이냐 반말이야보다 중요한 건 전체적인 마음가짐과 태도일 텐데 나 같은 경우에는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마음가짐과 태도도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학생에게 존댓말을 씀으로써 ‘교사’라는 내 신원을 되새깁니다. 그렇게 하면서 교사가 되고 싶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처음으로 교단에 설 때 내 첫마음이 어땠는지를 기억하려고 해요. 말에는 힘이 있다고 했잖아요? (네!) 말과 생각과 마음과 행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요. 해야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세 살짜리 어린이도 알고 있지만 여든 살 노인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으니 평소에 연습 많이 해야 돼요.

학생: 선생님으로서의 첫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나: ‘하느님께서 내게 맡긴 사람들을 잘 보살피겠다’였어요.

학생: 우와!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꼭 신부님 같아요!

나: 신부보다는 신랑이 더 좋겠는데… 신랑을 해야 하는데... 아흑…

학생: 선생님! 죄송해요!! 올해는 꼭 좋은 분 만나실 거예요!! 아오,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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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 오늘도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지고 볶으며 가르치고 또 배우며 사는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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